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몬 시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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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가 끝나고 일본이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기원전 146세기부터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10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까지를 말한다. 일본의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 빙하기가 끝나고 일본이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기원전 146세기부터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10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까지를 말한다. 일본의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 ||
== 설명 == | |||
민족적인 이름은 없고 해수면에 의해서 갈라지기 전의 한반도 중남부와 일본열도에 걸쳐 살았던 민족(죠몬인)이자 시대(죠몬시대)로 명칭한다. | 민족적인 이름은 없고 해수면에 의해서 갈라지기 전의 한반도 중남부와 일본열도에 걸쳐 살았던 민족(죠몬인)이자 시대(죠몬시대)로 명칭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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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혼령이 함부로 유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죽은 혼령이 함부로 유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
== 시대 구분 == | |||
[https://jomon-japan.jp/kr/learn/jomon-prehistoric-sites-in-northern-japan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 '일본 북부의 조몬 유적군'] 사이트에서는 크게 3개, 작게 6개의 구분을 한다. | |||
=== I-a: 거주지 형성 === | |||
기원전 130세기 ~ 기원전 70세기 | |||
일본이 대륙과 분리되고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거주지가 형성되고 토기를 쓰기 시작하는 시기다. | |||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우가우가 시절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가족구성원 등이 뒈지면 걍 집 밑에 묻어버렸다. 집이 곧 무덤이고 묘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 |||
=== I-b: 취락의 성립 === | |||
기원전 70세기 ~ 기원전 50세기 | |||
무덤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다. 집과 무덤이 분리되어 집 밖의 공간도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취락으로 발전하는 단계다. | |||
=== II-a: 취락 시설의 다양화 === | |||
기원전 50세기 ~ [[기원전 30세기]] | |||
이때부터가 중기다. | |||
서쪽 멀리에서 [[이집트 선왕조]]와 메소포타미아 [[우루크 시대]] 등 초기 문자문명이 등장하던 시기와 겹친다. | |||
기원전 50세기쯤 화산이 빵 터지면서 취락 개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과 무덤뿐만 아니라 저장 창고, 스테바(제사터) 등이 생겨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가 형성되는 시기다. | |||
=== II-b: 거점취락의 출현 === | |||
[[기원전 30세기]] ~ [[기원전 20세기]] | |||
머나먼 서쪽에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미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등이 생겨나던 시기와 겹친다. | |||
이때부터는 제사터가 취락의 중심지에 자리잡으면서 취락이 하나의 거점에 머무르는 거점취락이 등장한다. | |||
=== III-a: 공동 제사터 및 묘지의 진출 === | |||
[[기원전 20세기]] ~ [[기원전 15세기]] | |||
이때부터가 후기라고 할 수 있다. | |||
기원전 20세기 전후의 전세계적 기후변화로 온도가 내려간 시기다. 가족 단위의 여러 취락이 모여 제사터와 묘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 |||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간에는 제사터와 묘지가 함께 있었다. | |||
=== III-b: 제사터와 묘지의 분리 === | |||
[[기원전 15세기]] ~ [[기원전 4세기]] | |||
이때부터는 공동 제사터와 묘지가 서로 분리된다. 갈수록 제사터에 의미부여를 크게 하기 시작하면서 종교, 즉 [[신토]]의 원시적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 |||
이 이후부터는 야요이인의 유입과 함께 청동기+철기 시대인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다. | |||
==외모== | ==외모== | ||
2026년 5월 16일 (토) 04:58 기준 최신판
| 일본의 역사 | |||
| 선사 | 죠몬 시대(縄文時代)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고훈 시대(古墳時代) | ||
| 고대 | 아스카 시대(飛鳥時代) 나라 시대(奈良時代)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 ||
| 중세 |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센고쿠 시대(戦国時代)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 | ||
| 근세 | 에도 시대(江戸時代) 세키가하라 전투 | ||
| 근대 | 일본 제국(大日本帝国) 메이지 유신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
메이지 시대 (明治時代) 다이쇼 시대 (大正時代) 쇼와 시대 (昭和時代) | |
| 현대 | 현대 일본(日本国) 군정기 |
쇼와 시대 (昭和時代) 헤이세이 시대 (平成時代) 레이와 시대 (令和時代) | |
죠몬(繩文)
(기원전 14600년경 ~ 기원전 10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
빙하기가 끝나고 일본이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기원전 146세기부터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는 기원전 10세기 혹은 기원전 3세기까지를 말한다. 일본의 신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민족적인 이름은 없고 해수면에 의해서 갈라지기 전의 한반도 중남부와 일본열도에 걸쳐 살았던 민족(죠몬인)이자 시대(죠몬시대)로 명칭한다.
일본의 우가우가 시대. 죠몬이라는 말은 토기의 장식인 승문에서 나온 단어이다.
동물 사냥의 생활 양식에 적응하고 영(靈)에 대한 신앙을 확립해 나갔다. 세상 모든 동물들에게도 영혼이 있어서 동물을 죽이게 되면, 그 동물의 몸에 갇힌 영혼이 해방되어 본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해안가에서도 물고기를 조지게 많이 잡아먹었다고 한다.
여성을 형상화한 죠몬 토우(土偶)가 가장 대표적인 유물들이다.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은 여성형 토우이다. 이 토우가 특이한 점은, 여성의 생식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한 신체들은 상당수가 생략되어 있다. 손과 발이 없음 ㄷㄷ 모성, 다산, 생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토우의 몸이 마구 분리되어 있는 경우도 상당히 많은데, 이는 죽음으로부터 새롭게 생명이 태어난다고 하는 일본 고유의 신앙 때문이다. 저승을 갔다 온 이자나기가 막 몸에서 여러 신들을 탄생시키고 그러잖아. 딱 그런거. 보통 새로운 생명체가 많이 있어야 사냥을 쉽게 할 수 있는 수렵생활의 특성상, 새 짐승들이 많이 태어나길 바라는 마인드가 이 토우에 반영된 것 같다. 음... 그렇다.
시체를 묻을 때 팔과 다리를 꺾어 구부린 상태로 묻는 굴장(屈葬)도 많이 유행했다.
죽은 혼령이 함부로 유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 '일본 북부의 조몬 유적군' 사이트에서는 크게 3개, 작게 6개의 구분을 한다.
기원전 130세기 ~ 기원전 70세기
일본이 대륙과 분리되고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거주지가 형성되고 토기를 쓰기 시작하는 시기다.
고대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우가우가 시절에는 동서를 막론하고 가족구성원 등이 뒈지면 걍 집 밑에 묻어버렸다. 집이 곧 무덤이고 묘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기원전 70세기 ~ 기원전 50세기
무덤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다. 집과 무덤이 분리되어 집 밖의 공간도 가족이 사용할 수 있는 취락으로 발전하는 단계다.
기원전 50세기 ~ 기원전 30세기
이때부터가 중기다.
서쪽 멀리에서 이집트 선왕조와 메소포타미아 우루크 시대 등 초기 문자문명이 등장하던 시기와 겹친다.
기원전 50세기쯤 화산이 빵 터지면서 취락 개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집과 무덤뿐만 아니라 저장 창고, 스테바(제사터) 등이 생겨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가 형성되는 시기다.
머나먼 서쪽에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미노아, 인더스, 황하 문명 등이 생겨나던 시기와 겹친다.
이때부터는 제사터가 취락의 중심지에 자리잡으면서 취락이 하나의 거점에 머무르는 거점취락이 등장한다.
이때부터가 후기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20세기 전후의 전세계적 기후변화로 온도가 내려간 시기다. 가족 단위의 여러 취락이 모여 제사터와 묘지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구간에는 제사터와 묘지가 함께 있었다.
이때부터는 공동 제사터와 묘지가 서로 분리된다. 갈수록 제사터에 의미부여를 크게 하기 시작하면서 종교, 즉 신토의 원시적 형태가 나타나게 된다.
이 이후부터는 야요이인의 유입과 함께 청동기+철기 시대인 야요이 시대가 시작된다.
일본에서도 묘사가 들쑥날쑥한데, 어디선 그냥 털 많은 동양인처럼 묘사되고, 어디서는 서양인이나 동남아인 수준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일단 실물 복원했을 때의 모습은 걍 털많은 동양인이다.
유전적 구성이 한국인, 울치인, 대만원주민와 비슷하다고 한다.
전술했듯 한반도 남부에서도 죠몬인들이 살긴 살았다. 부산에서 죠몬 유적 발견되고 남부지방에서 가야 무덤이나 고인돌을 까서 조사해보니 8명 중에서 2명은 죠몬인 유전자가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북부 지역에서 내려오는 한민족들 조상들한테 밀려서 존재감은 종범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현재 한국인들에게선 죠몬인 유전자가 1~2% 검출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I. 동아시아 역사의 시작 →2단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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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 고정 문제로 출제되는 1번 문제에 나온다. 양사오, 다원커우, 한반도 등과 비교된다.
조몬 토우는 잘 안 나오고 팬티 모양처럼 생긴 토기가 훨씬 자주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