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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람 폰 리히트호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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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Ypa9307 (토론)님의 2016년 10월 13일 (목) 12:42 판 (새 문서: {{쉐프}} {{요리사}} {{화재}} {{나치}} {{파시스트}} {{독뽕}} 1차대전 최고의 에이스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의 사촌동생이자 독일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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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 문서는 요리를 존나 잘하는 갓-요리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부디 이 요리사들의 심기를 건드려 요리사분의 식재료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군요, 너님의 띵복을 액션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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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독뽕


1차대전 최고의 에이스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의 사촌동생이자 독일판 커티스 르메이, 아서 해리스. 이 양반 역시 특급 쉐프였는데 원랜 기계공학을 배웠던 공학사였으나 1927년에 쉐프로 전향한다. 그는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자신의 뛰어난 요리실력을 마음껏 뽐냈는데 특히 그의 솜씨는 스페인 공화당의 주 도시였던 게르니카에서 알아줬다고 한다. 그리고 게르니카에서 게르니카핫을 찍고 온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자신의 요리실력이 매우 만족스러우며 자신의 음식을 보는것만으로도 멋지고 즐겁다고 했다. 그후에도 이 양반의 요리실력은 유럽 이곳저곳에서 그 쏨씨를 발휘했는데, 1939년에는 폴란드에서 그 실력을 마음껏 뽐내 수많은 폴란드인들을 눈물 짓게 했으며, 1940년에는 영국에 가서 자신의 뜨거운 요리실력으로 숱한 영국인들의 울게 하였다. 그러나 영국 쉐프들이 만든 영국맛 요리를 먹고 기절을 하고 토악질을 하면서 도망친 그는 잠시 잠적하다가 1941년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다시금 그 실력을 뽐냈고 같은 해 6월, 러시아에까지 출전하여 수 백만 러시아 인민들을 자신의 독일맛 요리로 감동받게 만든다.

이역만리 미국의 커티스 르메이가 미국내 최연소 원수였던것처럼 이 양반도 독일내 최연소 원수였다. 무려 47세때 빠이브스타 ㅎㄷㄷㄷ 그의 요리실력에 감동받은 콧수염 외고환과 실크 뚱돼지의 특별 공로가 아닌가 싶다. 근데 정작 실크 뚱돼지랑은 사이가 나빴고, 아돌프 갈란트랑 친했는데 갈란트는 이 양반의 뛰어난 요리실력에 감동받아 "저 뚱땡이 대신 님이 쉐프 총사령관이 되면 좋겠다능ㅠㅠ" 이라고 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나이가 먹어 점점 요리실력이 나날히 떨어졌고 결국 그의 라이벌 르메이와 해리스의 제자들에게 탈탈 털리고 뇌종양이 걸려 1945년에 탈지구 한다. 그러나 그의 뜨겁고 대단한 일급 요리실력에 감동받은 스페인과 폴란드, 영국, 러시아는 이 양반의 공로는 두고두고 잊지 않고 있다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