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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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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렁그렁이 2 (토론)님의 2019년 7월 4일 (목) 23:41 판
본 문서는 의학적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에, 어느 정도 완쾌된 뒤에 말해 주려고 했는데... 잘 알아두세요. 선생은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디시위키 따위의 민간의학을 맹신하고 따른 선생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에 감염되었거나 뭔가 이상한 것을 먹거나 만진 것 같다면 반드시 병원 및 보건소 등 전문 의료 기관을 내방하시어 의사양반의 진찰을 받으시고 처방받은 약은 꼬박꼬박 드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독감, 메르스, 우한폐렴 같은 범유행전염병에 걸린거같으면 괜히 병원에 가서 당신을 치료해야 할 의사양반을 중환자실로 보내지 마시고 일단 반드시 보건당국 1339에 전화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중환자실에는 몸에 해로운 전화가 없습니다.

ㄴ이틀 왼쪽사진의 주인공이 태어난 곳이다.

대한민국 평안도행정구역

평안북도
자치시 신의주시
자치군 의주군 · 용천군 · 철산군 · 선천군 · 정주군 · 박천군 · 태천군 · 영변군 · 운산군 · 구성군
창성군 · 벽동군 · 삭주군 · 초산군 · 위원군 · 희천군 · 강계군 · 자성군 · 후창군

평안남도
자치시 평양시 · 진남포시
자치군 안주군 · 대동군 · 순천군 · 맹산군 · 양덕군 · 성천군 · 강동군 · 중화군 · 용강군 · 강서군
평원군 · 개천군 · 덕천군 · 영원군
참고 참고: 한국의 행정구역 ·밑줄: 도청소재지

개요

고려거란에게 강동 6주 할양받을때 들어온 땅이다. 수양대군이전까진 바로 위쪽의 구성군과 엮여 구주(龜州)라고 불렸고 근처에 위주(渭州)랑 수주(隋州)도 뒀었다는데, 고려 자체가 제대로 연구된게없는거랑 씨발놈덕분에 북한지역이 석기시대로 돌아간 것때문에 위주와 수주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청천강바로 이북의 널찍한 평야지역이다보니 농업으로 먹고살기도 했고 대몽항쟁, 여요전쟁, 병자호란때 주요 격전지가 되었다. 그리고 구한말엔 갓승훈 슨상님께서 이 군에 오산학교를 세웠지만 북괴새끼들한테 교정 털리고 지금은 서울 용산구로 옮겨졌다. 선천군, 평양과 함께 평안도 장로교대빵지역 3대장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때 인근의 곽산군과 가산군의 절반을 흡수하면서 군역이 넓어졌다. 하지만 북괴치하에서 곽산군이 분리되고 구 가산군지역은 운전군으로 분리되면서 존나게 쪼그라들었다.

영변원전으로 청천강일대가 완전히 씹창났기때문에 아마 통일이후엔 여기가 기존의 지역맹주였던 개천군, 안주시, 영변군의 대체재가 되어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읍면

舊 정주목 지역

정주읍

定州邑

면적 16.26㎢. 읍소재지는 성내동.

성내(城內), 서주(西州), 성외(城外), 덕산(德山)의 4개동을 관할했다. 1913년 동부면과 서부면을 합병시켜 만들어졌고 1931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 천검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읍의 진산인 독장산 여맥에 북장대(北將臺)가 솟아있고, 동쪽에는 달천강이 남류한다.

길상산(吉祥山)에서 발원한 그 지류와 석현, 심원산에서 발원한 줄기가 합류하여 황해로 들어간다. 하천변에는 범람원이 발달, 관개에 의한 논농사가 활발하다. 성외동에 이성계최유를 두들겨팬 것을 기념했던 성적비와 북장대 아래 봉명암이 중요 명승고적으로 있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됬는지 아무도 모른다.

갈산면

葛山面

면적 48.44㎢. 면소재지는 정양동.

정양(鼎陽), 익성(益城), 광동(光東), 용흥(龍興), 흥록(興麓), 일해(逸海), 서남(瑞南), 애도(艾島)의 8개리를 관할했다.

1913년 갈지면(葛池面), 오산면(五山面), 가산군 군내면의 월경지인 애도리를 편입하여 만들어졌다. 면 북쪽에 자성산(慈聖山, 254m), 정정산(鼎定山, 222m)이 있고 남동쪽에는 검산(劍山,186m)이 있었다. 북동쪽 장포천가에는 넓은 충적지가 있어 그곳에서 논농사가 행해졌다고 한다.

남쪽해안에 애도(艾島), 붕배도(崩盃島)같은 섬들을 관할했는데, 북괴치하에선 간척사업이 이뤄져서 땅이란 연결된듯. 제석사(帝釋寺), 자성사(慈聖寺), 일해정(逸海亭)등이 있었다.

또한 이승훈이 세운 민족학교이자 조만식과 같은 한국 근현대사 네임드들이 교직원으로 일하거나 본학교를 졸업했던 것으로 유명한 오산학교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원건물은 북괴치하에서 정주농업단과대학으로 개조되었다고 한다.

고덕면

古德面

면적 48.79㎢. 면소재지는 월훈동.

월훈(月暈), 덕원(德元), 관해(觀海), 갈현(葛峴), 일신(日新), 운평(雲坪)의 6개동을 관할했다.

고읍면(古邑面)과 덕암면(德巖面)을 합하여 만들어졌는데, 1931년 고읍면에서 고덕면으로 개명되었다. 면 북쪽의 연향산(延香山, 212m)이 있고 중앙의 천주산(天柱山, 142m)을 제외하면 전지역이 평지였다.

일신동에 이상태를 배향한 신곡사가 있었다.

고안면

高案面

면적 193.04㎢. 면소재지는 소암동.

소암(小巖), 안흥(安興), 송정(松亭), 대양(大陽), 연봉(延鳳), 어호(漁湖), 송포(松浦), 탄우(灘隅), 용포(龍浦), 심천(深川), 봉명(鳳鳴), 독장(獨將)의 12개동을 관할했다.

1931년 고현면(高峴面), 신안면(新安面), 동주면(東州面)의 3개면을 합하여 만들어졌다. 면 서쪽 경계에 심원산, 독장산이 있으며, 달천강이 중앙을 남동류하며 넓은 충적지를 만들었다. 이 충적지에서 쌀이 많이 생산된다고 한다.

봉명동에 심원사, 상원암(上院庵), 수도암(修道庵)이 있었고 안흥동에는 무릉탄(武陵灘)과 석수봉(石秀峰), 대양동에 미륵당(彌勒堂), 연봉동에 약수천(藥水泉)등 오만가지 랜드마크들이 존재했다.

남서면

南西面

면적 66.34㎢. 면소재지는 남양동.

남양(南陽), 화산(華山), 남호(南湖), 보산(寶山), 상단(上端), 하단(下端), 서호(西湖)의 7개동이 있었다.

1931년 남면(南面), 서면(西面)을 합하여 만들어졌다. 전지역은 송왕산등의 270m 주봉을 중심으로 100m내외의 저구릉지로 구성되었으며 평지는 남쪽해안의 간척지와 달천강 연변의 범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보산동에 문곡사(文谷祠)가, 청룡골에는 조헌의 위패를 모신 이택사(麗澤祠), 화산동에 공민왕때 원나라 덕흥군(德興君)을 맞아 진을 친 원수대(元帥臺)가 있었고, 부속도서로 고송과 단층이 절경을 이루며 단 아래의 폭포가 아름다웠던 선도(蟬島)가 있었다고 한다.

대전면

大田面

면적 32.82㎢. 면소재지는 운전동.

운전(雲田), 운학(雲鶴), 운흥(雲興), 강서(江西), 대흥(大興), 운산(雲山)의 6개동을 관할했다.

1913년 운전면(雲田面)과 대명면(大明面)을 합하여 만들어졌다.

중앙부는 평지지만 북쪽은 천려산(天麗山, 259m), 칠악산등이 솟아있었으며 평지지역은 청천강이 남쪽을 연해 흐르는데다 1924년 동인수리조합몽리구역으로 지정되 개간된 덕에 광복이전 평안북도의 주요 곡창지대로 떡상했다.

러일전쟁시기 좆본군이 상륙했던 하일포(河日浦)가 본면에 있었다.

덕언면

德彦面

면적 82.28㎢. 면소재지는 대성동.

대성(大成), 원봉(圓峰), 덕성(德星), 육성(六星), 석산(石山), 대산(大山), 신창(新倉), 증봉(甑峰), 방천(防川), 침향(沈香)의 10개동을 관할했다.

1931년 덕달면(德達面), 이언면(伊彦面), 아이포면(阿耳浦面)의 3개면을 병합하여 만들어졌다. 북쪽의 묘두산, 남쪽 해안가의 증봉산(甑峰山, 162m), 동쪽에 제석산이 있었는데 서쪽 남서면과의 경계지역에서 남류하는 달천강유역에 평야가 형성되었다.

덕성동에는 매우 큰 호수인 덕성저수지가 있었다고 한다.

충의단, 옛 장성, 망해정(望海亭), 봉수산(烽燧山)등의 고적이 있었다.

마산면

馬山面

면적 64.39㎢. 면소재지는 청정동.

청정(淸亭), 동창(東倉), 원서(院西), 원동(院東), 옥야(玉野), 춘산(春山), 신오(新五)의 7개동을 관할했다.

1913년 마산면, 서원면(西院面)의 일부를 합하여 만들어졌다. 남쪽 대전면과의 경계지에 천려산이 있고 중앙 남쪽에 용장산(龍藏山, 300m)이 있어 면대부분이 험한 산악지대였다.

舊 곽산군 지역

본래 장리현(長利縣)이었는데 발해멸망이후 여진족에 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서희가 상납받은 뒤 그지역에 정착했던 여진족을 쫓아내고 황폐화된 지역을 개척하여 강동 6주중 하나인 곽주(郭州)가 설치되었고 1018년 방어사가 파견되었다. 1221년 반란이 일어나 정양현(定襄縣)으로 강등먹었고 1231년 몽골군의 침공을 받아 섬으로 치소가 옮겨졌다. 1260년 본토를 수복하면서 치소가 원래위치로 옮겨졌으며 수주(隨州)의 속주가 되었다. 1371년 드디어, 군으로 부활해서 1413년 주이름을 갈아치우면서 곽산군이 되었다.

곽산면

郭山面

면적 16.82㎢. 면소재지는 염호동.

염호(鹽湖), 남단(南端), 조산(造山), 석(石)의 4개동을 관할했다.

곽산군의 중심지였다. 1913년 곽산군이 정주군에 통폐합될 때 곽산군 군내면에서 곽산면으로 개명되었다.

면 중앙부에 조산(造山, 128m), 남부에 남산(南山, 122m)이라는 동네 언덕만한 좆만한 산들이 있었고 나머지는 100m내외의 구릉지대였다. 서쪽 주송강(酒松江)변에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만들어졌고, 여기서 논농사가 행해졌다.

염호동에는 조선의 서북지역 핵심 방어지역이었던 능한산성이 있는데, 북괴치하에서도 보호되고있다. 남다동과 염호동 경계 투구봉에 봉수대가 있고 능한산에는 용연(龍淵), 자운사가 있었다.

관주면

觀舟面

면적 32.95㎢. 면소재지는 초장동.

초장(草庄), 근담(近潭), 주학(舟鶴), 관삽(觀揷)의 4개동을 관할했다.

1913년 곽산군 우면(亏面), 관면(館面)이 합병되면서 만들어졌다. 중앙의 통경산(通景山, 217m)을 빼면 전지역이 200m미만의 저구릉지이며, 관삽동지역에는 넓은 간척평야가 분포했다. 이 간척평야에서 쌀, 조, 수수, 콩등의 곡물이 생산되었고 해안지방에서 조개, 낙지, 망둥이등이 잡히는등 물산이 풍부했지만 북괴치하에선 공산화로 뭐다 좆투더망.

관삽동의 해변지역은 물고기 비늘처럼 생긴 병풍바위들이 늘어선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안흥면

安興面

면적 32.90㎢. 면소재지는 안의동.

안의(安義), 호현(好峴), 암죽(巖竹), 임암(林巖), 삼단(三端)의 5개동을 관할했다. 1913년 곽산군 남면, 서면을 합하면서 만들어졌다. 서쪽에는 청암산(靑巖山, 184m)이 있고 선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남서류, 황해로 들어가는 동래강이 있었다. 이중 동래강유역과 안의동지역에 넓은 평야가 만들어졌다.

옥천면

玉泉面

면적 128.23㎢. 면소재지는 문인동.

문인(文仁), 군산(君山), 월옥(月玉), 상단(上端), 당하(堂下)의 5개동을 관할했다.

1913년 곽산군 북면에서 정주군 옥천면으로 개명되었다. 남서쪽에 검무산(劍舞山, 288m), 중앙 남부에 지령산(地靈山, 415m)이 있었고 다른지역은 300m 내외의 구릉지로 구성되었다. 서쪽 동래강연변의 소규모 충적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밭농사로 먹고살았다.

상단동에 발해때 창건된 사찰인 개원사(開元寺)가 있었는데 용케도 6.25 도서정리사업 고난의행군때 살아남았다.

서쪽 월출암과 동쪽에 장경사의 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임포면

臨浦面

면적 64.45㎢. 면소재지는 원단동.

원단(元端), 염호(濂湖), 원포(遠浦), 천태(天台), 장도(獐島), 고성(古盛), 동로(東路), 원하(元下)의 8개동을 관할했다.

1931년 임해면(臨海面)과 해산면(海山面)이 합병되면서 만들어졌다. 남동쪽 반도끝에 천태산, 범우산이 있었고 서쪽 면계에선 사송강이 남류해 황해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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