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K-위키
주의. 이 문서는 심히 진지하여 노잼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놀랍게도 디시위키에서 진지를 빨고 있습니다. 노잼이다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하시어 이 문서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철학적인 것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우리가 살면서 꼭 한 번씩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만한 주제에 관하여 다룹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신성한 문서입니다.
깨우쳐라 미련한 중생들이여
이 문서는 개인주의, 혹은 개인주의자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개인의 자유를 권장합니다.
4번은 개인주의야
주의! 이 글이 다루는 대상은 존나 미스터리합니다.
씨ㅡ발 뭐가 뭔지 몰?루겟소요. 무섭습니다. ㅠㅠ

20세기 초중반에 유럽 대륙에 출현한 사르트르를 포함한 일련의 철학자들을 일컫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역시 가장 유명한 말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이다. 간단하게 풀이하면 '내가 있다(실존)'가 '내가 무엇이다(본질)'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다른 통상적인 사물은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 이를테면 의자는 그 존재보다는 '앉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이 우선이다. 그러니까 '앉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에 따라 의자의 존재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자에 대해서는 그 본질에 따라 앉기 편하다거나 불편하다는 평가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존재하고 난 뒤 자신의 본질을 규정한다. 가령 너는 찐따라는 본질에 따라 출현한 것이 아니라 너의 존재가 먼저 출현한 후에 너 자신의 선택에 따라 찐따가 된 것이다.

사르트르가 이렇게 실존이라는 존재 형태에 대해 자세히 해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르트르를 포함해 존재 문제에 관해 천착한 철학자들을 싸잡아 실존주의자라고 불렀다. 댕청한 사람들의 이런 도매금에 사르트르는 자신을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부르기를 거부했으나 나중에는 이를 받아들여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의를 하고 그것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하이데거를 위시해 메를로-퐁티, 야스퍼스 등의 철학자들은 자신을 실존주의자로 묶어서 부르는 걸 매우 싫어했다. 알베르 카뮈도 그랬다.

나중에 68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그건. 확실한 건 사르트르는 68혁명 때 학생들이랑 같이 거리 나왔다고 한다.

김대중이 감옥 갇혀있었을 때 실존주의 계열 작가들을 엄청 많이 읽었는데, 주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야스퍼스, 카뮈 등을 읽었다.

용어의 모호함

실존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시대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들 여겨진다. 실제로 당시 한 가톨릭 언론에서는 실존주의를 18세기 합리주의, 19세기 실증주의보다도 더 심각한 위협이라고도 칭했다. 하지만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계속 나타나듯이 정작 수많은 지식인들은 실존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꺼려했다. 이렇듯 대중의 여론과 학계 사이의 괴리가 아주 심하다보니, 실존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게 모르게 논란이 지속되고 있고, 실존주의에 대한 정의는 언제까지고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 의존하고 있는 판국이다.

인물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로 인정한 인물

사실 20세기의 주요 지식인들 중에 스스로를 실존주의자로 인정한 인물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유이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이들마저도 실제로는 마지못해 명칭을 받아들인 것에 가깝다.

실존주의자라고 말한 적 없는데 그렇게 엮이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