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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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124.58.208.45 (토론)님의 2020년 2월 23일 (일) 18:35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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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대 왕비
중종 계비
14대 정현왕후 윤씨
연산군 비
15대 거창군부인 신씨
(폐비 신씨)
중종 원비
16대 단경왕후 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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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연산군의 비. 보통 폐비 신씨라 한다. ​
조선 최고의 명문가 출신 왕비인데, 남편 잘못 만나 자식들 다 잃고 고생만 하다 죽었다. ​​
의외로 연산군이 겁나 좋아했다고 한다. 갑자사화 때는 옳은 말 하고도 거의 유일하게 험한 꼴 안 보고 살았다. 실록에도 연산군이 미쳤지만 끔찍이 아꼈다고 기록되었다. ​
폐비 시어머니, 폐비 며느리 겸 고모, 폐비 조카 중 폐비 며느리 겸 고모를 담당한다. ​ ​

내용

​ 성종 7년 11월 29일에 신수근의 딸로 태어났다. 오빠만 셋인데, 그 중 첫째 오빠가 폐비 조카인 단경왕후의 아빠다. ​
즉, 고모와 조카가 형제에게 나란히 시집가서 신씨에게 중종은 조카 남편이자 시동생이고, 연산군에게 단경왕후는 제수이자 처조카다. ​
거기다 엄마가 세종의 아들 임영대군의 딸이라 연산군한테 7촌 고모뻘이다. ​​

간택 없이 세자빈으로 찜 당해서 동갑내기 연산군이랑 결혼했다. ​ ​

인성

​ 궁녀나 후궁에게도 존대해서 신하나 사관들이 걱정했다고 한다. ​
폐출 후에도 친정의 노비들이 스스로 남아 수발들고, 욕도 안 먹고, 누구하나 그를 이 이상 벌하지 않을 정도로 평소 행실이 착했다. ​ ​

금슬

​ 사극엔 주구장창 장녹수만 나오는데, 의외로 연산군과 금슬이 좋았다. ​
실록을 보면 연산군의 애처가 행각이 나오는데, 헤까닥 돌고 나서는 좀 요상한 것도 있다. 사치하지 말라니까 중전의 덕을 황금에 새겼다거나. 연산군은 이 사람 때문에 없는 예법을 만들어서 중전에게 존호를 내렸고, 자신을 올릴 땐 중전도 같이 올리라고 했다. ​​
자기는 중전이 겁나 쩌는걸 잘 아는데, 남들은 내가 말하지 않으면 몰라서 슬프다며 교지를 내린 적도 있다. ​ ​

자식

​ 기록에 따라 7~9명 가량의 자식을 낳았다. 왜 수가 다르냐면, '이인수'라는 한자만 다른 자식이 연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게 없는 곳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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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 18살 때부터 애를 줄줄이 낳았다. 자녀들의 나이 터울과 연산군이 31세에 사망했음을 감안하면 거의 배 꺼질 날 없었던 거나 다름없다. ​​
1494년에 원자를, 1495년에 휘신공주를, 1497년에 폐세자 이황을 낳았는데, 휘신공주랑 이황 사이에 딸이 하나 더 있다. 태어난 연도가 기록되진 않았지만, 정황상 1496년생이다. 그후 1501년에 폐 창녕대군을 시작으로 또 줄줄이 낳았다. ​​
연산군 이후에 이상한 예법이 생겨서 왕이랑 중전이랑 합방을 거의 못 했는데, 역시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는게 최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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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애를 많이 낳았는데 2남 1녀만 살아남았고, 그마저도 어린 아들들은 중종반정 이후 피살당했다. 사사가 아니다. 조선 법은 죄인이어도 애는 안 죽인다. 법을 무시한 거다. ​ ​

폐위 이후

​ 연산군이 폐위될 당시에 같이 따라가겠다며 울부짖었고, 사망 후에는 직접 신위를 모시겠다며 자처했다. 재혼하라는 제의도 거절하고, 강화도에 있는 묘지를 이장해달라고 요청해가며 죽은 남편을 직접 살폈다. 과부가 재가하지 어렵게 만든 게 이 형제 아빠 성종이고, 신씨는 한때 왕비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배려인데도 걷어찼다. ​​
의외로 중종이 나름 잘 해줬다. ​​
연산군은 죽을 때 이 사람이 보고싶다고 말하며 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