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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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판 파시즘. 이걸 더 열화시키고 좆병신같은 혈통주의까지 짬뽕시킨게 주체사상이다.
이미 학계에서도 1930년대 대숙청을 벌이던 스탈린 시대를 레드 파시즘(적색 파시즘)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인민 따위는 포기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것도 파시즘과 매우 유사하다. 레닌주의에 파시즘을 가미한 것이 스탈린주의로 볼 수 있겠다.
북한도 경제 박살나면서 사회주의 버리니까 그냥 파시즘됐다.
레닌주의 보다 더욱더 극단적으로 국가의 개인에 대한 우위성을 인정한다.
여기에 더해 타 국가로의 혁명의 수출이 없는 상태에서도 소련은 충분히 스스로 생산력을 높일 수 있다.[1]
정리하자면
- 사회주의 혁명 완수를 위한 국가총력태세 유지
- 국가 주도의 경제계획 및 생산수단, 재화분배의 독점
- 당의 무오류성 및 지도자의 절대화
- 일국사회주의
가 조합되면 스탈린주의다. 까놓고 2차대전 이후 수립된 공산국가들은 죄다 이 루트로 간다. 즉 독재의 길로 말이다.
스탈린은 어떤 집단이 민족으로 인정받으려면 네가지 조건을 모두 통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공통의 영토, 경제생활, 고유의 문화 및 언어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스탈린은 유대인은 공통의 영토 등이 없으므로 종교집단일지언정 민족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여태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 적대시받던 애국주의를 '사회주의적' 형태로 복원시켰다.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란 자국민 및 그 문화 등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완전히 합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해서 1920년대에 활발했던 키릴 문자 폐기 및 로마자 도입 운동을 중단시키고, 대조국전쟁 따위의 명칭을 붙이는 행태를 보였다.
또한 세계시민주의를 '뿌리없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은근히 유대인들과 관련지었다. 이와 관련해 에스페란토도 탄압했다.
미술 사조로 여태까지의 현실주의 사조의 계승이라고 주장한 사회주의적 현실주의만을 인정했다. 이와는 대치되는 유미주의, 퇴폐주의, 모더니즘 등은 전부 탄압대상으로 찍혔다.
서구 사상의 유입을 극도로 경계하고 차단하려고 했다. 대표적인 탄압 대상으로 사이버네틱스, 실존주의, 정신분석학, 현상학 등이 있었고 상대성이론, 양자역학도 탄압 위기를 겪었으나 실용적 필요성 때문에 탄압을 모면했다. 이런 행태는 스탈린 말년에 희대의 유사과학자인 트로핌 리셴코가 득세하는 배경이 됐다.
사회주의 혁명이 다른 국가들에도 수출돼야만 사회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 트로츠키에 반대하면서 한 사회주의 국가만으로도 사회주의를 충분히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일국사회주의론이라고 한다. 다만 스탈린이 혁명 지원에 아예 관심을 끊은 건 아니고 오히려 나름대로 지원하긴 했다.
이후 소련이 초강대국이 되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일국사회주의론이 옳았다고 주장했지만, 반대자들은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가 훼손됐으니 인정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교조주의에 대해 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존 마르크스주의 저작들을 근거로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교조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자신에 반대하는 단체들을 종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당연히 이렇게 비난당한 단체 및 인물들은 전부 학살당했다.
나중에 스탈린은 티토 같은 자기로부터 이탈한 지도자들도 종파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또한 이런 경향은 북한에서 8월 종파사건에 영향을 끼쳤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에 반대하고 2단계 혁명론을 계속해서 추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략에 있어서는 시대에 따라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대공황으로 인해 서구 자본주의가 멸망위기에 이르자 스탈린은 혁명이 목전에 왔다며 초좌익주의 성향을 보였다. 즉 사회주의 혁명이 최우선 목표이고,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사회파시스트들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주장된 바 일반 파시스트들보다도 더욱 기만적이기 때문에 최악의 적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이 때문에 나치 집권 직전까지 독일 공산당원들이 나치당원들과 협업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맞서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더는 가망이 없고 나치가 진정한 적이라는게 분명해지자 스탈린은 사회파시즘론을 영원히 갖다 버리고 인민전선론으로 변절했다.
1935년경부터 스탈린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파시스트가 아닌 모든 세력, 즉 인민들이 연합해서 투쟁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세력에는 한 때 파시스트라고 불렀던 사회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등도 포함시켰다. 특히 독소전쟁부터는 아예 인민전쟁을 주장하면서 파시즘에 맞서는게 최우선이니 계급투쟁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인민전선론이 실천된 스페인 내전은 실패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승리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 스탈린주의와 반대자들 간에 논쟁이 많다.
스탈린 격하 때 스탈린의 인격은 규탄당했지만, 스탈린주의의 핵심적인 부분들(사회주의적 애국주의•현실주의, 서구 사상 탄압 등)은 고르바초프 전까지는 계속해서 소련에서 유지됐다. 즉 스탈린이 짜놓은 사상적 틀은 그가 사망한 후에도 소련에서 30년 가량 계속됐던 것이다. 현 러시아 연방 공산당 성향도 스탈린주의다.
당연히 현실사회주의 국가들도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는 스탈린주의를 그대로 이식했다. 최후까지 남아있던 스탈린주의 국가로 북한과 알바니아가 있었다. 알바니아는 자본주의로 전향하고 부칸은 주체 사이비국가가 됐지만...
각주
- ↑ 트로츠키가 주장한 연속혁명론과 결정적으로 갈라진다. 스탈린주의의 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