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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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Asa1177 (토론)님의 2017년 10월 24일 (화) 01:18 판 (손자병법)
이 캐릭터는 진짜 개씹사기라 게임을 노잼으로 만듭니다!
이 문서는 심하게 사기 포스를 풍기는 미친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에서 이걸 골랐다면 다른 놈들까지 다 이걸 고르거나 너프를 먹거나 할 것입니다.
주의! 이 인물은(는) 존나 똑똑하면서 존나 셉니다.
이 문서는 천재적인 두뇌와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을 상대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손자병법을 쓴 그 손자다. 디키러들은 손자는 커녕 자식도 볼 수 없을 테니 다른 손자는 알아서 추가바람.

들어가기 전에

과거 3공화국 시절까지 학계에선 손자병법을 쓴 손자가 누군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 손자병법의 저자가 사실 손무가 아니다! 라고 말하면 독서량 부족한 문맹취급 당하겠지만 당시엔 꽤 유명한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손자가 둘이기 때문. 한 명은 본문의 손무(현대에서 손자라고 하면 99.9% 손무를 말한다.) 다른 한 명은 손빈.

그 이유는 1970년까지 손빈병법이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1. 실체도 명확하고 여러가지 유명한 일화와 라이벌 대결구도가 임펙트 쩌는 손빈. 저서로 손빈병법이 있다고 했으나 전하지 않음.

2. 실체도 모호하고 전하는 일화도 단 하나뿐인 손무. 그가 썼다고 알려진 병서가 있긴 하나 손"무"병법이 아니라 손"자"병법임.

3. 둘 다 손자라고 불림.

감이 오지 않는가?

사람들은 손무와 손빈이 둘 다 뛰어난 전략가인건 인정하되, "손자"는 둘 중 한 명이고 "손자"의 일화가 분할되어 두 명의 분량이 되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당시 기준으로 꽤 논리적인 주장이었다.

하지만 은작산 한묘에서 손빈병법과 손자병법이 따로 발굴되면서 위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춘추시대라는 배경과 손무

손자의 최대 업적은 춘추시대를 끝내고 전국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완벽하겐 아니어도 전국시대의 개념을 제시하고 도입하고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손자가 지휘한 오나라가 당시 최강국 초나라를 박살내고 춘추5패에 등극한거만 봐도 손무의 유능함을 알 수 있다.

춘추시대의 전쟁은 전차전(轉車戰)이 주를 이루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땅크가 아니고...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궁병이나 창병이 타고 다니는 전차를 말한다. 설명을 좀 더 하자면 이 전차만 달랑 다니지 않는다. 전차 1승(乘)에는 마부 1명, 궁병 1명, 창병 1명이 탑승[1]하고 전차를 호위하는 보병 72명, 말을 다루고 이런저런 보급등을 담당하는 치중대가 25명으로 총 100명이 수레 하나를 운용했다. 즉 천자국을 가리키는 만승지국(萬乘之國)이란... 병력이 100만명인 나라...?가 아니라 그 정도로 강한 나라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의 만승지국 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춘추시대엔 전차가 국가 전력의 기준점이었다.

이런 전차는 산악지형, 습지에서 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전장은 무조건 넓은 평야여야 했고, 장군(將軍 = 직업군인)이라는 단어나 개념 자체가 없어서 경(卿)혹은 대부(大夫 = 귀족 정치인)가 지휘관직을 맡았기 때문에 싸움이 굉장히 신사적이었다.

언제 어디서 싸우자! 하고 날짜 정해서 싸우기도 했고 노인은 포로로 잡지 않았으며 항복하는 적은 죽이지 않았다. 지휘관을 잡거나 대장기만 꺾어도 승리로 인정됐다. 무의미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병사를 뽑아 1:1로 싸우고 진 쪽이 패배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전쟁이 한타 + 물량전으로만 흘러갔다.

그런데 이건 중원의 한족 얘기고 오나라의 상황은 좀 많이 달랐다. 오나라는 "미개한 남쪽 이민족"들의 나라였다. 민족은 그렇다 치고... 오나라는 습지가 많은 지형이어서 전차를 운용하기에 부적절했다. 또 중원의 사상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서 죽은 놈이 진 거 산 놈이 이긴거 하는 민족성도 있었다. 중원의 한족들이 보기에 굉장히 미개해 보였겠지?

그런 오나라가 춘추시대에 끼고 싶어서 전차전도 해 보고 물량전도 해 봤는데 됐을리가. 안 됐다. 지방 소국으로 살던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라는 훌륭한 브레인과 커멘더를 영입해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려고 했다.

그런데 손무가 대박을 친다. 전차를 습지에서 운용할 수 있게 내수성이 있는 가죽으로 전차를 강화하는 한편 전차에 집착하지 않고 오나라의 고유 병종인 기병대와 보병대를 집중양성했다. 또한 중원 국가들과는 다르게 자신이 항상 군사들과 행동을 같이 하고 군대의 업무만 처리하는 장군 생활을 했다.

이 군사정책의 효과는 초나라 정벌에서 잘 나타났다. 손무는 초나라 정벌 몇 년 전부터 소수의 부대를 초나라 깊숙히 침투시켜 어그로를 끌고 빠르게 빠지는 전략으로 초나라의 힘과 긴장을 풀어 두었다. 그래서 실전이 벌어졌을 때 초나라 군대는 긴장하지 않고 있다가 오나라군에게 대패했고 오나라군이 계속 산악지역에서 진격하니 전차가 싸울 수 없었다. 그렇게 춘추5패중 3대인 초나라가 단 3개월만에 약소국 오나라에게 처발렸고 오나라는 춘추5패중 4대에 등극한다.

군사 업무만 처리하는 장군 체제, 언제든 동원 가능한 상비군, 기동성 좋고 싼 기마대,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과감함. 이런 손무의 소양들은 후에 전국시대의 개념 그 자체가 된다.

어쨌든 이 초나라전으로 춘추시대는 사실상 끝났다고 보면 된다.

단 한명이 시대를 바꿔버림 크 손자 클라스

손자란?

본명은 손무(孫武)는 자가 장경(長卿)이며 제나라 낙안(樂安)출신이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는 기록이 없지만 공자와 비슷한 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손무의 조상은 진(陳)나라의 왕족으로 원래는 규(嬀)씨였으나 BC 627년쯤 공자(公子) 완(完)이 제(齊)나라로 망명하여 정착한 뒤 성을 전(田)씨로 바꾸고 100년정도 살았다. 그 뒤 손무의 할아버지인 전서(田書)가 거(莒)땅을 정벌하는데 공을 세워서 경공(景公)이 손씨 성을 상으로 줬다.

손무 때에 와서 제나라에 내전이 일어나자 그는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오(吳)나라에 도착해서 오자서(伍子胥)를 만났고 그가 정경유착으로 왕인 합려(闔閭)를 만나게 해준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정사인 사기(史記) 65권에 오기(吳起)와 함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매우 짧은 기록이 있다.


그 기록

힘들어서 한자 더이상 안 쓸래

손자는 이름이 무이고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을 가지고 오나라왕 합려를 만나러 갔다. 합려가 물었다. "너의 병법 13편은 모두 읽었는데 괜찮더라구. 시험삼아서 병사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래?" 손무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러자 합려가 이렇게 제안했다. " 여자라도?" 손무가 대답했다. "상관 없습니다."

그러자 허락을 받아 궁궐에 있는 여자 180명을 불러 모았다. 손무는 여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왕이 특히 예뻐하는 두 궁녀에게 머튽을 시켰다. 그리고 명령했다. "너희들 자신의 슴가와 등짝이 어딘진 알고 있겠지?" 그러자 여자들이 대답했다. "압니다." 그러자 손무가 말했다. "내가 앞으로 라고 하면 가슴을 보고, 왼쪽으로 라고 하면 왼손을 보고, 오른쪽으로 라고 하면 오른손을 보고 뒤로 라고 하면 등을 보여라." 여자들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정한 후 왕이 군권을 맡겼다는 징표인 도끼를 걸어두고 몇 번이나 명령을 가르쳤다. 그리고 드디어 명령을 내렸다. 북을 치며 오른쪽으로! 라고 말했지만 여자들은 깔깔깔깔 웃으며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손무는 "병사들이 말을 듣지 않은 것은 지휘관인 내 탓이다." 라고 하며 다시 한 번 명령을 가르친 후에 북을 치며 왼쪽으로! 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여자들은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손무는 말했다. "약속 내용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이 철저히 지켜지지 않는 것은 장군의 죄이다. 그러나 이미 알려 주었는데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부대장의 죄이다." 그러고는 두 부대장의 모가지를 따려고 했다.

오나라왕은 위에서 구경하다가 좋아하는 궁녀의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으므로 크게 놀라서 따까리를 보내서 지시를 전했다. "너가 지휘 잘 한다는건 알겠는데, 쟤들 없으면 나 못 살거 같으니까 제발 죽이지 말아 줘 ㅠㅠ"

그러자 손무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이미 왕의 명령을 받아 장군이 되었습니다. 장군이 군대에 있을 때엔 군주의 명령도 받지 않는 법입니다."

말이 끝나자 마자, 두 궁녀의 모가지를 잘라서 본보기로 내걸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왕이 좋아하는 궁녀를 대장으로 임명했다. 이렇게 하고 명령을 내리자, 여자들은 왼쪽, 오른쪽, 앞, 뒤뿐만 아니라 무릎 꿇고 일어서는 것까지, 모두 자로 잰 마냥 칼각을 지킬 줄 알게 되어서 누구 한 명 웃기는 커녕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 모양을 지켜 본 손무는 따까리를 왕에게 보내서 보고했다. "훈련이 끝났습니다. 왕께 보여드리고 싶으니까 내려와서 보십시오. 왕께서 바라신다면 불 속이나 물 속에도 뛰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합려는 말했다. "장군은 그만 끝내고 가서 쉬도록 하라.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러자 손무가 말했다. "왕께선 그저 병서에 쓰인 글자를 말하는 것만 좋아하시지, 병서의 내용을 실제로 쓰시지는 못하는군요."

다행히도 왕이 정상이었는지 손무의 목을 날리기보다 그의 대단함을 알고 그를 진짜 오나라의 장군으로 임명해 주었다. 오나라는 서쪽으론 강대국 초나라를 줘패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도 빵셔틀로 만들었다. 이렇게 오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손무의 역할이 컸다.

손무가 죽고 백여년이 지나서 손빈이 태어났다......

물론 디키러들은 이 이야기에서 손자의 대단함보다 여자들도 군대에 가면 잘 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손자병법

헬조선인들은 손자병법을 이름만 들어봤지 실제로 책을 본 사람은 거의 없다.

손자병법에는 다른 병법서에 나오지 않는 싸움 외적인 부분을 더 강조한다. 오자병법이나 육도삼략, 이위공문대같은 다른 병서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얘들은 쌈박질 방법만 가르쳐준다. 물론 신상필벌이나 장군의 평가같은 얘기도 적혀있지만 손자병법에 비하면 수준이 낮다. 그러니까 '어떻게 싸워야 잘 싸웠단 소리를 들을까?' 와 '어떻게 설계를 해야 잘 싸울 수 있을까?' 정도. 당연히 손자병법이 후자다

손자병법은 전시경제체제와 총력전, 정보전 같은 현대전의 개념도 크게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읽어봐도 꽤 합리적이다.

그런데 애초에 싸우라고 안 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책" "싸워야 한다면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싸움을 한다." 정도. 당나라의 책사 이정도 저 한 줄로 손자병법을 완벽하게 요약할 수 있다고 극찬했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손자는 싸우라고 안 했다. 즉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런 말 안 했다. "백전불태(百戰不殆 위태롭지 않음)"라고 했지. 오히려 손자는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라고 백 번 이김의 위험성을 말했다.

여담인데 손자병법은 손무에 의해 씌이고 후에 손무가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합려가 손무의 병서 13편(손자병법)을 읽어보고 손자를 좋게 본 것인데 손자병법에는 "오왕 합려가 묻기를..."이라던가 "내 말대로 한다면 오나라가 강성해질 것이다." 등등. 오왕 입맛에 맞게 로컬라이징한듯


남간에선 나폴레옹이 손자병법을 봤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출처랍시고 블로그를 걸어놓고. 손자병법이 1772년 프랑스 선교사 장 조셉 마리 아미옷에게 번역된 것은 맞지만 그 아저씨는 죽을때까지 베이징에서 살았다. 그 다음 번역이 1905년의 영역이니 몽고메리가 읽었다고 주장하는 편이 나을 듯.

ㄴ나폴레옹 썰은 프랑스 대령이 쓴 L'art militaire dans l'antiquité chinoise 때문에 퍼진 썰인데, 진위는 모른다

ㄴ나무위키에 너 주장과 100% 똑같은 주석이 달려있던데, 해당 책자의 한국어본을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혹시 알고있다면 어디의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기 바란다. 그리고 너 주장이랑 나무위키 외에 그 책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데, 진위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없는 거 아니냐?

  1. 전투병력 1명과 지휘관이 타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