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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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
권율(權慄, 1537년 ~ 1599년)은 조선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다.
명문 사대부집안에 태어나 40살 넘도록 벼슬자리 안오르고 띵가띵가 놀았던 특이한 전력이 있다. 금수저 ㅇㅈ. 옆집 말썽꾸러기 꼬마였던 이항복을 사위로 맞이함.
평생 지속될것 같은 갓수생활은 아버지가 죽기전에 자기 얼굴을 쳐다보면서 남긴 내가 널 쳐낳았구나라는 말에 끝나버린다
40줄 넘어서 겨우 벼슬에 올라 좀 지내다 보니 임진왜란이 터졌다. 문신인데도 불구 인정을 받았는지 전라도 순찰사로 발령을 받고 행주로 가서 쪽바리들을 괴멸시키는 공을 세운다.
천하의 개구쟁이
권율은 이항복을 사위로 맞이한 이후 둘이 쌍으로 말썽꾸러기였다. 매양 둘이 장난치며 놀기만 무한반복했다. 하지만 사위 이항복이 1580년에 먼저 관직에 오르자 권율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이후 1582년 뒤따라 관직에 올랐다. 참고로 무신이 아니라 문신으로 책봉됐다.
관직에 오른 후
마찬가지로 장인 권율이랑 사위 이항복이 장난꾸러기인 것은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는 임금인 선조를 상대로 장난을 치는 용자짓도 서슴치 않았다.
임진왜란
현대로 치면 합동참모의장포지션. 이순신에 가렸지만 명장이다.
용인 전투
근왕군 5만명이 2천명의 야습으로 털린 걸로 유명한 전투.
관군의 피해도 별로 안 컸고 갓율도 별로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따로 행동에 나선다.
역사가 성님들이 행주대첩 못지 않게 높이 평가하는 전투.
전략적인 의미로 본다면 일본군의 육로를 통한 충청도 전라도 진출을 막았다.
역사에 길이 빛나는 대승. 2300명의 병력과 500명의 승병으로 병력을 맹글어서 행주산성에서 방어전을 했다.
왜군은 우키타 히데이에와 희대의 똥별인 이시다 미츠나리 등이 지휘관이었는데 학살에 학살을 반복하여 결국 대승을 거두었다. 우키타 히데이에, 이시다 미츠나리, 킷카와 히로이에 등 왜군 지휘관 전원에게 총알빵 하나씩 선물을 돌린 것은 덤.
도원수
도원수가 되었지만 원균이 말썽을 부려서 스팽킹을 시전했다.
후방에서 행보관 일을 하거나 울산성 포위까지 이것저것 조명연합군을 지원했다. 끗.
기타
원균에게 곤장형을 내렸다. 다시 어명 씹으면 넥슬라이스해주겠다는 포스에 지린 원균은 냅다 출전해서 칠천량에 전 수군을 꼬라박고 자기도 뒤졌다. 이로 인해 조선 해역은 위기에 처하지만 대신 이순신의 재기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갓율 인정합니다….
폭뢰격을 쓸줄안다.
관노비 출신 정충신이 권율의 공문서 셔틀이었을 때 행주대첩을 비롯한 전투에 참여하고 우체부 역할까지 맡는다.
갓율은 전속 우체부조차 존니 쎄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