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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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와집을 연상하지만 조선시대 때 일반 서민들은 초가집이라는 아프리카 토인들이나 살만한 곳에서 살았다.
오랑캐라고 무시하는 청나라에는 벽돌집이 있고 에도에는 2,3층 집이 수두룩 했으나
조선에선 온리 1층 짜리 건물밖에 없었다. 정확히는 조선 후기 이후. 왜냐하면 기후가 엄청 추웠기 때문, 특히 소빙하기 이후 이런 현상을 부채질 하였다. 그렇게 빨아대는 온돌 보급화로 바닥이 무거워져 이층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 했다. 이층을 지으면 공간 낭비 + 자원 낭비 게다가 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이층을 선호하지 않았다. 가끔 권위 살린답시고 이층 넘게 올리는 경우나 상가, 탑, 성 같은 구조물 이외 이층건물은 드문편.
궁궐 같은 좀 화려한 곳을 보면 이층 건물이 있긴있었다.
특히 고려나 조선 중 전기만 해도 궁궐에 2층 이상은 흔한 편이었다고 한다.
가끔 휜 목재나 나무 둥치까지 건축재로 쓰는 것을 도랑주라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하였다고 개소리 정신승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저 곧은 목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옥 난방 한답시고, 주변 산은 민둥산됐다.
그나마 기와집 만큼은 특유의 독창적인 형태와 안정적인 중채도로 2000년도 이후 현대화에 성공한 케이스다. 그래서 한옥에서 살고 싶어하는 씹선비들이 있는데, 한옥은 주제에 안맞게 창렬가격이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에 뿅가는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어느정도 효과를 보고 있고 특히 이런 인기는 눈이 썩어버리는 제관 양식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