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산파: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 51번째 줄: | 51번째 줄: | ||
*김도만: 갑산파의 경제 정책은 이 친구의 머리에서 나왔다. | *김도만: 갑산파의 경제 정책은 이 친구의 머리에서 나왔다. | ||
*이효순: 김정일의 고도간첩. 이놈이 박금철 찬양 영화인 <일편단심>을 만들어서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원흉을 만든 개씹새끼다. | *이효순: 김정일의 고도간첩. 이놈이 박금철 찬양 영화인 <일편단심>을 만들어서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원흉을 만든 개씹새끼다. | ||
* | * 북한 각 지방의 중견간부 '''3분의 2''': 이들이 목민심서를 정독했다. 북한에 그래도 남아있던 인재들이었다. | ||
==결론== | ==결론== | ||
결론은 [[김일성]] [[김정일]] 애미애비쳐[[뒤지다|뒈진]] 개 씨X 좆같은 새끼이다. | 결론은 [[김일성]] [[김정일]] 애미애비쳐[[뒤지다|뒈진]] 개 씨X 좆같은 새끼이다. | ||
2019년 5월 24일 (금) 12:32 판
| 경고! 뤼 문서뤠서 설명하른 대상른 북괴롬덜과 밀접한 관계가 맀습레다! |
| 이 문서는 숙청당한 인물을 다룹니다. 너 숙청!! |
| 이 문서는 벌집핏자가 된 대상 또는 벌집핏자와 관련된 대상에 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대국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총알세례를 듬뿍 받은 대상 또는 정의구현을 실현한 대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으따 바람이 구멍을 통해 솔솔 들어오구마잉~ |
| 엣헴! 이 문서에 선비가 왔다 갔습니다. 이 문서는 선비님의 등장으로 인해 노잼이 되어가고 있는 문서입니다. 진지한 문서를 원하시면 위키백과로 가주십시오. |
| 주의!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망했습니다. 이 문서와 상관있는 분들은 벌써 망했거나 곧 망합니다. 벌써 망해서 더럽게 재미없거나 매우 혐오스러운 내용을 담습니다. 이 문서와 관련되어 인생 망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
|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 존나 똑똑합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호구가 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
|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
혹부리와 함께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로, 개마고원에서 지하 독립운동 단체를 만들어서 활동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침에 적극 찬성했던 전범들이다.
8월 종파사건 당시 혹부리의 똘마니 역할을 하면서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들을 벌집핏자로 만드는데 공헌했지만 혹부리의 막장 우상화에는 철저히 반대했으며 정약용 슨상님을 빨아주면서 북괴를 실학의 나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이놈들은 파보면 파볼수록 북한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람들이라는 말을 나오게 만들고 있다.
남한에서 재평가를 받으면서 자기가 죽여버린 연안파와 소련파와 함께 열심히 빨리는 중이다.
얘들의 머리통에 들어있던 것과 그에 대한 디키러들의 평가
|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
| 이 문서는 혜자에 대한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창렬의 반대, 즉 가성비가 좋은 은혜로운 것에 대해 다룹니다. 캬~ 갓혜자니뮤ㅠㅠㅠ!!! |
- 경공업 육성: 혹불성은 빨리 중공업만 졸라게 양성해서 적화통일을 빨리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은 적화통일을 빨리 이루기보다는 중공업은 이제 발전할 만큼 발전했으니, 경공업을 육성해서 인민들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괴를 비롯해서 공산 국가들의 삶의 질이 개병신인 것에는 경공업이 씹창났던 공산권 경제 구조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아두자. 뭐 어차피 저거 개방했다면 바로 갓한민국의 경공업에게 발렸을 것 같지만.
- 군비 축소: 실제로 북괴는 군비가 너무 많아서 뭘하기가 힘들었다. 이는 김일성도 인정한 부분이었는데, 한 미국 기자 앞에서 지 입으로 군비에 쓰는 돈이 너무 많아서 뭘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고 증언했다. 국가 총예산에서 군비 6%만 넘어도 경제가 씹창 난다고 말한 일본의 모 경제학자의 말과 당시 공산권 국가들은 대부분 군비가 국가 총예산의 10%수준이었음을 생각해 봐라. 참고로 지금 북괴는 국가 총예산을 핵개발과 열병식으로 3분의 2 이상을 날려먹는다는 자료가 있다.
- 시장경제의 부분적 도입: 북한의 기업에서 좆도 쓸데없이 높은 자리에 짱박혀서 꼰대질만 하고 돈만 뜯어먹는 당 일꾼을 조져버린다거나, 인턴 수준으로 권위를 떨구고 지배인(쉽게 말해서 전문 경영인)의 권한을 강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시 기업이 존나 빅-똥 싼 거 아니면 정부는 기업에 개입하는것은 삼가야 한다. 이게 북한 경제를 살리는 신의 한 수였을 것인데, 북쪽 사람들이 장사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제대로 축적된 경영 지식과 상인의 유전자가 합쳐지면 무슨 경제 성장인들 안 하겠는가.
- 실학 수용: 이들이 김정일과 김일성에게 꼬투리 잡힌 이유가 유교탈레반이라는 이유였다. 이들은 실학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정약용 슨상님의 정치 철학을 통해 북괴를 살리려고 했다. 특히 갑산파의 리더였던 박금철은 자기 똘마니들에게 목민심서를 정독시켰다. 이거 성공했다면 한반도 북부는 지금 북괴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남한 기준으로만 봐도 제법 살 만한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몰락
| 주의! 이 글은 헬북괴의 현실을 다룹니다.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헬북괴의 수많은 자랑거리들!! 이러한 헬북괴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북괴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
얘들은 결국 1967년 리더인 박금철이 뒈짓하면서 몰락한다. 이후 북괴 혹부리를 막을 세력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만약 얘들이 정권을 잡았으면
| 찬양하라! 이 문서는 헬조선은 노오오오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지상 낙원을 다룹니다. 해당 항목에 서술된 곳은 헬조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천국입니다. 만약 탈조선을 하실 것이라면 반드시 노오력을 해서 꼭 이 곳으로 꼭 탈출하십시오. 물론 지구에도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
- 1960년대와 1970년대: 이놈들은 니키타 흐루쇼프처럼 세력을 완전히 물갈이 해서 집권한 세력이기에, 자기들의 권력 쟁취의 정당성을 위해서 빨치산파의 개인숭배부터 비판했을 것이다.(이때는 박금철 찬양 영화를 찍은 이효순은 뒈짖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연좌제처럼 극단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병신 같은 통제를 연좌제 폐지 등으로 상당 부분 풀어줬을 것이다. 그리고 군비 축소와 시장경제요소 부분 도입을 요구했기에, 그들의 요구처럼 군비를 축소하여 북한군의 막장스러운 복무 기간이 감소하거나, 아예 북한군 규모가 일부 휴전선과 북중 국경지대의 군사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축소되었을 것이고, 경제에 대한 당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되는 중국의 개혁개방노선에 적극 합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을 정약용의 실학에 따라 운영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어느정도 해결되고 진짜 인민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쁨조나 건설 사단들은 북한의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 1980년대: 중국의 개혁 개방과 함께 개방을 진행한다면 반드시 맞닥뜨릴 남한의 경공업과 중국의 경공업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중국은 인구빨로 가격을 조져버리고, 남한은 1950년대부터 경공업에서 알아주는 나라였기 때문에 경쟁력의 하락으로 인해 경기가 침체되었을 것이고, 실학처럼 한다고 약해진 사상의 통제로 인해 1980년대부터 북한 내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그리고 냉전이 진짜 종결되는 1987년 남한의 6월 항쟁에 자극을 받아서 북한에서도 대규모 반공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태영호의 증언에 따르면 실제로 1980년대 후반에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반정부 성향의 대학생들이 지하에서 조직을 만든 게 발각되기도 했다고.) 그리고 진짜 이때 천안문 사태로 중국이 신경을 못 쓰는 틈을 타고 1991년 독일 통일에 자극을 받아 남북한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통일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하면서 민주화된 남북한이 계속 통일 논의를 하게 되었을 것이다.
- 1990년대: 이때 남북한이 통일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991년 이후로 소련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천안문 사태를 겨우 진압한 마당에 파룬궁 탄압으로 발생한 중국의 인권 운동을 생각해본다면 중국은 북한에 제대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던 상황이며, 남한 내부에서는 통일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진짜 1990년대가 정말 아까운 시간이다. 김돼지가 1960년대에 정리되고 70~80년대에 남북 교류가 제대로 되다가 1990년대 통일이 되었다면 이 나라가 최소한 이런 지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멤버
- 박금철: 리더. 숙청 직전에는 조선노동당에서 서열 4위였다. 좀 못생겼다.
- 김도만: 갑산파의 경제 정책은 이 친구의 머리에서 나왔다.
- 이효순: 김정일의 고도간첩. 이놈이 박금철 찬양 영화인 <일편단심>을 만들어서 갑산파가 김정일에게 꼬투리를 잡히는 원흉을 만든 개씹새끼다.
- 북한 각 지방의 중견간부 3분의 2: 이들이 목민심서를 정독했다. 북한에 그래도 남아있던 인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