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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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메에에- 이곳은 깡촌, 즉 존나 시골입니다. 이곳은 인프라도 없고, 살기도 안좋은 시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자연인이 되기에는 매우 좋은 곳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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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치시 행정구소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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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행정구 | 홍콩(港) · 마카오(澳) |
개요
헬조선인들이 여기 문명만들어서 어지간한 행정구역들도 헬조선인들이 만든곳이다. 일찍이 중국 중앙정부가 손을 털어버릴정도로 깡촌이었는데, 이덕에 헬조선인들이 높은 수준의 문명을 만들어 낼수 있었다.
부여가 여기 있었으며, 고구려, 발해까지 우덜민족의 영역이었다.심지어 발해가 뒤지고 나서도 한동안 발해유민들이 살았을 정도로 헬조선과 유대가 깊은 지역이다. 근데 부여, 고구려, 발해가 존나 노오력해서 개발을 해놨는데도 발해가 망하고 나서 여기 입성한 거란족들이 '헐?씨발 여기 도시라면서 숲만 빽빽하네?'했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너무 깡촌이라서 청나라가 대륙먹고나서는 우리 성지라고 지랄하면서 아예 방치시켜놨다. 근데, 이동네 남부는 조선후기 세도정치때 탈조선한 조선인들이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다시 사람이 살게 되고, 중국 개항이후 기름진 땅을 찾아 산동성에 살던 사람들이 대거 이곳에 들어오면서 서부지방이, 러시아가 들어와 북부지방이 개척되었다.
장작림이 만주의 머튽이 되면서 자연스레 길림성도 장작림의 나와바리가 되었다. 장제스가 못먹은것도 이것때문. 암튼 길림성은 만주사변 이전엔 독립군(남부)+좆본군(길림, 장춘, 동정 철도)+마적단+장작림 패거리들이라는 여러 세력들이 기반을 잡은 혼파망 그자체였다.
만주사변이후엔 독립군은 중국 관내로 쫓겨나거나 전멸하거나 모진고문끝에 항복해서 좆망하고 좆본군+마적단+콩사탕이 삼분할하게된다. 하지만 여기엔 좆본 만주국의 수도인 장춘이 있어서 마적단이나 콩사탕의 세가 그리 강하진 않았다.
만주작전으로 소련군이 만주국을 멸망시키면서 만주에는 콩사탕, 북괴군[1], 좆본군잔당이 남았다. 국민당이 만주를 먹기위해 길림성을 진격해 하얼빈까지 먹었다. 그러나 소련군과 북괴군이 훼방을 놓고, 뤼순은 소련군이 점령해서 써먹지도 못하고, 이미 만주로 올라가면서 후루다오, 진저우, 심양순으로 콩사탕과 회전을 치루며 올라간거라 국민당이 제대로 지배를 하지못했고, 결국 장춘회전에서 국민당이 개털리면서 쫓겨나고 만다.
한국과 유대가 깊은 지역이라고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고, 탈북난민들과 북한에서 보낸 체포조와 공작원들이 존나게 많이 분포하고 있다. 거기다 부여/고구려유물 가지고 역사왜곡을 하는 곳이니, 역사학자나 역덕이 아니라면 너의 생존을 위해 가지말자.
현재 북괴새끼들의 좆같은 핵실험으로 인해 지역 당기관지인 길림일보에서 핵에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기사를 내는등 민심이 굉장히 흉흉해지고 있다.
여기짱깨들은 중국내에서 드럽고 미개하다면서 허난성못잖게 취급이 영좋지 않다고 한다.
도시
장춘
长春[2]
길림성의 중심지이다. 장춘시가지는 러시아가 철도깔기전까지는 고구려, 부여, 요나라, 금나라가 먹을 때에도 깡촌이었고 메인 중심지는 농안현일대였다고 함. 그리고 장춘시가지 남쪽으로 산악지대가 펼쳐져있는데, 이쪽을 기준으로 북쪽은 나름 ㅍㅌ이상인 평지고 그남쪽은 한반도랑 큰 차이가 없는 산동네다. 실제로 요나라와 금나라는 그 산맥이남은 직접 주를 설치해 통치했지만 그 이남은 너무 산투성이인지라 거의 방치하다시피했다.
러시아가 개발하고 나서 급속도로 성장해 길림지역의 중심지역할을 했고 일본 제국이 만주국을 먹고나서는 이곳을 '신경(新京)'으로 바꾸고 만주국의 수도로 삼았다. 이후 국공내전때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혈투를 벌였는데, 공산당놈들은 천조국이 히로시마에 핵떨궈서 죽인 사람수만큼 이지역에서 양민들을 학살했다. 이는 대표적인 삼대기율 팔항주의가 구라임을 보여주는 사례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갓효파슨상님의 고향이다. 다음과 같은 하위 행정구역이 있다.
- 농안현(农安县): 부여가 속말말갈/고구려한테 털리고[3]본진이던 길림에서 이곳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개발된 것으로 보고있다. 고구려가 부여를 멸망시키고 나선 이곳에 부여성을 세웠다. 발해는 이지역에 부여부를 설치했고. 나중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뒤 이곳에 황룡부를 세웠다. 금나라는 황룡부를 폐하고 융주(隆州) 농안부로 바꿨다. 근데 그 금나라가 망하고 난 뒤에 완벽하게 깡촌으로 전락.
- 덕혜시(德蕙市)
- 구태시(九台市)
- 쌍양구(双阳区)
- 유수시(榆树市): 초기 부여문화재가 바글바글한 유수노하심유적이 있는 곳이다.
길림
吉林
강근처의 마을 이란 뜻의 만주어 '길림오라'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이곳을 지나는 송화강 근처에 부여의 초기 왕성이던 '동단산성'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후장따이고 나선 장춘으로 쫓겨났다. 이후 별볼일없는 깡촌이되었다가 청나라에서 어째어째 재건해서 지금에 이른다.길림시 본진은 북쪽 장춘과 접한지역과 화전시, 시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산투성이다.
건륭제가 여기에 길림문묘를 세웠다. 이 문묘는 문화대혁명시기 홍위병들에게 개작살이 났다가 이후에 어째어째 복원성공했다.
통화
通化
청나라부터 만주사변이전까지 봉천성, 만주국치하에서 통화기준으로 이북은 봉천성, 이남은 안동성이 되었다가 국민정부시기 시전역이 안동성에 이관되었다. 공산화직후부터 1985년까지 백산시랑 스까되어 통화지구가 되었으나 1985년 백산시, 통화시, 매하구시로 삼분할되었다. 여기서 매하구시가 현급시로 강등먹고 통화에 통폐합되면서 지금의 통화가 완성 ㅇㅇ
- 집안시(集安市) : 우리가 잘아는 고구려의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근교에는 수많은 고구려 유적들이 산재해있다. 강건너에는 강계군 만포진이 있다.
- 매하구시(梅河口市) : 청나라가 봉천성을 세울때는 해룡부라고 해서 인근에 유하현, 동평현, 서풍현, 서안현을 관할했지만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에 통폐합되었다. 1985년에 해룡현(海龍縣)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 유하현(柳河县) : 구한말 민족운동비밀결사단체였던 신민회가 독립군기지를 세웠던 삼원보가 있던곳으로 이 삼원보는 지금 삼원포조선족진이 되었다. 독립군이 무장투쟁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기위해 세운 신흥무관학교도 본현 삼원보에 있었음. 친일대첩때 역관광당한 열린우리당의원중 한명인 김희선의원의 부친 김일련이 본현에서 친일짓을 했다가 이재오의 아빠를 투옥했다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통화시 : 청나라때는 봉천성 흥경부, 만주국시기부터 중공이전까지 안동성에 속했다. 쓸거없다.
- 휘남현(輝南县) : 휘발하로 인해 생겨난 충적평야지역에 있다. 고조선시기 고인돌이 휘발하를 따라 쫙 깔려있고 청나라때는 봉천성 임장해도 직례청, 만주국시기 봉천성,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에 속했다.
백산
白山
백두산이 근처에 있어서 백산이다. 강건너가 북한 혜산군과 삼수군이다. 혜산군에서 탈북자들이 존나게 많이 나오는 덕분에 여기서 아주 위험천만한 곳이다. 청나라와 북양정부시기 몽강현(길림성)제외 봉천성, 만주사변이전 길림성, 만주국 시기 봉천성[4]과 안동성,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에 속했다.
- 장백조선족자치현(长白朝鲜族自治县) : 백두산서쪽 산악지대 삼각형지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압록강을 기준으로 북괴와 경계하고 있는데, 북괴 후창군, 삼수군, 혜산군과 접하고 있다. 과거 6.25 전쟁시기 빨갱이들은 공산군이 좆발려서 대한민국이 멸공통일성공했을경우 북괴가 이현에 망명정부를 세울려고했다. 실제로 북괴가 고속삭제당할때 혹부리우스가 뽀그리우스를 포함한 즈그 가족들을 장백현으로 옮긴전적이 있다. 연변조선족들과 함께 평안북도와 함경도지역에 간첩심고 공비뿌리면서 헬오브헬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중공이 북한에 급변사태가 터졌을때 탈북난민들을 수용할 수용소를 만들고 있다. 다른것으로는 발해식 불탑인 영광탑, 고구려유적인 십이도구관애, 칠도구유적, 안락고분군등이 있다.
- 임강시(临江市) : 강건너에는 자성군과 후창군서부를 맞대고 있다. 발해중기에 국내성에 있던 환주에서 이곳에 있던 신주(神州)로 서경압록부의 중심지가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거란이 발해조지고 서경압록부에 설치한 녹주의 중심지또한 이곳에 있었다. 빨갱이중 한명인 천윈의 사저가 있다.
- 무송현(抚松县) : 고구려가 현서북쪽에 반안성을 쌓았는데, 이성은 발해와 요나라 압록부의 속주인 풍주(豐州)로 이어졌다. 승리 고분군과 발해의 유적인 탕하구유적이 있다.
- 정우현(靖宇县) : 본래 몽강현(濛江縣)으로 불렸다. 만주국시기에는 백산시에서 봉천성에 속했던 본현을 빼면 모두 안동성에 속했고 국민정부시기 안동성으로 옮겨졌다. 1946년 동북항일연군소속의 빨갱이 양정우(楊靖宇)의 이름을 기려 그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연변
延边[5]
조선족의 자치주다. 리즈시절엔 거의 거주민의 75%가까이가 조선족이었지만 대부분이 다떠나고 조선족도 거의 중국화되서 가까운 시일안에 자치주가 아니라 시로 바뀔 것이다. 이민족이던 헬조선인들이나, 여진족이 쳐먹고 있을때는 존나게 잘나가던 곳이었다. 청나라가 봉금령풀고 처음 만주지역에 현을 세울때 안도현이서지역은 모두 봉천성에 속하고 나머지는 모두 길림성에 속했다. 만주국시기 돈화현을 제외한 전지역에 간도성이 설치되었는데, 이 간도성지역은 동북항일연군, 독립군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서 이들과 좆본군간의 전투가 활발하게 벌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국민정부(사실 실제로 지배도 해보지 못했지만)의 만주 9성의 경우 돈화는 길림성, 나머지는 모두 송강성에 속했다. 강건너가 탈북자들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회령군, 종성군, 온성군, 무산군이고, 조선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으며, 북한 공작원과 체포조들이 존나게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길림성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다. 물론 탈북을 도와주는 남한 인권단체들이 여기에 많이 살고 있긴 하지만, 이들중에서 간첩이 나온적이 있으니, 조심하자.
- 훈춘시(珲春市) : 두만강의 지류인 혼춘강수계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강건너에는 경원군이 있다. 고구려가 본현 서남쪽 두만강근처에 책성[6], 살기성[7]을 쌓았고 발해가 책성근처에 새로 성[8]을 쌓아 이를 동경용원부로 칭했다. 하지만 거란이 928년 동란국을 요동으로 옮기면서 발해전역이 황폐화되면서 같이 버려지고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 이후 조선말부터 두만강건너의 혼춘강으로 만들어진 충적평야지역이라 조선인들이 많이 정착했다.
- 연길시(延吉市) : 연변의 중심지이다. 나중에 여기서 용정이 분리신설되었다.
- 왕청현(汪淸县) : 현서남쪽에 있는 만태성산성을 제외하면 요금대의 문화재만 우수수수 나온 곳이다. 1932년 지청천휘하의 한국 독립군이 중국호로군과 함께 좆본군을 격파한 대전자령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 용정시(龙井市) : 과거 화룡현의 일부였지만 1983년 분리신설되었다. 독립운동가 김약연이 서전서숙이 1년만에 망하자 세운 민족학교인 명동학교가 있었고 문익환, 윤동주가 용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애미뒤진 중공은 윤동주를 중국의 조선족시인으로 주작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 화룡시(和龙市) : 강건너에는 무산군이 있으며 해란강의 침식 + 퇴적으로 생긴 충적평야 3~4개와 산악지대로 구성되었다. 발해때 중경현덕부가 본현 동북쪽에 있었지만 발해멸망이후 버려짐 ㅇㅇ. 이지역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이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같다고 화룡이라 이름지었으며 이후에도 조선인들이 많이 정착해살았기에 독립군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 청산리전투, 어랑촌전투모두 화룡시에서 벌어졌다.
- 돈화시(敦化市): 동부여떡밥이 있는데 이건 제끼고, 대조영이 본현 동모산과 그근처 평야인 영승촌일대[9]에 처음 수도를 두고 발해를 세운것으로 유명하고 그이후에는 발해가 쌓은 것을 여진이 보수하면서 개명한 오동성(敖東城)이 있었다. 1882년 오동성근교에 돈화현이 설치되었고 이후 1955년 인구조사기준 한족이 거주민중 98%인 짱깨지역에 만주국과 국민정부치하에서도 길림성에 속했을정도로 생활권이 달랐다. 하지만 1955년 연길, 화룡, 왕청, 안도, 혼춘으로 구성된 조선민족자치구가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강등먹으면서 강제편입되었다.
- 도문시(图们市) : 원나라 때는 개원로 남경에 속한 오동(斡东)이었다.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인 6진과 매우 가까운 곳이라, 훈춘과함께 조선군이 틈만나면 쳐들어오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성계의 조상인 이안사가 여기서 죽었다는 설도 있는데, 정확히는 원나라에 의해 오동천호로 임명되어 처소가 오동에 있었던 것이며 무덤은 경흥부에 마련되었다. 경흥부는 지금의 함경북도 경흥군이다. 그의 무덤인 덕릉은 후에 태종에 의해 함경남도 영광군으로 이장되었다. 1965년 4월 연길현과 왕청현사이에서 신설되었다. 강건너에는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이 있다.
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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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르라 이기야!! 흔드르라!!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존나 흔들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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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原
고대때는 송원이북은 모두 북방 동호나 퉁구스계열의 땅이었고 그 이남은 한민족계통의 주민들의 땅이었다. 때문에 완전히 버려진 깡촌으로 있었다가 요나라가 영강주를 세우면서 생여진통제기지로서성장했지만 아골타가 요나라를 멸망시킨뒤부터 완전히 버려졌다.
최근 5.7의 강진이 발생했다.
- 영강구(宁江区) : 요나라 영강주에서 온 구이름으로 시의 중심지이다.
- 부여시(扶余市) : 부여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부여의 흔적은 종범해서 닉값을 못한다. 사실 1906년 신성부로 세운 것을 현으로 격하한 뒤 1914년 부여현으로 막고쳐서 그런거다. 본현 동쪽에 석두성자고성은 요나라때 영강주의 도성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성터에 주민이 그대로 농사를 짓고 있는등 관리가 씹망이다. 봉금령이전에는 본시제외하면 모두 내몽골에 속했지만 이후 모두 길림성으로 옮겨졌다.
- 건안현(乾安县)
- 전곽이나사몽골족자치현(前郭尔罗斯蒙古族自治县, ᠡᠮᠦᠨᠡᠳᠦ ᠭᠣᠷᠯᠣᠰ) : 건안현의 동쪽과 남쪽을 본현이 감싸고 있다. 몽골 제국이 금나라원정을 떠난뒤 본현과 건안현사이에 있는 차간호라는 그어대한 호수에 눌러앉게되면서 몽골족 거주지역이 되었다.
- 장령현(长岭县)
사평
틀:가지마 요하상류에 있는 곳으로 장춘, 심양의 샌드위치지역이다. 부여의 전통적인 나와바리였다가 고구려가 먹고나서 고구려에 들어갔다. 발해때 부여부에 속했다. 거란이 부여부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뒤 부여부의 주민들을 여기에 설치되었던 통주(한치윤은 개원현이라주장)로 강제이주시켰다. 금대에 함평로에 속했으나 금멸망이후 좆망한다. 명대에 훗날 서태후를 배출하는 예허나라씨가 이지역의 맹주가 되었다.
청말 쪽국이 이지역을 공들여 개발시킨덕인지 국공내전때 주요 전선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