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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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6대 왕

고려의 6대 왕이다. 왕건의 손자. 이름은 치.

성종이라는 묘호로 삘이 오겠지만 유교탈레반이다.

경종이 이 사람이 존나게 똑똑하니 내 아들 말고 얘 한테 왕좌 줘라고 했다는데, 22살이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겠냐. 성종 여동생들이 둘 다 경종 부인이고 경종 아들은 성종의 조카였다. 갓난애를 왕위에 올려놓는 것보다 성종이 즉위하는 게 자기 아들 보호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고려의 지방을 12목으로 나누어 지정하고 중앙 관제도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헬조센식으로 열화시켜 지정했다. 참고로 이 지방 관제 12목은 말이 지방행정이지 그냥 대충 서류상으로나 만들어 놓은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존나게 조잡하고 애미가 없는 내용이고 실권은 여전히 지방 호족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나마 성종이 이걸 지정함으로서 중앙집권화의 ㅈ이 써졌다고 보면 된다. 바꿔 말하면 이전에는 이조차도 없었다는 말이므로 새삼 헬조센의 미개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특이하게 이 사람은 유교탈레반이라서 묘호가 성종인데 정작 여동생년들은 전부 합법사생아에 씨발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왕후가 재혼녀였다. 여자가 세 번 결혼하면 제재하자는 걸 재혼만 해도 제재해야한다고 지랄했던 밑의 성종이랑은 다르다. 사촌이랑 결혼했지만 고려에서 이런 건 뭐 기본이고. 그리고 여동생이 낳은 사생아도 자기 자식처럼 기르다 친부한테 보내줬다.

이 사람 재위 기간에 요나라가 고려를 공격했으나 서희가 말빨로 이새끼들을 물러가게 함과 동시에 강동6주를 먹었다.

재위 16년 만에 38살의 나이로 죽었다. 아들이 없었으므로 경종의 아들인 목종이 왕이 되었다.


고려의 역대 군주

조선의 9대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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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는 '혈'

세종에 이은 성군 시리즈라고 빨아주지만 실상은 사림애들이 이 당시 세력을 만들었기 때문에 빨아주는 것 뿐이다.

중용했던 사림새끼들이 뒤통수를 치며 홍수가 나도 왕 탓, 황사가 와도 왕 탓,[1]

기형닭이 태어나도 왕 탓하면서 미개하게 까댔지만 허허 하면서 참음. 그래서 성군이라고 빨리는 거.

그 대신 그 스트레스를 여자들한테 대신 풀은 모양인지 과부가 재혼하면 자식이 과거 못 보게 함. 당시 신하들 죄다 반대했는데 밀어붙임.

폐비 윤씨의 경우 질투가 심한 건 사실인 모양인데 성종 후궁이 존나 많아서 질투할 만 했다.

그래서 당시 신하들 여론이 그래도 죽이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였는데도 밀어붙여서 죽인 걸 보아 여혐종자 맞는 듯.

ㄴ지랄하고 있네 메갈년이신가? 폐비 윤씨는 충분히 뒤질 짓 해서 뒤진거 맞다. 딴거 다 필요없이 왕한테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독을 가지고 다니다나 뽀록난건데 이러고도 살기를 바라는게 용감한거지. 분노조절장애 증세가 의심될 정도로 앞뒤 안가리고 지 꼴리는대로 행동한게 폐비 윤씨다. 그리고 폐비 논의도 임사홍 혼자만 반대한거고 나머진 다 찬성함. 특히 2차 폐비 논의 때는 정치에 관여 안하는게 관례인 대비들 마저도 공포에 질려서 저년 내쫒아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건이 상세히 기록된 건 다름아닌 이년 아들인 연산군 시절에 만들어진 성종실록이다.

그치만 여자한테 막대한 것 치곤 동물하고 세자(연산군)에겐 한없이 너그러웠다.

기르는 원숭이새끼한테까지 옷을 입히려 들었으니.

또한 연산군이 공부 땡땡이쳤는데도 어릴 때는 그럴 수 있지 뭐 하고 넘어가줌.

아마 본인이 어머니 치맛바람에 치여 달달 볶여서 공부만 쳐했던 걸 깨닫고 내 자식은 이렇게 안 키워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소랑 후추를 헬조선에서 키워보려고 노력했지만 뜨끈뜨끈한 지방에서 사는 새끼들이 시베리아랑 맞짱뜨는 헬조선 겨울을 날 수 있을 리가..

그래서 죄다 실패.

간신에게 잘 놀아나는 성격으로 능양군과 더불어 왕을 하면 절대 안되는 녀석이다.

정귀인, 엄귀인에게 놀아나서 윤씨를 폐하고 사약먹였다. 사약만 안먹였어도 연산군 그리되지 않았다.

왜냐면 연산군은 정귀인과 엄귀인만 죽여 없앤 뒤 윤씨를 폐비 상태에서 곧바로 대비로 올려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ㄴ 딴은 그런데, 정작 그 연산군이란 새끼가 자기 엄마 제삿날에도 궁녀들이랑 떡쳤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딱히 그러지도 않았을 듯도 싶다. 사실 연산군이 자기 엄마한테 해준 건 시호 올리고 묘 이장시켜준 거 정도밖에 없다. 한 마디로 연산 새끼가 효심이 지-극해서 얼굴 한 번 못 본 엄마 탓에 싸이코가 됐다고 생각하는 것도 좀 무리라는 얘기. 연산군이라는 싸이코패쓰 섹스킹이 탄생한 계기는 엄마 죽인 아빠에 대한 반항+왕을 호구로 아는 대간 윾교 탈레반에 대한 혐오+걍 멘탈 자체가 글러먹음 등의 복합적 요소가 섞여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셋 다 애비인 성종이 제대로 커버를 못 쳐줘서 그런 거니 성종도 부관능지감이다. 죗값을 받았는지 성종은 40살도 못 채우고 죽고 임진왜란 때 왜놈 쪽바리들한테 도굴당함.

ㄴ지랄 좀 하지마라 병신아 폐비 윤씨 폐출하고 죽여야 겠다고 결정하고 실행한건 다름아닌 성종이다. 대놓고 저년이랑 못살겠다고 절규한게 실록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자기한테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고 독가지고 다니다가 뽀록났던 일이고 게다가 암만 총애받는 후궁이라고 해도 왕자, 그것도 세자까지 싸지른 왕비를 모함한다? 뒤질려고 환장한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그런짓 못한다. 아들 싸지른 장희빈도 임신 못한 인현왕후가 뒤지라고 하면 뒤지는 시늉이라도 했다.

뒤지고 난 후에 자기 아들인 중종과 함께 임진왜란때 일본군에 의해 무덤이 파해쳐지고 관이 불태워졌다. 고로 현재 남아있는 이 사람의 무덤은 시신이 없는 가묘이다.

종기 때문에 죽었는데 종기 위치가 아랫배 단전 근처, 쉽게 말해서 좆 위에라고 보면 된다. 떡칠때 마다 존나게 아팠을껀데 애새끼 싸질러댄거 보면 둘중 하나다. 쎾쓰머신이었던가 아님 스트레스 받은걸 떡으로 푸는 스타일이던가

이사람 술버릇이 남에게 권주하는거였다. 정조 오리지날 버전인가? 아무튼 신하들과 회식 잡혀있으면 신하들 으으응아아아아아아아악 하면서 죽어나갔다. 왕이 주는 술을 거절했다간 ........

  1. 고로 빡친 연산군이 초반에 대간의 목을 쳐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