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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또라이 애미뒤진 종교근본주의자들은 절망한놈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회개하라는 식으로 지랄하는데 물론 지나친 절망은 범죄나 [[파시즘]]등의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절망을 한번도 안할수가 있는지 절망자에게 죄인 이지랄 하는 병신들도 보인다. | 일부 또라이 애미뒤진 종교근본주의자들은 절망한놈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회개하라는 식으로 지랄하는데 물론 지나친 절망은 범죄나 [[파시즘]]등의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절망을 한번도 안할수가 있는지 절망자에게 죄인 이지랄 하는 병신들도 보인다. | ||
절망이 잘못된 것에 대한 분노나 제대로된 발전을 위한 전환점이 되면 좋은데 같은 약자등 타겟을 잘못잡아 증오하거나, 아님 아주 절망만 할 정도로 심약한 새끼들은 분노도 못하고 자존감 씹창나 그냥 포기하거나 자살하게 된다. | |||
이러한 환경이 만연해지면 자존감 씹창난 놈들은 절대적인 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자기보호본능으로 인해 나와 다른 이질적인 [[소수자]] 집단 등에 대한 배타주의, 체제나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심해지게 된다. | 이러한 환경이 만연해지면 자존감 씹창난 놈들은 절대적인 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자기보호본능으로 인해 나와 다른 이질적인 [[소수자]] 집단 등에 대한 배타주의, 체제나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심해지게 된다. | ||
대중사회적에 절망이 만연한데 위정자들이 그들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대중들을 위하지 않는다고 대중들이 생각하게 되면 그 다음 순간은 [[파시즘]]과 [[포퓰리즘]] 등 극단주의의 아주 좋은 토양이 되는것이다. | 대중사회적에 절망이 만연한데 위정자들이 그들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대중들을 위하지 않는다고 대중들이 생각하게 되면 그 다음 순간은 [[파시즘]]과 [[포퓰리즘]] 등 극단주의의 아주 좋은 토양이 되는것이다. 이미 이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현재진행형이다. | ||
2018년 8월 10일 (금) 15:49 판
| 주의! 이 글은 헬-조선의 현실을 다룹니다. 전세계의 그 어느 장소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찾아봐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K-지옥불반도 헬조선만의 수우많은 자랑거리들!!! 이러한 헬조선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과 당신에게 탈조선을 권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야... |
| 주의. 이 문서는 노예에 대해 다룹니다. 일해라 일! 노력해라 노오오력! 열심히 일해서 주인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새끼들아 |
| 자살은 안돼 NoNoNo! 네가 자살하면 우리가 네 몫까지 다 책임져야 합니다. 디시위키에서 자살 타령하는 건 드립일 뿐, 제발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자살하지 마세요. 씨발 내가 다 살려낼거니까 |
이 지옥불반도에 사는 모두가 항상 느낄 수밖에 없는 것
뭐, 현실이 절망스럽다고? 노오오오오력을 하라구!'
이거 맛보려고 자살하는 년도 있다. 다만 이새낀 니뽄진.
절망은 자살의 준비 단계지. 절망하게 되면 결국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 절망이 오래 지속되면 정말 진짜로 자살을 결심해. 그들이 한순간에 충격 때문에 자살을 하진 않아. 희망은 불빛과도 같아서 꺼져버리면 매우 캄캄하고 어두워. 하지만 그 곳에서 조금만 더 기다리면 햇살이 비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지. 우리의 마음도 날씨처럼 비가 올 때도 있고 천둥이 칠 때도 있어. 어떤 날은 계속 장대비만 내리게 되지. 이건 세상의 이치야. 운 같은 걸 얘기하는 거지.
비슷한 얘기를 또 하자면 어차피 사는 건 반작용이야. 너가 불행을 겪으면 다음에 똑같은 행복을 받아. 아닌 것 같다고? 글쎄 불행만 계속됬다면 너가 계속 살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아. 절망적이다라는 표현은 그 리스크 때문에 일어나지. 만약 누군가가 절망한다면 그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지. 도박이지만 원래 인생은 도박이야. 아무 것도 아니거나 위대한 도전이거나 둘 중 하나기 때문이지. 고로 모든 것에 실패하고 절망했다면 주갤러가 되자 마지노선에 한강만 깔아놓으면 신용미수, 사채, 깡 몰빵이 두렵지 않다.
어차피 자살은 충동적인 거라 이런 글 읽지도 않고 도움도 안된다. 급식들은 무서워서 자살도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죽는 순간에는 후회한다. 그게 자살이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절망을 안할수는 없다.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제일 중요한거다.
일부 또라이 애미뒤진 종교근본주의자들은 절망한놈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회개하라는 식으로 지랄하는데 물론 지나친 절망은 범죄나 파시즘등의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절망을 한번도 안할수가 있는지 절망자에게 죄인 이지랄 하는 병신들도 보인다.
절망이 잘못된 것에 대한 분노나 제대로된 발전을 위한 전환점이 되면 좋은데 같은 약자등 타겟을 잘못잡아 증오하거나, 아님 아주 절망만 할 정도로 심약한 새끼들은 분노도 못하고 자존감 씹창나 그냥 포기하거나 자살하게 된다.
이러한 환경이 만연해지면 자존감 씹창난 놈들은 절대적인 것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자기보호본능으로 인해 나와 다른 이질적인 소수자 집단 등에 대한 배타주의, 체제나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분노와 증오도 심해지게 된다.
대중사회적에 절망이 만연한데 위정자들이 그들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대중들을 위하지 않는다고 대중들이 생각하게 되면 그 다음 순간은 파시즘과 포퓰리즘 등 극단주의의 아주 좋은 토양이 되는것이다. 이미 이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