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동북아시아 주로 중국에서 사용한 국가의 이름

전국 시대의 국가 韓

韓을 쓴다. 전국 7웅중 하나인 나라.

본디 진晉나라의 신하들인 조씨위와 위씨와 함께 진나라를 분할하여 주나라에 승인 받아 춘추 5패중 하나였던 진나라는 공중분해되어 사라지고,

각각 한나라, 조나라, 위나라가 되었으며 이 사건을 기점으로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나눈다.

초나라와 진나라의 압박에 시달리며 찐따로 전락했다가 전국 통일을 결심한 시황제의 진나라에게 첫빠따로 얻어맞고 멸망한다.

군장비의 질이 높기로 이름 높았지만 나라가 작다보니 그걸 운용할 병력차이를 극복못하고 전국 7웅중 가장 약한나라로 평가한다.

한반도계 국가 韓

한국사의 시대구분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 주호 · 우산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우산
두막루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 탐라 · 소고구려 · 소백제 · 보덕국

후삼국시대
신라 · 발해
태봉 · 후백제 (반란세력)
통일왕조 시대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대한광복군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한반도 남부의 고대국가 삼한

三韓. 마한 목지국의 왕이 고조선의 후계국가 진나라의 왕임을 자처하였다. 자세한건 삼한 항목 참조

한반도 최후의 통일왕조 대한제국

大韓帝國. 대한제국은 중국의 한나라들과 구별을 위하여 굳이 나라 라고 붙히지는 않지만, 청나라도 정식명칭은 대청제국이다.

삼한때문에 한반도를 한이라고 부르는 용법이 정착되었고 여기에서 따와서 국호를 정했다고 한다.

한반도 현대국가 대한민국

大韓民國. 이 나라는 위의 대한제국에서 나라의 이름을 따왔다.

중국의 고머 통일왕조 한漢

이 나라는 위의 한나라들과 달리 한수 한漢자를 쓴다.

소개

400년이라는 긴 통치기간을 갖고 있고 있고 때문에 사실상 중국이라는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담당하고 있는 나라이다.

주나라의 경우 통일왕조라고 보기에는 거시기했고,

진나라의 경우에는 통일왕조이기는 했지만, 오랑캐 의혹에 더하여서 치세가 너무 짧았다.

한족이라는 말이 이 나라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족의 글자 = 한자

전쟁도 꽤 잘 했다. 흉노한테 굴욕당한적도 있지만 나중에는 흉노도 밀어냈고 고조선을 멸망시켰고

유교를 대대적으로 도입한것도 이때다.

본문

사실상 하나의 중국을 가능하게 한 나라다. 그전까지의 중국은 지역에 따라 언어, 문자, 단위가 다 제각각이었으며, 따라서 수많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차이점은 사람들의 생각에도 강하게 뿌리내려져 있었으므로, 서로간에도 민족적 동질 의식보다는 서로 다른 나라 사람들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전한과 후한에 이르며 장장 400여년간 같은 나라 사람으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단 이 인식은 진시황진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편이 옳다)

별칭인 서한(西漢)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서쪽에 위치한 도시인 장안이 도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에 낙양을 도읍으로 삼은 후한은 동한(東漢)이라고도 구분된다.

중국을 대표하는 민족인 한족이 사실상 하나의 민족이라고 보기 어려운 외관과 혈면 그리고 문화적으로 차이가 나는 많은 지역의 수많은 민족을 통합하여 이룩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것을 중국이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 있게 한 점은 한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중국의 민족을 한나라의 한(漢)자를 따서 한(漢)족이라 부르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자.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중화(中華)가 시작된 뿌리라 봐도 무방하다.

그 때문에 수많은 시대에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즐비하는 중국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받으며 상당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하나의 중국이 시작되었다는 것만도 아닌데, 일단 동아시아 문화권의 핵심인 유교가 국학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고 -다만 전한은 도가적 사상과 도교가 강세여서, 한무제가 유교를 국교화 하면서도 두태후 눈치를 보느라 고생을 했고, 국학이 된 다음에도 도가적 사상과 도교는 여전히 강력했다. 후한은 다르다. 광무제 유수는 태학(太學)에서 공부 했던 사람으로, 유교의 세는 후한때 훨씬 강해진다. 그런데 여담으로 광무제는 참위와 도참에 꽤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핵심인 율령(律令) 역시 BC 130년 장탕(張湯)과 조우(趙禹) 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군현제도가 정비된 것도 이 시기이다. 역시 시작은 이사의 건의에 따라 진나라가 먼저 시행했지만 법가사상에 의한 폭정으로 순식간에 망해버려서…… 이후 진나라를 멸망시킨 항우는 천하를 다시 제후들이 나누어 통치하는 봉건제(封建制)로 부활시켰지만, 반대로 유방은 장량의 건의에 따라 천하를 분열케하는 봉건제 대신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하였고- 역이기는 이때 봉건제를 주장하다가, 장량에게 논파당하고 유방에게 욕을 얻어 먹는다.-이후 오초칠국의 난과 무제 시기를 걸쳐 중국 전체에 군현제가 완전히 확립되었다. 이 군현제는 이후 장장 2000년간 중국 통치 시스템의 기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국은 유럽 등의 타지역과는 비교될 수 없을만큼 빠른 시기에 광대한 지역에 중앙 집권의 영향력을 완전히 확립할 수 있었다.

또한 무제 시기의 군사 작전으로 이후 중국 주변국의 역사에 어마어마한 파장을 미쳐오기도 했다. 엄청난 힘을 자랑하던 최초의 유목 제국 흉노에 대한 미칠듯한 공세로 인해 흉노는 큰 타격을 입어 이전같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남월은 순식간에 멸망당하고 대신 9군이 세워지게 되면서 베트남은 이후 수백, 수천년간 이어지는 중국과의 지리한 대립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의 역사에도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바로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것이 전한이기 때문이다. 다만 위만조선은 이전의 남월에 비하면 한나라도 꽤나 고생을 해서 멸망시켰으니 위안을 삼아야 할까싶다. 그리고 정복한 한반도 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하였는데, 유민들의 저항과 고구려의 성장과 한사군 자체의 통제력 문제로 얼마 못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이때 부여와의 관계도 다소 서먹해졌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전한의 위업이라는게 죄다 한무제 때 이루어졌는데. 이에 따른 엄청난 지출이 있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전한에게 막대한 피해로 되돌아왔다. 단 한무제 이후로 전한이 그 정도의 넘치는 포스를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성급하게 다 망해간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선제라는 명군의 활약으로 어느정도 후유증을 회복했고, 망해간다는 나라의 인구가 6000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은 멸망할때까지 그 망해간다는 전한의 인구수에 도달하지 못하고(설사 사람 자체는 더 늘어났다고 해도, 집계할 능력이 더 떨어졌을 수도 있다) 멸망했다. 삼국시대가 시작되면서 그 인구 숫자는 더 나락으로 떨어지고 몇백년이 넘도록 회복이 되지 못했는데, 중국 대륙이 다시듬 그 시기의 이상의 인구 숫자를 회복한 때는 무려 600년이 지난 수문제의 빛나는 개황의 치 시대였다. 하지만 수양제가 출동하면 어떨까? 전한이 멸망할때를 보면 중국사에서도 유례없이 조용하게, 별다른 일 없이 왕망에게 넘어간다. - 왕망의 신급의 정보조작 능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왕망은 자신을 꾸미는데 엄청난 재주를 지녔는데, 후대에는 별 생각없이 시행되었던 선양도 왕망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결국 후대의 황제들이 너무 나이가 어리거나 황제가 되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 계속 나타나면서 왕망에게 빼앗겼지만, 그렇게 전한이 급속도로 내리막길을 걸었다면, 온갖 권력쟁탈의 대결이 벌어지며 대혼돈이 일어났어야 앞뒤가 맞지 않을까?

역시나 대혼돈을 피해가지 못했다. 전한의 6천만에 가까웠다는 인구수가 조사된 시기가 AD 2년이었는데, 광무제가 죽은 AD 57년의 인구수는 2800만이었다. 무슨 짓을 한거냐 왕망 (다만 인구 통계의 경우 호적에 모든 인구가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평시에도 유교적 정책에 의해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호구조사를 엄격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고, 난세가 되면 유랑민이나 대호족의 예속민이 누락되기 일쑤였다. 그러므로 난세의 인구급감은 대규모의 아사나 학살의 문제도 있지만, 국가의 행정체계와 통제력의 붕괴로 인한 제대로된 호구 조사와 이에 따른 합당한 파악이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여하튼 고대 동아시아의 압도적 패권국가. 막말로 다른 나라들은 이제 나라라는 모양새을 좀 갖추어가고 있는데 이를 비유하자면 인구 6000만에 초원으로 10만 명 이상의 기병을 진격 시키는 등 말도 안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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