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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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Yuiopqwe (토론)님의 2016년 9월 16일 (금) 17:35 판

쓰려고 하면 안 써지는 거.

ㄴ 자소설은?

대다수 작품과 니가 쓴 특별하다고 믿는 종이쪼가리는 개노답좆쓰레기가 되서 재활용된다.

쓸거면 적어도 주제는 정하고 판타지에서 벗어나라 돌대가리 새끼들아.

순수문학 소설은 거의다 좆망이다.

그도 그럴것이 재미는 조또 없으면서 독자들한테 훈장질하는게 대부분이기 때문.

사실 노벨문학상 받는 소설가들도 대부분 조또 재미없기는 마찬가지고 페미니스트같은 미친년들도 많다.

사실상 소설은 망한 장르. 영화보다 시장이 훨씬 작은 것만봐도 알 수 있다.

고대의 소설

성경 - 개독소설

코란 - 개슬람소설

현대의 소설 종류

  • 순수소설 - 쪼그라들었다. 미국 베스트셀러 대부분은 장르소설이다.

24절기에서의 소설

계절 24절기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여름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가을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겨울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한자: 小雪

24절기 중 하나. 황경이 240도가 되는 시기다.

양력 11월 22일 경으로, 이 때는 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리는 등 첫겨울의 징후가 보인다.

"소설 추위는 빚내서라도 한다."라고 할 정도로 월동준비에 만전을 기해야하는 시기.

근데 요즘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들쭉날쭉.

소설

겨울이 온다.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린다.

연인과 아이들은 이 위를 뛰논다.

여름에 습기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

그래도 난 이때를 좋아하지 못하겠다.

군대에서의 기억 때문도 아니고, 화이트 아웃에 시달린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난 눈이 싫다.

그냥 초겨울이 시작되려 하는 이맘때쯤이 싫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한 기억 때문이다.


아마 15년 전? 좀 더 과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철없이 동네를 뛰놀곤 했고, 동네의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뛰놀며 너무 추워지거나 배고파지면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다시 뛰쳐나와 노는 일상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눈이란 건 하늘이 내린 장난감이었다.

"눈에다 돌 넣어서 던지면 어떻해!"

"바보야. 너가 먼저 던졌잖아."

양해를 구한다. 이런 단편적인 대화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아마 그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거겠지.

지금이랑은 감성이 다르니까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저런 대화 비슷한 수준으로 놀고 있던 어느 초겨울이었다.

시간은 오후 6시. 오전부터 나와서 줄창 놀아대니 체력도 빠지고 날도 어두워졌다.

그래서 그날 일정의 마지막으로 빙판에 한번만 가보기로 했다.

어른들이 가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무시했다.

그리고 놀았다.

시간 상관 안하고 놀았다.

당연히 금방 어두워지고,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지리에 익숙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11살 남짓의 애들에게 밤중의 산속은 무서운 존재였다.

"내가 먼저 갈테니까 따라와."

라는 대화를 누가 했다. 얼굴을 기억나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길을 뚫는거야!"

다른 애가 그런 식으로 말했다. 꽤 덩치 큰 놈이었다.

이게 발단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멀쩡한 길을 두고 숲길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며 내려가고 있었다.

그래봐야 동네 산이었다. 꽤 큰 산이었지만 익숙했다.

참고로 우리는 5명이었다.

"거의 다왔어! 조금만 힘내자!"

대장 놈이 그렇게 외쳤다.

어디 에베레스트라도 왔나 싶었지만, 그때 우리에겐 엄청난 모험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리더쉽 있는 애였다.

하나 실수만 빼면.

"저기 거리가 보인다! 다왔어!"

대장 놈이 그렇게 외치는걸 신호로, 우리는 몸에서 긴장이 쫙 빠졌다.

그렇게 내려온 동네는 시내였다.

우리가 사는 동네까지 한 10분만 걷다보면 도착한다.

적당히 손님이 오지 않을것 같은 싸구려 음식집 앞에 걸터앉았다.

모두 피로가 쫙 빠지는 것을 느꼈다.

"왜 애들이 지금 여깄니?"

지나가던 할머니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뚱뚱한 놈이 나서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지랖 좋은 할머니는 앞으로 그러지 말라면서 가방에서 작은 빵 네개를 건네줬다.

우리는 그걸 그대로 손에 집었고, 먹고 있었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서야 눈치챘다.

한명 빠졌다.

"건후 어디갔어?"

"아까 있었는데?"

건후라고 꽤 깡마르고 체력이 떨어지는 애가 있었다.

우리는 찾아다녔다.

당연하지만 못 찾았다.

그제서야 신고를 했고, 산에는 난리가 나서 헬기가 동원되었다.

몇몇 기자들이 와서 우리에게 마이크를 가져다대며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

건후 부모님이 오시고 난리가 났다.

"아이고! 건후야!"

"어디있는 거니! 건후야!"

그리고 건후 어머님의 표정, 사건을 알게 되자 우리를 한번 바라보고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고 만 그 표정. 잊을 수가 없다.

아버님은 애타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달래고 산을 뒤지고 다니며 눈에 띄는 흉터를 몇 개 입으셨다.

트라우마라고 할까. 가끔 꿈에 나온다.

그 때마다 새벽에 깨서 자신을 탓하며 기도를 하곤 다시 잠든다.

우리는 이유도 잘 모른체 그저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슬픔에 빠졌다.

그리고 부모님이 하라길래 허리숙여 건후의 부모님에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모님 역시 굉장히 우울해지셨다.

그 때 건후 부모님의 표정. 내 11살 전후의 기억은 그분들의 표정이 제일 먼저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를 마지못해 경멸하면서도 자신을 자책하는 표정.

경멸당해 슬프고, 자책하게해 슬펐다.

그리고 며칠 뒤에야 건후를 다시 볼 수 있었다.

익사체로.

아마 어디 빙판에 머리를 박고 넘어졌는데 빙판이 깨지면서 빠진 것 같다고 한다.

두부에 큰 상처 어쩌구, 타살 흔적은 어쩌구.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난 초겨울, 소설이라 부르는 이맘때쯤이 이래서 싫다.

매년 이때쯤마다 나는 그때 건후를 생각한다.

그러면 자책한다.

자책하기 싫어서 이때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거냐고 자신에게 묻는다.

할 말이 없다.

어쨌든, 이게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이라면 하나는 확실하다.

이때부터 좌초될 사람을 무리에 끼워주는걸 기피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