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왕: 두 판 사이의 차이
옛@Darwinxi (토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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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인물}} | |||
== 백제의 무왕== | == 백제의 무왕== | ||
{{백제 국왕}} | |||
{{역사인물}} | |||
{{클라스}} | |||
{{잘생김}} | |||
{{통수}} | |||
{{빛과어둠}} | |||
{{6세기}} | |||
{{7세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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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 class="wikitabl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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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혜왕]] | | style="text-align: center;" | [[혜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법왕]] | | style="text-align: center;" | [[법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 | style="text-align: center;" | 무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의자왕]] | | style="text-align: center;" | [[의자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풍왕]] | | style="text-align: center;" | [[풍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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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 white;background-color: blue;" | '''재위기간''' | !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 white;background-color: blue;"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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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0년 ~ 641년 | | [[600년]] ~ [[64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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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무왕.jpg]] | |||
거품이 낀 왕이다. | 거품이 낀 왕이다. | ||
신라를 턴 것 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수나라와 좆목하며 고구려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 |||
이기면 모를까 석두성을 점령당하고 포로 3천명이 끌려갔다. | 이기면 모를까 석두성을 점령당하고 포로 3천명이 끌려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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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에 따르면 이새끼가 어릴때 [[마]]장수 하다 선화공주 따먹고 싶어서 서동요라는 향가를 만들었는데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이다. | 야사에 따르면 이새끼가 어릴때 [[마]]장수 하다 선화공주 따먹고 싶어서 서동요라는 향가를 만들었는데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향가이다. | ||
선화공주는 보통 신라 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하게 무왕 즉위 후 신라와 전쟁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화공주가 진짜 신라의 공주였는지 다른 집안 처자가 신라 공주로 와전된건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 선화공주는 보통 신라 공주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하게 무왕 즉위 후 신라와 전쟁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화공주가 진짜 신라의 공주였는지 다른 집안 처자가 신라 공주로 와전된건지 의문의 여지가 있다. | ||
실제로는 [[동성왕]]의 아내이자 무왕의 증조할매였다고 함. | |||
수도를 사비에서 [[익산]]으로 옮기려 했다. 미륵사가 얘가 지은 절임. | |||
무왕이 현대 지역이면 전북 익산 주변 출생으로 추정되는 넘이라 그런지 익산에 버프를 많이 걸었지만 결국 옮겨지진 못했고 유물만 존나 남겨줬다. | |||
삼국사기에 따르면 미남이였다고 한다. | |||
최근 익산 쌍릉 유골에서 백제 무왕의 능이라고 하는 것이 발견되었다. 학자들도 무왕의 유골이 맞다고 인정했고 키도 161–170.1 cm 사이라고 함. 역덕들 환호소리 오지게 들린당 기모찌 | |||
=== 서동요 === | === 서동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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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矣卯乙抱遺去如 | 夜矣卯乙抱遺去如 | ||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결혼해 두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 ||
==[[발해]]== | ==발해의 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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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 |||
!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 white;background-color: ;" | [[발해|발해의 역대 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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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1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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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2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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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3대 | |||
| rowspan="2" style="text-align: center;" | → | |||
| style="text-align: center;" | 4대 | |||
| rowspan="2" style="text-align: center;" | → | |||
| style="text-align: center;" | 5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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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 center;" | [[대조영|고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무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문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폐왕]] | |||
| style="text-align: center;" | [[성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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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 |||
{{명장}} | |||
{{잘함}} | |||
{{전잘알}} | |||
{{개쩌는사람}} | |||
{| class="wikitable" | |||
!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 white;background-color: purple;"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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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9년 ~ 737년 | |||
|} | |||
발해의 고왕(대조영)의 장남으로, 그 뒤를 이어 가독부가 된 발해 2대 왕. 본명은 대무예이다. | |||
이름답게 무력을 쓰는 것에 능해 고구려의 고토를 대부분 회복하고 당나라를 2차례 선제공격하여 승리하였다. | |||
신생국 발해로 당나라 본토를 조지고 흑수말갈을 복속시켜 신흥 강국을 만든 정복군주. | |||
==주 무왕== | ==주 무왕== | ||
{| class="wikitable" width=59% | |||
! colspan=6 style="background-color:#ffffff; color:"|'''[[주나라]]의 역대 국왕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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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 [[상나라|상]] <br> 30대 [[주왕]] 제신 !! → !! '''초대 무왕 희발''' !! → !! 2대 성왕 희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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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드립허용}} | {{고인드립허용}} | ||
{{심플/구라}} | {{심플/구라}} | ||
{{역사왜곡}} | {{역사왜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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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중국 최고의 사기꾼. | 고대중국 최고의 사기꾼. | ||
주나라 문왕 서백의 아들이었다. 상서, 사기등의 갑골문이후의 기록에 따르면 서백은 깡패질을 하는 은나라한테 제대로 개겨보다가 좆되니까 아들 희발이 은나라에게 착취당하던 약소국들을 이끌고 은나라를 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갑골문들과 주나라 금문<ref>청동기에 새긴 글들을 의미한다. </ref>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제신은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은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문제는 이 제신이 빈집털이를 해오던 [[산동성]]의 동이에게 병력을 몰빵했다는것. 그래서 서부지방의 방비가 개판이 되었고 무왕은 이를 노려 약소국들을 선동해 은나라를 멸했다. 이 약소국들은 이전의 상나라가 해오던 인신공양에 진절머리가 난 애들이었기에 상나라에 대한 반감이 컸고 무왕의 선동에 아주 잘 넘어갔다. 이놈은 자기 동생과 자기 최측근 강태공에게 감투를 돌려서 몇몇 땅에 제후로 임명했는데, 이렇게 생긴 나라가 바로 [[연나라]], [[제나라]], [[노나라]], | 주나라 문왕 서백의 아들이었다. 상서, 사기등의 갑골문이후의 기록에 따르면 서백은 깡패질을 하는 은나라한테 제대로 개겨보다가 좆되니까 아들 희발이 은나라에게 착취당하던 약소국들을 이끌고 은나라를 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갑골문들과 주나라 금문<ref>청동기에 새긴 글들을 의미한다.</ref> 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제신은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은나라를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문제는 이 제신이 빈집털이를 해오던 [[산동성]]의 동이에게 병력을 몰빵했다는것. 그래서 서부지방의 방비가 개판이 되었고 무왕은 이를 노려 약소국들을 선동해 은나라를 멸했다. 이 약소국들은 이전의 상나라가 해오던 인신공양에 진절머리가 난 애들이었기에 상나라에 대한 반감이 컸고 무왕의 선동에 아주 잘 넘어갔다. 이놈은 자기 동생과 자기 최측근 강태공에게 감투를 돌려서 몇몇 땅에 제후로 임명했는데, 이렇게 생긴 나라가 바로 [[연나라]], [[제나라]], [[노나라]], | ||
[[정나라]]였다고 한다. | [[정나라]]였다고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