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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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34대 마지막 왕이다. 왕균의 아들. 이름은 요.

창왕이 폐위되고 이성계 패거리가 선양쇼를 위해 세운 바지왕이다.

이성계가 생각한 내용 전개는 몇년 안 있어서 스무스하게 자신한테 왕위를 선양하는 그림이었는데 의외로 개기면서 시간을 끄는 등 이성계에게 딥빡을 선물했다.

특히 폐위된 우왕창왕신돈의 자식으로 몰아서 전격적으로 처형한 것도 공양왕의 짓이었는데 이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할 뿐 아니라 2명의 왕 살해 책임을 이성계에게 돌리는 꽤나 머가리가 잘 돌아가는 왕이었다.

한편 개혁은 원했으나 역성혁명은 원하지 않았던 정몽주와 손을 잡고 이성계를 몰아쳤는데 타이밍도 기가막히게 이성계는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머가리를 다치는 바람에 단체로 한강가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이성계의 처형은 윤허하지 않았다. 이는 명종의 경우와도 비슷한데 어찌됐던 간에 자신을 옹립한 건 이성계 이므로 다른 신하들 보단 이성계가 더 믿을만 하다는 이유였다.

200년전의 무식한 군바리 새끼들한테는 통하는 전술이었으나 당시의 이성계정도전이방원을 비롯한 각종 엘리트들이 모여있었고 공양왕이 틈을 보이자 바로 반격을 개시하여 정몽주를 살해하고 반 이성계파 신하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전세를 역전시켰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고려왕조라는 껍데기라도 유지시킬 생각으로 이성계에게 동맹을 맺자고 제안하여 무신정권의 부활을 꾀하기도 했으나 이성계는 당연히 이를 무시. 이때가 폐위 당하기 1주일 전의 일이었다.

결국 왕대비의 교서를 통해 재위 4년만에 폐위 당해 이성계가 새 고려국왕에 등극했다. 이듬해 이성계는 나라 이름을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꾸어 새 왕조를 개창하였고 이렇게 고려는 망했다. 이때의 상황은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마침내 왕대비의 교지를 받들어 공양왕을 폐하기로 일이 이미 결정되었는데, 남은이 드디어 문하 평리 정희계와 함께 교지를 가지고 북천동의 시좌궁에 이르러 교지를 선포하니, 공양왕이 부복하고 명령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린 일이 없겠습니까?" 하면서, 이내 울어 눈물이 두서너 줄기 흘러내리었다.

폐위된 후의 공양왕은 공양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삼척으로 귀양 갔는데 몇년 후 왕씨 대학살극이 벌어지면서 왕세자였던 왕석과 함께 살해당하니 이때 나이 50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