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요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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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이 죽기 전에 남겼던 10가지 유훈. 사실 제대로 지켜진 건 거의 없다. 사찰은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 따른 계산을 통해서 필요한 만큼만 지은 것이므로 더 이상 새로 짓지 말라는 것(2조)도 안 지켜졌고 서경을 중시하라는 것(5조)도 후기에 지켜지지 않았다. 연등회와 팔관회를 성대하게 지내라는 것(6조)도 성종 때 최승로의 건의에 따라서 사실상 지켜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유훈이 아니라 일개 유언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뭔 소용이냐.

거란은 금수의나라이니 의관을 본받지말것(4조), 평양에 자주 행차할 것(5조),

가장 중요한 것이 훈요8조: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외(外)의 산형지세가 모두 본주(本主)를 배역(背逆)해 인심도 또한 그러하니, 저 아랫녘의 군민이 조정에 참여해 왕후(王侯)·국척(國戚)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혹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혹 통합(후백제의 합병)의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여기서 '차현 이남 공주강외'라는 표현은 그동안 호남 새끼들이 하도 사고 치고 다녀서 호남을 욕하는 근거로 자주 사용되어왔다. 근데 실제로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이 고려에게 거세게 저항하던 후백제 일대라서 그거 경계하라는 뜻에서 넣은 것이지, 지역드립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2조에서 치켜세우다시피하는 도선국사는 영암군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