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부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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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1888년 10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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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1938년 3월 15일 |
| 직업 | 혁명가 |
| 종교 | 무신론 |
러시아의 혁명가. 당시 볼셰비키로서는 드물게도 니체를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년에는 니체에 반대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좌익에서 이에 대한 내분이 발생하던 와중에, 《세계경제와 제국주의》를 써서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에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레닌 본인에게도 인정받아 그의 이후 저작에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공산혁명 이후 레닌이 당시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를 이용하자고 주장하자 이에 공공연히 반대했다. 그리고 독일전이 문제가 됐을 때 레닌과 정반대로 혁명 전쟁을 주장했다.
또한 레닌이 민족해방을 지지했던 것과는 달리 부하린은 민족해방은 제국주의 시대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가 했었던 주장들 중에는 명백히 틀린 것들도 있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상황으로 인해 국가가 경제 전체를 영원히 지배할 것이라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전후에 원래대로 복귀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을 과대평가해서 그 전쟁과 함께 자본주의 자체가 망할 것이라는 식으로 주장했지만 당연히 그렇게 되질 않았다. 이렇듯 외적 분쟁에만 집중하고 내적 모순을 경시하다보니 일찍부터 균형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레닌 사후에는 트로츠키에 반대했고, 신경제정책을 지속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잠깐 스탈린과 동맹이었다가, 나중에는 스탈린에도 반대하게 되어 우익반대파의 대표인물이 됐다. 그러나 스탈린이 독재를 강화하기 시작하자 이에 굴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숙청이 본격화된 1937년 공산당에서 축출당했고, 이듬해 살해당했다. 이와 함께 그의 지지층은 사실상 명맥이 끊겼지만, 나중에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재조명하는 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