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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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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2024년 (토론)님의 2021년 6월 10일 (목) 09:05 판 (개요)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개요

1866년, 조선에서 천주교를 박해했다고 프랑스 빵놈들이 부들부들해서 쳐들어온 전쟁이다. 프랑스는 이 침공으로 프랑스 문화 승리 점수를 보탰다.

결국에는 불란서놈들을 막았지만 막았다기보단 저글링 몇 마리 보내서 탈탈 털고 더 털 게 없다고 정신승리나 해대는 게 프랑스 애들 수준

ㄴ 지랄 프랑스 문서 보면 프랑스 패배로 나와 있다.

ㄴ 실제로는 보복 준비했는데 사령관과 몇몇 부관이 반대해서 없는 걸로 됐음. 근데 사령관이 자국 위상에 금 갔다고 존나 까였다.

ㄴ 뭐... 이겼다는 건 맞는 말이다. 프랑스의 침공 목적은 항의 겸 조선의 개항이었는데[1] 이걸 이루지 못했다. 만약 이뤘다면 조선의 패배라고 볼 수도 있겠다만... 물론 아래에 보듯이 교전비가 신미양요 못지않게 처참하지만 애초에 전쟁에서 교전비를 가지고 승패를 논하면 베트남 전쟁은 미국 승리잖아?

이때 외규장각, 조선왕실의궤가 프랑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직지심체요절은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이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한 책으로, 병인양요와 아무 관련이 없다.

ㄴ 고종이 프랑스 공사에게 하사한 선물에 끼어있던 거다.

이후 유럽에서는 청나라의 속국으로 알고 있던 조선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청나라에 따지러 갔으나 청나라는 조선의 일이니 니들 알아서 하라고 했고, 조선이 청나라로부터 독립된 나라인 줄 알고 청나라급의 강력한 국가라는 오해도 샀으나, 일본 등을 통해 조선에 대해 조사를 이어나간 결과 강력하기는 지랄 걍 오늘내일하는 좆병신 유교탈레반 좆집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피해

신미양요처럼 1킬 350뎃은 아니다.

조선 병력: 육해군 1만 명, 사망자 5명, 부상 7명, 실종 2명

ㄴ 실질적으로 700명 정도다. 나머지는 프랑스 함대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사태를 막기 위해 방어만 했다.

프랑스 병력: 해병대 600명, 전함 1척, 순양함 2척, 호함 2척, 통보함 2척, 사망자 3명, 부상자 35명

개항도 안 한 구식 조총 쓰던 조선을 상대로 5킬 3뎃을 기록한 프랑스 군대는 서구 열강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솔직히 지휘관 총살해도 문제 없을 수준임.

여담

사실 20년 전에도 프랑스가 조선 개항을 목적으로 700명 정도의 병력으로 조선에 쳐들어 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내부혼란과 중국개입, 그리고 결정적으로 배가 서해 갯벌에 좌초되어 한달동안 오히려 조선에게 물자 구걸받으며 연명하다 물러가서 개항은 무산되었다.

  1. 이건 5년 뒤에 일어난 신미양요와 같다. 애초에 당시 이루어지던 서구권과 비서구권 간의 조약은 대부분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