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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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 죄다 쓰까묵은 적폐 쓰레기들! 히야! 없는 게 없네! 이게 씨발 조폭 새끼들이지 어딜봐서 글쟁이 면상이냐, 한국문학 살려내라, 씨발놈들아! |
| 이 대상은 천수를 누린 쓰레기들입니다!! 이새끼들은 죽을죄를 저질러 놓고 풍요롭게 살다간 인간말종들입니다. 이런 새끼들은 하루 빨리 부관참시를 시전합시다. |
李燦
프로필
개요
1929년 와세다대에 진학하여 임화를 만나 사회주의계열 문학운동에 뛰어든 전형적인 카프계열 문학가였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시기 변절, 1944년 <매일신보>, <신시대>에 실은 송출진학도같은 눈갱 친일시들을 열심히 싸질러왔다. 8.15 광복이후 고향인 북청으로 가서 활동했다가 1946년, 북괴 김혹부리우스 개씨발새끼 우상화의 비긴즈인 <김일성 장군의 노래>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북괴치하에서 노래로 만들어졌고 도서정리사업이후 북괴 김혹부리우스가 우상화됨에 따라 애국가의 자리를 뺏어버렸다. 우상화가 덜했던 1940년대에도 존나 많이 불렀지만.
그리고 본인은 혁명시인입네다 하면서 잘쳐먹고 잘살다가 뒤졌다. 이후 2002년 희곡 2작품을 포함한 친일작품 8개를 쓴 것이 발각되어 친일문학인 42인중 한명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