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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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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소울킬 (토론)님의 2016년 7월 12일 (화) 11:51 판

틀:역갤러 반달

"일본이 동방의 영국 노릇을 하려 하니, 우리 조선은 적어도 동방의 프랑스가 되어야 한다." - 모 정신병자의 언

시대의 이단아

개화기 지식인으로 일찍이 당대 헬조선의 현실을 직시하고 헬조선으로부터 민중들을 구하고자 노력했던 혁명가

고종보다 나이가 1살 많다.

하지만 걸레민비를 비롯한 헬조선 수꼴들에의해 실패하고만 몽상가

김옥균보고 친일이라는 평가가 존재하는데, 대한제국 이전의 친일과 우리가 생각하는 친일매국노는 다르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저급하기 짝이없는 헬조센식 역사 교육 및 선동을 받은 조센징들은 '친일'이라는 어휘 하나에 발 저려 하는데, '친일'이 얼마나 공허한 개념인가에 대해 일갈 꽂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ㄴ 개소리ㅋㅋㅋ친일은 사실이야. 공허하대 ㅋㅋㅋ

ㄴ 맞잖아 개혁을 위한 친일이라니...

그리고 김옥균이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에 망명 가있을 때, 일본의 힘 말고도 미국, 러시아를 이용해서 조선의 자주적인 근대화를 이룩하려 했었다가 일본인들한테 냉대도 받았다.

약 10년후 그(들)의 14개조 조항은 갑오개혁 때 대부분 성취된다.




실패한 혁명가 김옥균에 대한 평가는 매국적 반역자에서 애국적 혁명가에 이르기까지 양극단에 걸쳐 있다.

그 안에는 다시 난신적자, 선동가, 영웅, 개혁가등의 다양한 평가가 촘촘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는 개혁과 외세를 바라보는 시각과 입장, 시대적-역사적 과제에 대한 인식, 평가자가 서 있는 현실, 개인의 취향 등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가 개화(근대화)와 갑신정변, 자주독립과 민족주의, 개혁,혁명 등에 관련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시대적 과제에 무모하게 목숨을 건 그의 삶은, 어쩌면 사람들의 말처럼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신의 출세와 부귀영화를 포기한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족과 집안을 파멸시키고 동지를 희생시키며, 막 싹트기 시작한 개화의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정치적 반동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가 양반 문벌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집어 내던지고, 조선의 개화와 청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점은 완벽한 팩트이다.

그의 묘비명에 새겨진 서사적 시구를 한번 들여다 보자. (원본 한문)


오호라,

비상한 재주를 타고나

비상한 시대를 만나서

비상한 공적을 이루지 못하고

비상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늘이 김 공을 낳은 것이 이와 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