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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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위정위구 (토론)님의 2019년 1월 22일 (화) 18:59 판 (새 문서: {{혐오|다된죽에 코푼건 물론이고 수백만 이산가족을 만든 중공군씨발새끼들}}{{감동}}{{감동}}{{심플/망함}} 멸공통일각찍은거 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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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상은 이미 망했습니다.

멸공통일각찍은거 한순간에 물거품냈던 중공군의 공세로 인한 대후퇴를 일컫는 말.

다부동 전투에서 승전한 한미연합군은 9월 28일 서울을 수복, 이후 10월 20일 평양을 수복하는등 한미연합군은 연전연승을 하면서 북괴 점령지를 고속삭제해나갔다.

하지만 10월 26일부터 시작된 운산 - 영변전투이후 미군의 오판과 미군의 약점을 간파한 팽덕회휘하 중공군의 맹공에 여러차례 패배하면서 초산군, 부령군, 혜산군까지 올라갔던 전선은 순식간에 내려가 1951년 1월 4일 서울도 털리고 전선이 평택시, 오산시까지 내려가게 되었다. [1]

이때 쇼크먹은[2] 아예 만주에 핵을 날리고 대만군의 화남상륙까지 고려했지만 [해리 S. 트루먼]]이 제 3차 세계대전일으킬거냐고 화내서 나가리먹었고 미국은 아예 한반도 포기할까....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철수직전에 미군은 공산군을 말려죽이기 위한 청야전술의 일환인 초토화 작전으로 수복지역에 네이팜탄을 무지막지하게 뿌리고 갔기 때문에 한반도 중북부지역은 거의 초토화되었고 수많은 문화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끔찍한 일까지 터지게 되었다.

빨갱이새끼들이 도망치면서 사람 오지게 많이 죽여놓고 또 빨갱이치하에 다시 들어가면 무슨 끔찍한 일이 생길지 불보듯 뻔했기에[3]국군의 수복지에 있던 수백만의 주민들은 철수하는 국군따라 월남하기 시작했는데, 흥남시원산시가 먼저털려서 배타고 철수하느라 배탈려고 몸싸움하다 물에빠져 물귀신이 된 사람이 수두룩했고 평양의 경우 평양철교가 끊어져서 평양철교의 교량을 타고 피난을 가는 실로 눈물겨운 광경이 한반도 전역에서 벌어졌다.

이 피난속에서 그래도 국군은 다시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부러 일부가족을 훗날 공산군이 점령하는 지역에 두고오거나 피난중에 잠깐의 실수로 가족과 헤어져 수없이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1. 사실 팽덕회는 평양 - 원산선으로 통칠생각으로 맹공을 가했는데, 멘붕상태에 이른 미군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평양일대를 포기하고 후퇴할 줄은 몰랐다고 한다.
  2. 사실 지가 중공군이 대공세를 펼칠거라는 1사단의 보고도 씹은 지잘못도 있긴하다만.
  3. 북괴군이 점령한 남한지역말고도 기존의 북한지역도 철수하면서 지들이 미리 찍어둔 반공인사나 우익마을들을 학살하고 갔다. 북한지역에서 이런식으로 학살당한 사람이 거의 12만쯤 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