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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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때의 윤치호, 1891년 ~ 1892년
말년의 윤치호, 1945년 12월

개요

이 새낄 두고 선견지명을 가졌다고 입 터는 머갈통 빈 새끼가 있는데 그 새낀 이 새끼가 친일파였던거뿐만 아니라 골수 반미였다는건 모르는 좆병신이 분명하다. 심지어 이 새낀 전쟁 중에 일본이 미국에게 강냉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도 귀축영미를 부르짖고 일본을 빨아댄 새끼다. 친일은 했을지언정 세계 주도권 자체는 미국이 쥘거라고 내다봤던 이완용보다도 보는 안목이 없다. 대체 이 새낄 왜 빠는거냐?


한국이 생존하기에 적합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 한국이 적자로서 살아남게 하는 것이다. 한국이 공정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한국이 적자로서 생존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한다. 1892년 4월 7일 윤치호 일기에서.

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겠다. 1890년 5월 18일 윤치호 일기에서.

인종편견과 차별이 극심한 미국, 지독한 냄새가 나는 중국, 그리고 악마 같은 정부가 있는 조선이 아니라, 동양의 낙원이자 세계의 정원인 축복 받은 일본에서 살고 싶다

이거 경술국치 이전 발언이니 역센징들은 괜한 일뽕빨지마라
윤치호는 미국 유학시절 실제로 지독한 인종차별에 시달렸고 일종의 트라우마가 남았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은 다 썩고 허물어져가는 누각 꼴이었고, 조선은 그보다 더욱 심했다. 지금이야 현대시각에서 보면 좆같은 소리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조선과 중국은 희망따윈 찾아볼 수 없는 썩은 쓰레기통 꼬라지임에도 그에 반면 일본은 똑같은 꼴에서 강대국으로 변했다는것에 일종의 경외감을 갖고 있었고 이건 당시 조선과 중국 지식인들에게 만연한 일본에 대한 열등감과 패배주의와 일맥상통한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말라.

아직 한국 사람들은 민도가 낮아 대의 국민회의(代議 國民會議)나 하의원의 실시는 불가능하다

한국인은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으로 살아간다

저열하고 무능한 조선의 민족성으로는 자치를 손에 쥐어준다고 해도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치스러운 한국 역사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현 정부 하에서는 개혁의 희망이 없음을 확신케 된다. 정부는 500여년 간 국가의 향상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간단히 말해 구한말의 썩어빠진 무능한 나라꼴에 절망과 혐오감을 가지고서 조선이란 나라에 희망을 아예 버린 인물.

그나마 민중들을 깨이게 만들어 민중을 토대로 나라 꼴을 바꿔보자는 희망을 가졌었으나 민중 계몽 운동이 그 민중들의 외면으로 처절한 실패로 끝나고 자신이 그토록 타파하고자 했던 유교 탈레반 정신이 굳건히 뿌리박혀있단걸 깨달은후 조선의 모든것에 환멸했다.

그런데 환멸하고난 뒤에 빨게된게 전쟁광에 무뇌아 투성이인 좆본이었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ㄴ전쟁광에 무뇌아 투성이가 됐단건 2차대전 무렵이고, 그 전만 해도 일본은 떠오르는 아시아의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크게 발전해가며 잘 나갔다. 그냥 2차대전, 그 전까지 하면 중일전쟁 전까진 강력한 열강 중 하나일 뿐이었지 처음부터 힘만 센 독보적인 병신이었던게 아니다. 애초에 당시의 조선은 전근대적인 사상과 전근대적인 법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고 그에 반면 일본은 철저히 근대화하여 조선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 나라였다. 사상 면에서도, 국력 면에서도. 일단 선거제도도 애저녁부터 실시하고 있었고 나중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칭할 정도로 유해졌던 적도 있었고 하니깐. 말로가 병신이라고 처음부터 병신은 아니다.


윤치호친일파이자 계몽운동가이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며 초기 한국 YMCA수장으로 한국 개독교의 선구자이다.

ㄴ반미일뽕이면 씨발새끼아니냐?

유학이후 귀국하여 독립협회 창설과 활동에 열의를 다해 행하며 민권, 평등, 민주주의를 외치며 대중들의 계몽에 힘썼다.

그러나 고종에게 독립협회의 민권, 평등, 민주주의 계몽은 황권강화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어 강제로 해체당하고 당시의 일부 지식인들을 제외한 일반 민중들은 윤치호의 민권, 평등, 민주주의 계몽은 외면받으면 다행이고, 불충한 놈, 서양 오랑캐와 내통하는 놈, 우리의 전통을 폄하하는 놈 등등등으로 불리며 실패했다.

이 일 이후로 윤치호는 조선 조정은 물론, 민중(민족)들한테까지도 깊은 혐오감과 좌절감을 가지게 된다.

고종이야 어쨌건 민중들이 그의 말을 이해못한건 어찌보면 당연한게 당시 민중들의 절대다수는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만한 지식이 없었단 거였다.

간단히 말해 현대의 초중고 교육받은 놈들도 민주주의나 평등 등을 잘못 이해하는 놈들 많은판에 하물며 당시 공자맹자 유교사상이 뿌리박혀있고 그게 일상이며 평생 받은 교육이었단 사람들 앞에서 평등과, 민주주의, 민권, 참정권 등을 말해본대봐야 이해 자체를 하지도 못하고 거부감만 사기 십상이었던 것.

낙후된 조선인민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꽤 기울였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이니셔티브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행했다.

그래도 진지하게 노력을 기울였기에 해방 후에도 좆본과 좆선 사이의 양다리 컨셉종자라 욕 먹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마치 독립이전 영국 치하의 아메리카 식민주 대표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총독부의 역대 총독들과도 친해서 그의 일기를 보면 수시로 총독부에 초빙되어 자문을 하기도 하고, 어폐류 선물셋트도 자주 받아먹었다. 조선 민족주의자들과도 친했다.

즉 식민본국과 식민지민들 사이의 중재자였다.

좋게 말하면 냉철한 식민지 민족지도자이나, 나쁘게 말하면 오체불만족 무사안일주의자이다.

일기 전반이 자학과 현실혐오로 도배되있는거 보면 염세주의적 면모도 강해보인다.


애국가를 작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좆병신이구나. 뭐? 괴로우나 즐거우나 어째? 이 씹새가!

ㄴ당시 기준으로 생각해봐라, 관리들은 부패하고 민중은 가난하며 무식하고 주변 열강들은 호시탐탐 이권 뜯고 나라 쳐먹으려 노리고 있고 황제라는 인간은 국력향상은 커녕 제 권력이나 강화하려하고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고 지식인도 태부족한데 아무짝에 희망이라곤 없는데 저런 가사 나올만 안하냐?


조선인은 태생이 글러먹은 민족이라 보고 조선의 미래를 대단히 비관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말이 대부분 맞았다는거. 헬잘알 지못미.

조선인을 비판하면서도 학교 설립 부지를 기부하거나, 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하거나 독립운동단체를 후원하거나 비밀을 지키는 등 나름 애정을 보인 인물...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비에 가까웠다. 이 인간의 생애가 워낙 뒤틀려있기도 하지만... 물론 윤치호 집안의 막대한 재산은 그의 할아버지 윤취동이 마련한 것이다.

이완용을 아주 싫어했다고 한다.

윤치호의 증조부 윤득실은 통덕랑이라는 말단 벼슬을 지냈지만 술을 좋아하다가 38살에 요절했다.

윤치호 어록

여담으로 이완용은 앞으로 미국의 시대가 될것이니 자식들에게 영어를 익혀두라고 유언했다지만

윤치호는 일본이 이길줄 알았다가 광복을 맞고 말년에 데꿀멍을 하게되었다.

웃기게도 이 인간은 19세기 말에 미국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이다. 당시라면 미국이 세계 최강은 아니어도 손가락 안에 꼽을만한 열강이었는데도 그 발전상을 나이 들어서 다 까드셨는지 아니면 일뽕을 치사량만큼 쳐드셨는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친일활동이 급증한다.

조선총독부가 조선인 참정권을 주겠다고 하고 1940년부터 계속 일본정부에 참정권을 달라고 하니까 거기에 마음이 약해졌는지 모른다.

백낙준, 소설가 김동성 등은 윤치호가 명의를 도용당한 것이라고 했다. 김을한이 쓴 윤치호 평전에는 윤치호가 한번은 징병 독려 연설에서 내가 와서 뭔 말이라도 하려고 온 줄 알지만 나는 할말은 없다. 다만 총독부가 올라와서 연설하라 해서 올라왔을 뿐이다. 라고 짧게 말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하와이를 기습한 것을 보면서 일본이 망할 지도 모른다며 몸을 조심하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김을한, 백낙준 등의 증언

백인에 대한 증오

당시대 대부분의 한중일 미국유학 출신자들의 공통점이지만

윤치호도 미국 유학파 출신인 이토히로부미나 무츠무네미츠와 마찬가지로 영미 앵글로섹슨을 깊이 증오했다.

당연히 유학과정에 받은 수많은 황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근원이다.

윤치호 일기에는 그가 상하이의 공원 입구에서 봤던 푯말 '중국인(황인종)과 개는 출입금지'말의 기억이 자주 거론되며, 유학와중 겪은 백인의 발차기 등 신체적 폭력의 경험이 암시된다. 전반에서 백인종에 대한 깊은 분노가 자주 표출된다.

그리고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때 기뻐한다.

일본에 대한 증오와 멸시, 그리고 일본에 대한 동경, 마지막으로 일본이 내세운 대동아공영권과 앵글로섹슨족의 동아시아 추방에 대한 주장에 깊이 동조가 일기 전후반에서 교차된다.

이처럼 그의 의식에 모순이 많은 이유는 순전히 그의 백인들에 대한 원한에서 기인한다.

총독부의 감정 대립

그는 1910년 한일합방 직후 형식적으로 남작 작위 받은 것 외에는 일본 정부나 총독부의 이런저런 감투를 모두 거절했다.

친목단체 수준의 단체들로 공직이 아닌 자리는 마지못해 수용했는데, 대정친목회에 대해서는 오고 가는 사람 환영만 하는게 목적인 단체라며 디스하기도 했다.

1936년 중일전쟁 때까지만 해도 중추원 참의나 중추원 고문직을 계속 거절했는데 그 이유로 내가 그런 단체에 있는 것보다는 재야에 있는게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1938년 1월에 도쿄에 갔다가 그의 일본인 친구가 여태 총독부나 일본정부가 윤치호 당신을 미행하고 있다고 알려준뒤 자신을 미행하는 헌병을 보고 충격받고 며칠 동안 호텔 밖을 못나서기도 했다. 창씨개명 때는 총독이 자기 성과 올리려고 하는 짓이라고 디스하면서도, 조선인들의 반발이 심할테니 6개월만 유예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객관주의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자기 부모를 OO씨라고 쓰기도 했다. 아버지가 개혁한다 해놓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디스할 때는 mon pere라는 단어를 썼는데 이건 프랑스 어로 우리 아빠라는 뜻이다. 71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 단어를 다른 영어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복동생이 자기 부인에게 잡혀사는 것 같다는 내용, 자기 딸들이 대드는 것도 일기에 담대하게 적어내려갔고, 세번째 부인이 하녀들을 때리고 구박하고 꼬집는 것까지 썼다.

윤치호는 나혜석이 이혼한 것과 박인덕이 이혼한 것까지 쉴드쳤다.

남자들은 첩을 들이거나, 첩을 안 들여도 칠거지악 말하면서 부인이 마음에 안들면 내쫓거나 하는데 왜 여자는 당당하게 이혼신청하면 어디 덧나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인덕은 기독교 교회를 자기가 장악하려던 신흥우에게 협조하자, 윤치호는 이때부터 박인덕을 안좋게 봤다. 물론 이혼한 것이나 다른 남자 만나는 것 때문은 아니다.

윤치호는 한국의 장례식이 슬픔 없는 행렬, 비싼 돈, 허례 허식으로 꽉 찼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혼식에 사람들 많이 부르는 것도 사치에 허세라고 꼬집었는데, 사촌동생 윤치소의 셋째아들 결혼식에 사촌동생 치오, 치소 등이 초대장에 공동 발송자로 박영효를 쓴 것 등을 언급하면서 같이 지적했다.

관련 저작

  • 윤치호 일기
  • 애국가(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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