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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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리야스필 (토론)님의 2015년 11월 7일 (토) 15:00 판 (새 문서: =시기를 잘못 잡은 총= ==역사== '''1945년 SVT-40을 대신할 새로운 반자동 소총이 요구되자 SVT-40의 개발자인 '세르게이 시모노프'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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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를 잘못 잡은 총

역사

1945년 SVT-40을 대신할 새로운 반자동 소총이 요구되자 SVT-40의 개발자인 '세르게이 시모노프'가 개발한 소총이다. 총신 상부의 실린더에 가스르 보내 노리쇠를 후퇴시키는 가스작동식으로, 화약이 감소된 탄을 사용하다 보니 파괴력은 조금 줄었지만 문제되는 수준은 아니었고 유효사거리도 동일했다. 여기에 대용량 탄창을 사용할 수 있으면서도 10발 클립도 사용할 수 있어 범용성을 높였다. 적삭가공 방식으로 생산하여 대량생산에는 불리한 반면 내구성은 좋았다.

시제품은 군 당국으로부터 신뢰성과 내구성이 최고라는 대호평을 받았고, 1946년부터 제식화기로 대량 보급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동구권에 급속히 공여되었으면 여러 나라에서 카피 생산을 했다. 특히 중국은 ;56식 소총'이라 명명하여 주력 소총으로 채택했다. 전 세계에서 생산한 수량을 약 1,500만정으로 추정하는데 2차대전 당시에 사용된 SVT-40의 생산량이160만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SKS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자료마다 다르지만 상당수의 SKS가 6.25전쟁 당시에 공산군에 공급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당시 국군도 M1개런드를 사용했으므로 교전 시에 특별히 전력 우위를 점유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북한도 '63식 소총'이라는 이름으로 복제하여 오랫동안 사용한 SKS의 주요 사용자였다. 이처럼 SKS는 6.25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여러 지역 분쟁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대표적인 소총이었다.

신속한 퇴장

그런데 이처럼 뛰어난 소총이 불과 2년만에 소련군 제식무기에서 내려오는 수모를 겪었다. 결정적인 결함이 뒤늦게 발견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시쳇말로'함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대상이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총기 역사를 바꾼 AK-47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실 1944년 독일군이 전선에 등장시킨 StG44는 앞으로 보병용 소총이 얼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알려준 시금석이었지만 SKS는 새로운 트랜드를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시대에 AK-47이 있었다는 것은 SKS에게 한마디로 불행이었다.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총이었지만 반자동소총이 돌격소총과 함께할 수는 없는일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79년에 벌어진 중월전쟁이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현대화에 실채한 중공군은 병력의 우위만 믿고 베트남을 침공했다. 하지만 SKS 로 무장한 중공군은 AK-47로 무장된 베트남군에게 엄청난 수모를 겪었다.

같은 총탄이라도 어떤 총에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음을 보여준 증거였다. 소련군이 채택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도 않았던 SKS를 과감히 도태시킨 것도 이런 성능 차이 때무니었다. 또한 이는 SKS의 일선 보급량이 많지 않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만일 2차대전 때에 태어났다면, 아니면 AK-47이 10년만 늦게 태어났다면 한 시대를 충분히 풍미했을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사라진 소총이 바로 SKS다.

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