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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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위정위구 (토론)님의 2019년 9월 2일 (월) 20: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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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심플/갓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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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헬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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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는 이와는 전~~~~~~혀 다른 내용임이 틀림없으니 믿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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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그 자체라 사는 게 곶통이며 뒤지는 게 나을 정도입니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은하의 외계인들이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좆같은 것들과 살아가는 당신에게 탈지옥을 권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야...

틀:가지마틀:동수저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중국중국의 행정구역
직할시 베이징() · 톈진() · 상하이() · 충칭()
자치시
행정구소유
간쑤성(甘/陇) · 광둥성() · 구이저우성(贵/黔) · 랴오닝성() · 산둥성() · 산서성() · 섬서성(陕/秦) · 쓰촨성(川/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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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난성() · 허난성() · 허베이성() · 헤이룽장성() · 후난성() · 후베이성()
자치구 광시좡족자치구() · 네이멍구자치구() · 닝샤후이족자치구() · 신장위구르자치구() · 티베트자치구()
특별행정구 홍콩() · 마카오()

개요

헬조선인들이 여기 문명만들어서 어지간한 행정구역들도 헬조선인들이 만든곳이다. 일찍이 중국 중앙정부가 손을 털어버릴정도로 깡촌이었는데, 이덕에 헬조선인들이 높은 수준의 문명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부여가 여기 있었으며, 고구려, 발해까지 우덜민족의 영역이었다.심지어 발해가 뒤지고 나서도 한동안 발해유민들이 살았을 정도로 헬조선과 유대가 깊은 지역이다. 근데 부여, 고구려, 발해가 존나 노오력해서 개발을 해놨는데도 발해가 망하고 나서 여기 입성한 거란족들이 '헐?씨발 여기 도시라면서 숲만 빽빽하네?'했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너무 깡촌이라서 청나라가 대륙먹고나서는 우리 성지라고 지랄하면서 아예 방치시켜놨다. 근데, 이동네 남부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때 탈조선한 조선인들이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다시 사람이 살게 되고, 중국 개항이후 기름진 땅을 찾아 산동성에 살던 사람들이 대거 이곳에 들어오면서 서부지방이, 러시아가 들어와 북부지방이 개척되었다.

장작림이 만주의 머튽이 되면서 자연스레 길림성도 장작림의 나와바리가 되었다. 장개석이 못먹은것도 이것때문. 암튼 길림성은 만주사변 이전엔 독립군(남부)+좆본군(길림, 장춘, 동정 철도)+마적단+장작림 패거리들이라는 여러 세력들이 기반을 잡은 혼파망 그자체였다.

만주사변이후엔 독립군은 중국 관내로 쫓겨나거나 전멸하거나 모진고문끝에 항복해서 좆망하고 좆본군+마적단+콩사탕이 삼분할하게된다. 하지만 여기엔 좆본 만주국의 수도인 장춘이 있어서 마적단이나 콩사탕의 세가 그리 강하진 않았다.

만주작전으로 소련군이 만주국을 멸망시키면서 만주에는 콩사탕, 북괴군[1], 좆본군잔당이 남았다. 국민당이 만주를 먹기위해 길림성을 진격해 할빈까지 먹었다. 그러나 쏘련군과 북괴군이 훼방을 놓고, 여순은 쏘련군이 점령해서 써먹지도 못하고, 이미 만주로 올라가면서 후루다오, 진저우, 심양순으로 콩사탕과 회전을 치루며 올라간거라 국민당이 제대로 지배를 하지못했고, 결국 장춘회전에서 국민당이 개털리면서 쫓겨나고 만다.

한국과 유대가 깊은 지역이라고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고, 탈북난민들과 북한에서 보낸 체포조와 공작원들이 존나게 많이 분포하고 있다. 거기다 부여/고구려유물 가지고 역사왜곡을 하는 곳이니, 역사학자나 역덕이 아니라면 너의 생존을 위해 가지말자.


주소

현재 북괴새끼들의 좆같은 핵실험으로 인해 지역 당기관지인 길림일보에서 핵에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기사를 내는등 민심이 굉장히 흉흉해지고 있다.

여기짱깨들은 중국내에서 드럽고 미개하다면서 허난성못잖게 취급이 영좋지 않다고 한다.

도시

장춘

틀:가지마

长春(長春)

길림성의 중심지이다. 부여는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자료가 매우 불분명해서 알 길이 없고 속말말갈의 경우 중심지가 아닌 깡촌으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발해때부터 금나라까지 농안지역이 개발되었는데 원나라때부터 완전히 버려졌다. 이후 명나라 누르칸도사소속 삼만위(三萬衛)에 속했다가 명말에 몽골족이 점령하고 대부분지역이 고로노드전기(古郭爾羅斯前旗)에 속하게 되었고 청나라때부턴 본 시가지중 남관구 민강로동쪽지역에 관성자(寬城子)라는 깡촌이 들어섰다.

1800년 장춘보(長春堡)가 장춘청(長春廳)으로 승격되어 길림장군의 관할지가 되었다. 1825년, 장춘청이 관성자로 옮겨졌고 러시아가 개발하고 난 뒤 1888년 부로 승격, 급속도로 성장해 길림지역의 중심지역할을 했다. 이후 길림성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본 제국만주국을 먹고나서는 이곳을 '신경(新京)'으로 바꾸고 만주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후 국공내전중국 국민당중국 공산당이 혈투를 벌였는데, 공산당놈들은 천조국이 히로시마에 핵떨궈서 죽인 사람수만큼 이지역에서 양민들을 학살했다. 이는 대표적인 삼대기율 팔항주의가 구라임을 보여주는 사례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갓효파슨상님의 고향이다. 다음과 같은 하위 행정구역이 있다.

  • 남관구(南關區)
  • 관성구(寬城區)
  • 조양구(朝陽區)
  • 이도구(二道區)
  • 녹원구(綠園區)
  • 농안현(农安县): 자료부족때문에 부여는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불분명하고 속말말갈때는 먹어도 변방 무주지 깡촌으로 취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듯?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발해가 부여부를 현소재지 근처에 설치한 뒤부터였는데, 발해멸망이후 요나라때 황룡부(黃龍府)가 설치되면서 만주지역의 주요 군사요충지로 떡상했다. 금나라때 제주(濟州), 융주(隆州)가 설치되었지고 금나라멸망이후 원나라때도 개원성이 설치되어 잠깐 대도시역할을 했지만 원나라 말기 지금의 개원현으로 개원성이 옮겨지면서 완전히 버려졌다. 명초 누르칸도사 삼만위에 속했다가 청초 몽골 고로노드전기의 땅이 되었다. 1882년 조마(照磨)가 설치되었고 1889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장춘부의 속현이 되었다. 1947년 10월 공산화되었다.
  • 덕혜시(德蕙市) : 이지역또한 청초 몽골 고로노드전기에 속했는데, 1910년 장춘관할의 깡촌이던 목덕향(沐德鄕), 회혜향(懷惠鄕)의 2개향이 분리되어 덕혜현이 신설되었고 현청은 대방신(大房身)에 두었다. 국공내전시기 중화민국 국군중공군의 접전이 여러차례 벌어졌고 결국 1947년 10월 20일에야 공산화되었다. 이후 1994년 7월 시로 승격되었다.
  • 구태시(九台市) : 1932년 영길현과 장춘에서 분리신설되었다.
  • 쌍양구(雙陽區) : 본래 명초 의이문위(依爾們衛), 소완하(蘇完河衛)가 있었는데 소재지? 몰라시발. 암튼 명말 소완부(蘇完部)의 땅이 되었다. 청나라이후 길림, 장춘, 이통지역에 속했다. 1910년 길림, 장춘, 이통주의 경계지역에서 신설되었고 소알연(蘇斡延)에 치소를 두게 되었다. 1947 7월 공산화되었고 1969년 2월경 장춘의 구로 편입되었다.
  • 유수시(榆树市): 초기 부여문화재가 바글바글한 유수노하심유적이 있는 곳이다.

길림

틀:가지마

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吉林

본래 부여의 중심지가 있었지만 물길에게 털린뒤에 요령성 서풍현 성자산산성일대로 이사가고 그때부터 말갈, 그중에서도 속말말갈의 땅이 되었다. 하지만 속말말갈이 고구려의 직접지배를 받으면서 고구려의 땅이 되었다. 고구려 멸망이후 발해는 이지역에 속주(涑州)를 두었지만 926년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킨뒤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수백년이 흘러 명나라가 건국된 이후 누르칸도사시절에 잠깐 울라위(烏拉衛)가 설치되었다가 이후 훌룬국소속의 부족인 울라부(烏拉部)의 땅이 되었다. 청나라초 영고탑장군의관할지가 되었지만 1727년 영길주(永吉州)로 분리되어 봉천장군에 속했다. 1747년(건륭 12년) 길림청(吉林廳)이 설치된 뒤 신설된 길림장군의 소재지가 되었다. 1882년 봉금령이 폐지된 이후 길림성이 설치되면서 성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통주, 돈화현을 관할하게 되었다. 1948년 3월 9일 중공군에게 점령되었다.

울라위가 있던 오랍가만족진지역에는 만주족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 용담구(龍潭區) : 시의 명산이라는 용담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용담산에는 부여가 수도방위를 위해 쌓은 성과 서단산유적을 필두로하여 청나라까지의 많은 문화재들이 있지만 동북공정작업이 들어가면서 븅신되고 있다.
  • 풍만구(豊滿區)
  • 창읍구(昌邑區)
  • 선영구(船營區) : 애미쳐뒤진 혹부리우스가 다녔던 학교인 육문중학교인(毓文中學校)가 본구에 있다.
  • 서란시(舒蘭市) : 명초 아림위(阿林衛)에 속했는데, 1681년(강희 20년) 파언악불라방어기(巴彥鄂佛羅防禦旗)가 설치될 때 울라총관(烏拉總管)에 속했다. 1909년(선통 원년) 서란참에 현청을 두고 분리되었는데, 1910년 조양천 남쪽인 지금위치로 옮겨졌다. 1992년 10월 8일 시로 승격되었다.
  • 교하시(蛟河市) : 지금은 돈화현에 통폐합 된 액목현(額穆縣)지역이었는데, 만주국치하였던 1934년 11월 15일 교하진(중심지)에 공서가 설치되었고 1939년 10월에 현으로 분리되었다. 외진데 있어서 그런가 1945년 8월 15일 2차대전 종전이후 바로 중공군에게 점령되었다.
  • 반석시(磐石市) : 휘발성에 중심을 둔 훌룬족 휘발부의 점령지였다. 청초 북부지역은 길림장군, 남부지역은 봉천성의 관설 사냥터로 변했다. 1882년 마반산순사(磨盤山巡司)가 이통주를 두었는데 이때 반석주로 승격되면서 설치되었다. 1908년 현으로 격하되어 길림성에 속하게 되었다. 1947년 5월 31일 중공군에게 점령되었다. 1995년 10월 시로 승격되었다. 북류송화강의 지류인 납법하(拉法河), 교하(蛟河)에서 형성된 평야지대이다. 1989년 8월 15일 시로 승격되었다.
  • 화전시(樺甸市) : 과거 현내 유가대둔(柳家大屯) 소밀성(蘇密城)에 발해의 15부중 하나였던 장령부(長嶺府)가 설치되었으나 발해멸망이후 여진의 땅이 되면서 지명이 잊혀졌다. 명초 법하위(法河衛)에 속했다가 명말에 백두산지역일대에서 등장한 눌음부(訥音部)의 관할지가 되었다. 하지만 청나라초 봉금령이 실시되어 무인지대가 되었다. 봉금령이 폐지된 이후 1908년(광서 34년) 화전현이 설치되었는데, 치소가 화피전자(樺皮甸子)에서 바로 화수림자(樺樹林子)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후 성할현제가 실시되면서 성직할현이 되었지만 1947년 5월 중공군에게 점령된 이후 1958년 10월 23일 길림시의 속현이 되었다. 1988년 9월 15일 시로 승격되었다.
  • 영길현(永吉縣) : 본래 길림시지역을 도농분리한 뒤 농촌지역에 설치된 깡촌이었는데 길림시가 확장되면서 면적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줄었다.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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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化

청나라부터 만주사변이전까지 봉천성, 만주국치하에서 통화기준으로 이북은 봉천성, 이남은 안동성이 되었다가 국민정부시기 시전역이 안동성에 이관되었다. 공산화직후부터 1985년까지 백산시랑 스까되어 통화지구가 되었으나 1985년 백산시, 통화시, 매하구시로 삼분할되었다. 여기서 매하구시가 현급시로 강등먹고 통화에 통폐합되면서 지금의 통화가 완성 ㅇㅇ

  • 집안시(集安市) : 우리가 잘아는 고구려의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근교에는 광개토 대왕릉비를 포함한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강건너에는 강계군 만포진이 있다. 고구려 멸망이후 발해때 압록부의 속주중 하나인 환주(桓州)에 속했다. 발해 멸망이후 요나라가 녹주를 설치하면서 요나라의 땅이 되었지만 거란멸망이후 여진족 압록강부(鴨綠江部)의 땅이 되었다. 1902년 통화와 회인현의 일부지역의 땅을 나눠 현이 신설되었고 지금의 시가지인 통구(通溝)에 현치가때려박혔다. 1910년 흥경부에 소속되면서 봉천성에 소속되었다. 1934년 12월 1일 압록강지역의 11개현이 안동성으로 분리될 때 안동성으로 분리되었는데 1937년 7월 1일 통화성으로 분리되었는데 8.15 광복이후 다시 안동성에 속하게 되었는데 바로 중공군에 점령되서 국민당이 손을 쓴 적은 없었다. 이후 이래저래 행정개편을 거치면서 길림성에 속하게 되었고 1965년 3월 8일 집안(輯安)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 매하구시(梅河口市) : 청나라가 봉천성을 세울때는 해룡부라고 해서 인근에 유하현, 동평현, 서풍현, 서안현을 관할했지만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에 통폐합되었다. 1985년에 해룡현(海龍縣)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 유하현(柳河县) : 구한말 민족운동비밀결사단체였던 신민회가 독립군기지를 세웠던 삼원보가 있던곳으로 이 삼원보는 지금 삼원포조선족진이 되었다. 독립군이 무장투쟁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위해 세운 신흥무관학교도 본현 삼원보에 있었음. 친일대첩때 역관광당한 열린우리당의원중 한명인 김희선의원의 부친 김일련이 본현에서 친일짓을 했다가 이재오의 아빠를 투옥했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통화시 : 청나라때는 봉천성 흥경부, 만주국시기부터 중공이전까지 안동성에 속했다. 쓸거없다.
  • 휘남현(輝南县) : 휘발하로 인해 생겨난 충적평야지역에 있다. 고조선시기 고인돌이 휘발하를 따라 쫙 깔려있고 청나라때는 봉천성 임장해도 직례청, 만주국시기 봉천성,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에 속했다.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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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山

백두산이 근처에 있어서 백산이다. 강건너가 북한 혜산군삼수군이다. 혜산군에서 탈북자들이 존나게 많이 나오는 덕분에 여기서 아주 위험천만한 곳이다. 청나라북양정부시기 몽강현(길림성)제외 봉천성, 만주사변이전 길림성, 만주국 시기 봉천성[2]과 안동성,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에 속했다.

  • 장백조선족자치현(长白朝鲜族自治县) : 백두산서쪽 산악지대 삼각형지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압록강을 기준으로 북괴와 경계하고 있는데, 북괴 후창군, 삼수군, 혜산군과 접하고 있다. 과거 6.25 전쟁시기 빨갱이들은 이 좆발려서 대한민국멸공통일성공했을경우 북괴가 이현에 망명정부를 세울려고했다. 실제로 북괴가 고속삭제당할때 혹부리우스뽀그리우스를 포함한 즈그 가족들을 장백현으로 옮긴전적이 있다. 만약 6.25가 멸공통일로 끝났다면 이새끼는 연변조선족들과 함께 평안북도함경도지역에 간첩심고 공비뿌리면서 헬오브헬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중공이 북한에 급변사태가 터졌을때 탈북난민들을 수용할 수용소를 만들고 있다. 다른것으로는 발해식 불탑인 영광탑, 고구려유적인 십이도구관애, 칠도구유적, 안락고분군등이 있다. 애미쳐뒤진 혹부리우스의 애비 김형직이 임강에서 의사양반일을 하다가 1921년 여름에 본현 팔도구로 이주하여 광제의원을 열고 의사양반으로 일했다고 하며 이때 재산 1,000원이나 되던 부자가 되었다는 좆본의 조사자료가 있다.
  • 임강시(临江市) : 강건너에는 자성군후창군서부를 맞대고 있다. 발해중기에 국내성에 있던 환주에서 이곳에 있던 신주(神州)로 서경압록부의 중심지가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거란이 발해조지고 서경압록부에 설치한 녹주의 중심지또한 이곳에 있었다. 빨갱이중 한명인 천윈의 사저가 있다. 애미쳐뒤진 혹부리우스의 애비 김형직이 임강시 모아산근처에서 가짜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졸업증걸고 순천의원이라는 병원에서 의사양반으로 있었다고 한다.
  • 무송현(抚松县) : 고구려가 현서북쪽 신안촌에 반안성을 쌓았는데, 이성은 발해와 요나라 압록부의 속주인 풍주(豐州)로 이어졌다. 승리 고분군과 발해의 유적인 탕하구유적이 있다. 혹부리애비인 김형직이 1925년 3월 장백현 팔도구에서 잘하던 광제의원을 정리하고 이지역으로 이주해 무림의원에서 의사양반으로 일하다 빨갱이에게 뒈짖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옛 재산은 마적들에게 탈탈 털렸고 그의 유족과 애미쳐뒤진 혹부리우스는 똥수저로 살게 되었다고 한다.
  • 정우현(靖宇县) : 본래 몽강현(濛江縣)으로 불렸다. 만주국시기에는 백산시에서 봉천성에 속했던 본현을 빼면 모두 안동성에 속했고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으로 옮겨졌다. 1946년 동북항일연군 소속 군인 양정우(楊靖宇)의 이름을 기려 그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연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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延边(延邊)

조선족의 자치주다. 리즈시절엔 거의 거주민의 75%가까이가 조선족이었지만 대부분이 다떠나고 조선족도 거의 중국화되서 가까운 시일안에 자치주가 아니라 시로 바뀔 것이다. 이민족이던 헬조선인들이나, 여진족이 쳐먹고 있을때는 존나게 잘나가던 곳이었다. 청나라가 봉금령풀고 처음 만주지역에 현을 세울때 안도현이서지역은 모두 봉천성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길림성에 속했다. 만주국시기 돈화현을 제외한 전지역에 간도성이 설치되었는데, 이 간도성지역은 동북항일연군, 독립군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서 이들과 좆본군간의 전투가 활발하게 벌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국민정부(사실 실제로 지배도 해보지 못했지만)의 만주 9성의 경우 돈화는 길림성, 나머지는 모두 송강성에 속했다. 강건너가 탈북자들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회령군, 종성군, 온성군, 무산군이고,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북한 공작원과 체포조들이 존나게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길림성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물론 탈북을 도와주는 남한 인권단체들이 여기에 많이 살고 있긴 하지만, 이들중에서 간첩이 나온적이 있으니, 조심하자.

  • 훈춘시(珲春市) : 두만강의 지류인 혼춘강수계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강건너에는 경원군이 있다. 고구려가 본현 서남쪽 두만강근처에 책성[3], 살기성[4]을 쌓았고 발해가 책성근처에 새로 성[5]을 쌓아 이를 동경용원부로 칭했다. 하지만 거란이 928년 동란국을 요동으로 옮기면서 발해전역이 황폐화되면서 같이 버려지고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이후 조선말부터 두만강건너의 혼춘강으로 만들어진 충적평야지역이라 조선인들이 많이 정착했다.
  • 연길시(延吉市) : 연변의 중심지이다. 나중에 여기서 용정이 분리신설되었다.
  • 왕청현(汪淸县) : 현서남쪽에 있는 만태성산성을 제외하면 요금대의 문화재만 우수수수 나온 곳이다. 1932년 지청천휘하의 한국 독립군이 중국호로군과 함께 좆본군을 격파한 대전자령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 용정시(龙井市) : 과거 화룡현의 일부였지만 1983년 분리신설되었다. 독립운동가 김약연이 서전서숙이 1년만에 망하자 세운 민족학교인 명동학교가 있었고 문익환, 윤동주가 용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애미뒤진 중공은 윤동주를 중국의 조선족시인으로 주작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 화룡시(和龙市) : 강건너에는 무산군이 있으며 해란강의 침식 + 퇴적으로 생긴 충적평야 3~4개와 산악지대로 구성되었다. 발해때 중경현덕부가 본현 동북쪽에 있었지만 발해멸망이후 버려짐 ㅇㅇ. 이지역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이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같다고 화룡이라 이름지었으며 이후에도 조선인들이 많이 정착해살았기에 독립군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 청산리전투, 어랑촌전투모두 화룡시에서 벌어졌다.
  • 돈화시(敦化市): 동부여떡밥이 있는데 이건 제끼고, 대조영이 본현 동모산과 그근처 평야인 영승촌일대[6]에 처음 수도를 두고 발해를 세운것으로 유명하고 그이후에는 발해가 쌓은 것을 여진이 보수하면서 개명한 오동성(敖東城)이 있었다. 1882년 오동성근교에 돈화현이 설치되었고 이후 1955년 인구조사기준 한족이 거주민중 98%인 짱깨지역에 만주국과 국민정부치하에서도 길림성에 속했을정도로 생활권이 달랐다. 하지만 1955년 연길, 화룡, 왕청, 안도, 혼춘으로 구성된 조선민족자치구가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강등먹으면서 강제편입되었다. 현북쪽에는 액목현(額穆縣)이 있었는데 중공치하에서 통폐합되었다.
  • 도문시(图们市) : 원나라 때는 개원로 남경에 속한 오동(斡东)이었다.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인 6진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 훈춘과함께 조선군이 틈만나면 쳐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성계의 조상인 이안사가 여기서 죽었다는 설도 있는데, 정확히는 원나라에 의해 오동천호로 임명되어 처소가 오동에 있었던 것이며 무덤은 경흥부에 마련되었다. 경흥부는 지금의 함경북도 경흥군이다. 그의 무덤인 덕릉은 후에 태종에 의해 함경남도 영광군으로 이장되었다. 1965년 4월 연길현과 왕청현사이에서 신설되었다. 강건너에는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이 있다.
  • 안도현(安图县) : 본래 지금의 소사하구일대에 두었는데 언제부턴가 연길 북서쪽으로 옮겨졌다. 백두산근처의 주요 깡촌으로 유명한 이도백하진이 이현관할의 진이다.

송원

틀:가지마

이기!!!!
이 문서에루는 대상은 존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
.

松原

고대때는 송원이북은 모두 북방 동호나 퉁구스계열의 땅이었고 그 이남은 한민족계통의 주민들의 땅이었다. 때문에 완전히 버려진 깡촌으로 있었다가 요나라가 영강주를 세우면서 생여진통제기지로서성장했지만 아골타가 요나라를 멸망시킨뒤부터 완전히 버려졌다.

[1]

최근 5.7의 강진이 발생했다.

  • 영강구(宁江区) : 요나라 영강주에서 온 구이름으로 시의 중심지이다.
  • 부여시(扶余市) : 부여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부여의 흔적은 종범해서 닉값을 못한다. 사실 1906년 신성부로 세운 것을 현으로 격하한 뒤 1914년 부여현으로 막고쳐서 그런거다. 본현 동쪽에 석두성자고성은 요나라때 영강주의 도성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성터에 주민이 그대로 농사를 짓고 있는등 관리가 씹망이다. 봉금령이전에는 본시제외하면 모두 내몽골에 속했지만 이후 모두 길림성으로 옮겨졌다.
  • 건안현(乾安县)
  • 전곽이나사몽골족자치현(前郭尔罗斯蒙古族自治县, ᠡᠮᠦᠨᠡᠳᠦ ᠭᠣᠷᠯᠣᠰ) : 건안현의 동쪽과 남쪽을 본현이 감싸고 있다. 몽골 제국금나라원정을 떠난뒤 본현과 건안현사이에 있는 차간호라는 그어대한 호수에 눌러앉게되면서 몽골족 거주지역이 되었다.
  • 장령현(长岭县)

사평

틀:가지마 요하상류에 있는 곳으로 장춘, 심양의 샌드위치지역이다. 부여의 전통적인 나와바리였다가 고구려가 먹고나서 고구려에 들어갔다. 발해때 부여부에 속했다. 거란이 부여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뒤 부여부의 주민들을 여기에 설치되었던 통주(한치윤은 개원현이라주장)로 강제이주시켰다. 금대에 함평로에 속했으나 금멸망이후 좆망한다. 명대에 훗날 서태후를 배출하는 예허나라씨가 이지역의 맹주가 되었다.

청말 쪽국이 이지역을 공들여 개발시킨덕인지 국공내전때 주요 전선이 되었다.

지금은 길림사범대학이라는 짱깨 지거국으로 먹고살고 있는 깡촌이다.

근황

이 왜 🌸
 🌼거기서 나와...?🌸

이 문서는 왜 나왔는지도 모를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별 기대도 안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등판하거나 나오지 말래도 계속 나오는 놈에 대해 다룹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주의! 이 문서의 대상은 병신 그 자체입니다.
이 문서는 씹창 메오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을 다룹니다.
와... 메갈리아다!! 요즘 대세이긴 한가 봐. 엥?? 거기?? 완전 개 사이트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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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에 길림출신 조선족들이 출몰한건지 여시하던 분들이 조선족이었는지 본인만 알겠지 병신같은 것들

아웃풋

  1. 소련군이 주둔시켰다.
  2. 몽강현 only
  3. 지금은 온특혁부성이라 불리며 성의 북쪽벽이 요금대에 비우성으로 재활용되었다. 지금은 성터에 마을이 있다.
  4. 현 동쪽에 있다. 이래저래 말이 많은 성이다.
  5. 지금의 팔련성
  6. 동모산은 환도성처럼 요새로 쓰이고 실제수도는 영승촌에 있는 영승유적이 아닐까 추정중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