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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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9월 1일 ~ 1957년 6월 16일
한국의 시인, 작가, 언론인이자 여류 친일파+종북+메갈.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의 지주집안에서 태어났다. 6살때 중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는데, 이때 이름을 노기선에서 노천명으로 바꿨다.
이화여대를 나온 뒤에는 1934년부터 4년동안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일을 했다. 1938년부터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가 되었고 페미니스트로서 1941년까지 조선일보가 발행하던 페미니즘 잡지 <여성>지의 편집장을 맡았다. 1943년에 매일신보(나중에 서울신문으로 개명) 기자가 되어 1946년까지 서울신문 기자로 있었다.
1932년 <밤의 찬미>로 시인이 된 뒤로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시를 썼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라는 말도 이년이 쓴 시인 <사슴>에서 나온 말. 1940년까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시를 썼으나 태평양 전쟁기에는 악명높은 친일시인이 되었다. 이썅년이 좆본 사까시해주면서 쓴 시중에는 <군신송>과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전쟁시기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했을때는 대놓고 종북짓을 했다. 북괴군을 피해 숨었던 우파 예술인들이 어디있는지 북괴군에게 까발리고 북괴군이 서울을 점령했을시기 진행했던 선전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당연히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뒤에 참교육을 당해서 20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51년 4월 4일 풀려났다.[1]
풀려난 뒤에 서촌 으리으리한 한옥에서 잘먹고 잘살다 1957년 뇌빈혈과 백혈병으로 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