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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화

K-위키
옛@58.141.212.147 (토론)님의 2019년 7월 20일 (토) 18:56 판
이 문서는 머대리에 대해 다룹니다.
머리카락도 결국 털일 뿐입니다. 털이 없다는 건 성스럽고 진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봐 머대리, 머리 좀 기르세, //네 과장님 ㅠㅠ)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틀:갓배우

"The Archfiend" 금강야차 이의민

"The Tank" 전두환

"The True Protagonist" 설인귀

대한민국의 명품배우로서 TV 영화 등에서 많이 출연하며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

언젠진 모르겠는데 너 나 우리가 응아응아 하며 태어나기 전부터 정상급 배우였을거다

악역배우의 전설이다. 이 사람보다 악역 잘하는 배우는 대한민국에 단언컨데, 없다.

탈모가 생겨서 가발을 쓰게 되었는데 빠지기 전 하고 얼핏 비슷하다

머리카락은 없어졌어도 연기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예쁘게, 멋지게만 나올려고 하며 작품 전체의 흐름을 못 살리는 요즘 몇몇 남녀 배우들은 이덕화 안성기 설경구 등 명품배우들을 보며 반성해야된다

작품 주연 점령 욕심은 많으면서 그지랄하다간 나중에 노잼 그자체가 된 일본 영상물이나 한때 리즈찍다 좆망한 홍콩 영화처럼 되버린다

김영삼 대통령과는 반쯤 친척인데 김영삼의 큰딸, 그러니까 김현철의 누나가 이덕화랑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인 동갑내기 친구다.

그래서 김영삼 대통령이 살아생전에는 이덕화만큼은 아예 자신의 장남으로 여겼다. 이덕화도 김영삼을 사실상 아버지로 모셨다.

  • 김영삼: 덕화야, 할 거 없으면 맥주나 한잔 하자.
  • 이덕화: 네, 좋죠 아부지.

이런 인연으로 인해 이덕화는 자기가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김영삼을 도와주려고 지역구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었는데 남궁진한테 고작 1,400표 차이로 아깝게 낙선하고 말았다. 이 선거출마 후유증 때문에 이덕화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무인도에서 서식하며 공백기를 맞이하게 된다. 낚시를 시작한 게 여기서였다나 뭐라나...

아주 안좋은 과거가 하나 있다.

틀:아픔

죄 지은 건 아니다.

이덕화는 친한 동생 전영록에게 오토바이를 빌려탄 적이 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일로 인해 전영록의 오토바이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이 때가 1977년이다. 디키러들이 태어나기 한참 두참이나 전의 일이고 이덕화는 이 때 데뷔 5년차 배우였다.

이덕화는 생명이 위독했고 겨우 살아났으나 엉덩이를 완전히 제거할 정도로 큰 중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허벅지 뱃살 등 살점을 여기저기 이어붙여 엉덩이를 아예 새로 짰다. 이 때문에 이덕화는 장애 3급이다.

칼빵 한 번 맞으면 2~30바늘을 꿰매는데 이덕화는 이 사고로 무려 1,500바늘이나 꿰맸다. 이건 레알 시체를 되살려 놓은 수준의 대수술이었다.

이덕화 담당의사의 입장에서는 이만큼 영원히 잊지 못할 환자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환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임과 동시에 가장 크고 가장 어려운 수술을 한 환자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인들에게 자기가 이덕화 살려낸걸 자랑하고 다닐 것이다.

이 교통사고로 이덕화는 3년 정도 병원에 입원했는데(실제로는 1981년 초에 퇴원) 첫 10개월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고 뻑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집중관리대상이었다. 이덕화 본인의 말로는 하루하루가 비명으로 시작해서 비명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의 생지옥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는 났으니 천만 다행이다. 그 위엄쩌는 탱크보이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인가.

더 큰일은 이 사고 때문에 그 당시 지병으로 치료를 받던 이덕화의 아버지이자 원로배우인 이예춘이 아들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때문에 쇼크를 엄청나게 먹고 사망했다.

이 순간이 이덕화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자신은 반신불수 되고 아버지는 작고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재 오래사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