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제후국 왕의 아내
여왕과 왕후와 다르다.
왕의 자손을 낳기 위한 일종의 애 낳는 기계(!)로 보여질 수도 있으나 왕이 가장 사랑하는 만큼 엄청난 권력이 있다.
다 늙어빠진 왕이 사랑하는것만 있나? 다음 왕의 어미라는 궐의 안주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왕의 외척들이 정권을 잡고 흔드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세도정치, 무신정권 등)
왕이 후궁을 들이기도 하나 정실부인인 중전 앞에선 후궁도 한낮 꼬마에 불과하다. 보적보 끝판왕이다.
ㄴ 이건 어쩔수 없다. 막말로 신하들도 가문이나 직급으로 철저히 구분지었던 마당에... 왕비나 후궁도 비슷한 케이스임. 명문가 출신 왕비랑 노비출신 승은후궁이랑 격이 비슷하다는게 성립불가임. 명문가 출신 후궁이라면 왕비급은 아니어도 한낮 꼬마수준의 후궁취급 받지 않았다. 정조의 명문가 출신 무품빈(원빈 화빈 수빈)들만 봐도 거의 왕비에 준한 예를 받았다. 반면 의빈성씨는 걍 평범한 후궁대우. 그리고 후대로 갈 수록 자녀가 귀해져서 자녀를 낳은 후궁은 일단 한낮 꼬마수준의 대우는 아니었음.
또한 첨언하자면 후기로 갈수록 성리학적 종법질서가 강력해짐에 따라 정실의 권한이 상당히 커진것도 부정못하고, 명문가 출신 후궁도 줄어든것도 한몫함.
여담으로 고려는 승은 후궁이 아닌이상 왕비랑 후궁차이가 그닥 안났음 ㅇㅇ 아니 그전에 왕비가 여러명이기도 했는데 뭐. 재혼녀도 왕비 되기도 하고(성종 제1비)
태조왕건도 6왕후 21후궁이 아니러 사실 29부인(=왕후) 이라는 말도 나옴. 다 동등한 정처신분이지 첩신분이 아니라는거지.
그리고 궁주 전주 원주 이게 왕후/태후/공주 등등이 돌려쓰던 칭호라서 사실상 원나라처럼 복수의 왕후를 뒀다고 보는게 맞을듯. 여기서 중요한건 무조건 왕족/귀족출신 여자만 가능하다는거. 왕의 자식으로 인정되는 자녀도 무조건 귀족/왕족출신 여인 소생이어야 했음. 승은을 입은 평민이나 노비 출신의 여인한테서 얻은 자녀들은 왕족 대우를 못받음. 일단 비/궁주/원주/전주로 책봉 자체도 안되고.
중전은 남편이 죽고 아들이나 손자가 왕이되면 수렴청정을 하기도 한다. (대비마마라 불린다.)
그런데 왕비가 왕보다 나이가 많았던게 일반적이다. 왜 그러지?
ㄴ 동서고금 왕비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ㅅㅌㅊ이자 왕실과 친한 집안, 그리고 임신능력에 문제가 없음이 전제가 된다. 즉 초경이 와서 임신이 가능한 것이 입증되야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왕이 7살에 결혼하건 5살에 결혼하건 왕비는 왕보다 연상을 확률이 커지는 거다. 라고 나는 망상해봤다.
ㄴ 맞는 말은 맞음. 그러나 후로 갈수록 동년배거나 1살 차이인 경우가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