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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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서량 오랑캐에게 잡혀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내 외할아버지가 단경이라는 구라를 쳐서 서량 오랑캐들의 잦이에서 오줌을 한사발씩 받아내고 살아남은 삼국지의 잔머리 1인자다.
처음에는 동탁군 소속이었는데, 조정이 아닌 동탁의 근거지에 있던 때라 책략이 필요하지 않아선지 그 때의 기록은 없다. 동탁이 잘 되는 얘기 나오면 가후 덕분이라고 하는 놈들이 너무 많은데 절대 아니다.
그러다가 동탁이 죽고 왕윤이 옛 동탁의 부하들까지도 모조리 소탕하려 하자 가후는 자기 역시 거기에 해당될걸 알고 이각과 곽사, 장제, 번조를 부추겨 왕윤과 한판 붙게 만들었다. 왕윤은 이각 일당에게 죽고, 모처럼 동탁에게서 해방된 한황실은 다시 이각의 손아귀에 놓인다.
그래도 왕윤에게서 살아남으려던 것일뿐 양심은 있었는지, 아니면 이각과 곽사 밑에서 호의호식 해봐야 금방 망할걸 알았는지 황제와 대신들을 보호하다가 은근슬쩍 단외 밑으로, 장수 밑으로 소리소문없이 갈아탔다. 장수는 장제의 조카니까 서로 어느 정도는 알았을거다.
그러다가 장수가 조조에게 항복했지만, 조조가 장수의 숙모를 탐하자 장수가 조조를 죽이려고 했는데 가후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잘 나가는 조조를 놔두고 장수를 도왔다. 이게 가후의 큰 그림인지, 성격탓인지는 우리의 뇌피셜로 추측만 가능하다. 이 전투에서 조조의 장남 조앙과 호위대장 전위가 죽었다.
하지만 중원과 하북이 원소 vs 조조 2강 구도에 접어들자, 가후는 장수에게 당장 머릿수가 급한 조조에게 붙으라고 했다. 조조는 옛 일은 잊고 잘 해보자며 대환영했다.
근데 장수의 죽음에 관한 설 중에 자기 형 죽였다는 이유로 조비가 존나게 갈구니까 빡쳐서 죽었다는게 있고, 그 아들도 위풍의 난에 연좌되어 죽은거에 대해 조조와 조비의 보복이라는 추측이 난무하는데, 얘는 그런거 없고 오히려 조조와 조비의 신임을 받았다.
마초와 한수를 이간질시키는 등 조조 밑에서도 잔머리로 활동했고, 조조의 후계자 고민도 은근슬쩍 당빠 맏아들이라고 귀띔해줘서 해결해줬다. 지 개인감정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하는 조비는 아마 이 때부터 가후를 좋아했을거다.
하지만 여기서 잘못된 점은 조비가 가후를 태위에 올려놓은거다. 이 당시 태위는 윾교 가치관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윾교적 가치를 존나 잘 지킨 공자왈 맹자왈 영감님들에게 주는 명예직이었다.
ㄴ 가후는 147년생인데 이는 삼국지 전체 등장인물들과 비교해봐도 나이가 굉장히 많은 편이며 비슷한 나이대의 인물로는 한당, 황개, 감녕, 황충 등이 있다.
근데 가후는 실적이 뛰어난거지 윾교적 가치 따위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옆 동네의 제리가 조비의 이러한 인사를 비웃었고, 일식이 터지니까 하늘이 태위를 파직시키라고 그런거라며 씹선비들이 상소를 올렸다. 물론 조비가 거절했지만, 가후는 더 있어봤자 좋은 꼴 못 보겠다며 은퇴했다. 순욱(우리가 잘 아는 조조 신하)과 같은 일족인 짝퉁 순욱도 사마염한테 가후가 태위된 걸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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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송지가 보건데《전(傳)》에는 “어진 사람의 말은 그 이점이 너무나 많다”라고 했다. 그러나 어질지 못한 말은 그 이치가 반드시 거꾸로이다. 무릇 어진 사람의 공덕은 드러나기가 어렵지만, 혼란의 원천은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행동이 화의 기틀이 되면 재앙이 무려 백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 그 때는 원흉인 동탁이 이미 효수되어 천지가 다시 시작을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화근을 다시 만들어서 커다란 가시나무가 잔뜩 자라나게 했으니, 전국이 다시 망가지는 애석함이 초래되고, 백성들과 아이들은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가후의 몇 마디 말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후의 죄가 어찌 크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은 없었다. - 위서 가후전 주석 배송지의 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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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를 잘해서 동탁-이각-단외-장수-조조&조비로 군주를 갈아 타면서도 인정받았다. 그것도 단순히 "응 항복" 수준도 아니다. 일단 조조가 표면상으로는 한실의 보호자를 자청하는 이상 이각의 참모였다는 것부터가 죽을 죄였고, 장수 밑에서 일할 때는 조조의 장남 조앙을 죽게 한 전과가 있는데도 시기적절하게 조조에게 항복해 77세의 나이로 늙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다 간거다.
게다가 처세술 뿐만 아니라 50년동안 한번도 실패한 계책을 내놓지 않아 제갈량보다 뛰어난 책사라는 평도 받고 있다. 그것 때문에 빠돌이 빠순이가 존나 많다
ㄴ 사실 제갈량은 연의거품 때문에 그렇지 책사가 아닌 우수한 정치가라 비교대상이 좀 빗나갔다.
문제는 책략 내줄 놈을 잘못 고른거다. 이각, 곽사는 이 새끼 책략 때문에 정권 잡았다.
또 가후의 처세술 고평가 중 '인간 관계를 거의 안 맺고 숨죽이며 살았고, 사돈도 잘 나가는 집과는 맺지 않았다.'라는게 있는데, 최근에는 이건 거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시는 윾교 사회라서 가문의 체면을 중시했던데다가 동탁, 이각, 곽사가 깽판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부하로 쓴 조조, 조비 빼면 누가 가후를 맘에 들어해서 사돈 맺고 친하게 지내겠는가. 오늘날에 비유해보면 그야말로 전낙지가 광주 대학살을 벌일 당시 참모였던 놈이 은근슬쩍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 친박 세력에 서고 지금은 방향을 180도 바꿔서 달빠로 전향한거다.
결국 가후의 처세란건 오늘날 헬조선을 좀먹는 개새끼들이 하는 행동이랑 다를 바 없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