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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F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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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리야스필 (토론)님의 2015년 11월 1일 (일) 16:05 판 (역사)

개요

FN의 엔지니어인 디외도네 세브는 1930년대 중반부터 리코일 작동식의 반자동소총을 연구하여 1937년에 시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양산 직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2차대전이 발발하고 벨기에에 대한 나치의 위협이 심해지자, 계획은 중단되고 FN의 생산 라인은 기존 소총을 양산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0년 독일이 침공하자 벨기에는 보름 만에 항복했고, FN 생산시설도 독일군이 접수했다.

세브는 1941년 벨기에를 탈출하여 영국으로 망명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엔필드 조병창에서 총기 개발을 착수했다. 여기서 그는 종전 후 벨기에군이 제식화한 반자동소총 FN-49(SAFN)의 시제품을 1942년에 완성했다. 성능이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후에 본격적으로 FN-49가 재등장 했을 때 보병용 제식 소총은 AK-47, M14처럼 자동소총이 대세가 되어가는 도중이어서 조금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그러자 세브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발판으로 에르네스트 베르비에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자동소총 개발에 착수했다. 자동소총의 초기 역사에서 개발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고민이 기존 총탄을 그대로 사용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따.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StG44용 탄으로 잘 알려진 7.92x33mm 쿠르츠탄이었다. 이를 이용하여 1947년 FN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역사

1948년 벨기에군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시제품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는데, 이때 군 당국은 사용탄약을 .280 브리티시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일단 쿠르츠탄이 독일에서 제작한 탄이라 거부감이 ㅇ있었고 차후 동맹관계 등을 고려한다면 전쟁 당시 연합국의 탄 규격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당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FN은 개조에 나섰는데, 이렇게 상황에 맞춘 발 빠른 변화는 이후 FN FAL이 세계적 소총이 되는 기반이 되었다.

새로운 탄 규격에 맞추어 총을 개조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인데 FN은 이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내수만 바라보고 총을 제작할 수 없었던 기업환경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전후에 (게임좀 한판 하고 와서 다시 타이핑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