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흥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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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ần Hưng Đạo (陳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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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항복하시려거든 먼저 신의 목을 베어주소서! |
” |
베트남의 이순신
본토 발음은 쩐흥다오다
베트남 대월의 장군으로, 천부적인 전략가이며, 베트남의 민족영웅이다. 당시 대월의 황제인 태종의 조카였다.
13세기 후반 그 동북아부터 동구권까지 평정한 몽골 제국의 침입을 세번이나 막아냈으며, 초토전술과 게릴라전을 적절히 구사하여 소수의 병력을 가지고 몽골 제국을 능욕해줬다.
몽골이 하도 북방에서 쳐들어오면 다막아내니까 빡친나머지 베트남 남부 소수민족인 점성까지 끌어들여서 통킹만따라서 쭉돌아가서 점성쪽에서 베트남을 공격하는 작전까지 써봤지만 점성도 당시엔 개병신수준의 군사력에 번번히 베트남의병들에게 목따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쿠빌라이 칸이 뒈짖하자 원나라는 내부 사정이 좋지못해 베트남 정벌을 포기한다. 이렇게해서 갓-비엣남의 자랑거리가 생긴것이다. 원나라도 중국 역사니까 베트남은 중국을 상대로 1승을 거둔셈.
전후에는 황제로부터 대왕[1] 의 작위를 받았지만 항상 겸손한 생활을 했으며 죽기 전에 "군대는 가족처럼 단결시키고 백성을 너그럽게 대하여 그 힘으로 대업을 이루십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와 같이 전장을 누비던 장병들과 백성들은 물론이고 동맹을 맺고 같이 몽골에 저항한 점성에서도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오늘날 공산월남 인민들이랑 자유월남 출신 월교들에게는 광중제 완문혜와 더불어 민족 영웅이나 다름없는 위상을 지니고 있다. 특히 베트남 본토에서는 봉건시대부터 진흥도를 신으로 섬기는 사당이 많이 만들어졌고 자유월남 때는 응우옌 반 티에우 대통령의 지시 아래 500동짜리 지폐에 진흥도의 얼굴이 새겨지고 사이공의 박당부두에는 조각가 팜 통이 진흥도의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2] 월남패망 이후에도 공산정권에 의해 자유월남의 흔적들이 많이 갈려나갔지만 진흥도 동상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