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하이데거
| 이 문서는 철학적인 것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우리가 살면서 꼭 한 번씩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만한 주제에 관하여 다룹니다. 우리의 삶의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신성한 문서입니다. 깨우쳐라 미련한 중생들이여 |
| 이 문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을 다룹니다. 이 문서는 일반적인 뇌를 가지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두뇌를 풀가동해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나 아는사람 강다니엘 닮은 이모가 다시보게되는게 다시 그때처럼 안닮게 엄마보면 느껴지는걸수도 있는거임? |
| 경고! 이 문서는 파시즘/파시스트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단순히 권위주의나 독재가 아니라 극도로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군국주의적, 극단주의적인 것입니다. |
Martin Heidegger
20세기 독일의 철학자이다. 후설에 의해 촉발된 현상학 운동의 중심에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다.
존재 문제에 천착했으며 가장 유명한 저서는 『존재와 시간』이다. 이 책은 미완성인데, 서양 철학사에서 존재 망각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 가운데서도 은폐된 존재가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가를 보이려는 작업을 못 했다. 이후『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 『철학에의 기여』등에서 『존재와 시간』에서 다 다루지 못한 작업들이 수행되었다.
『존재와 시간』은 존나 난해하기로 유명해서 몇십 년 동안 하이데거만 연구한 서울대학교의 소광희 명예 교수도 아직까지 한국에서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한다. 독일인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해서 '존재와 시간은 언제쯤 독일어로 번역되냐?'는 우스겟소리가 있다고 한다.
대륙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흔히들 비트겐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 2대 철학자라고 말한다.
후기에는 상당히 미학적인 얘기들을 많이 남겼고 시적 언어를 찬양했다.
카르납이 하이데거를 논문에서 직접 언급하며 신나게 깐 것이 바로 현상학과 분석 철학이 틀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집안이 상당한 콩가루였는데 마치 사르트르랑 보부아르마냥 본인이나 아내나 사실상 대놓고 바람 피우고 다녔고 그걸 또 서로 인정하면서 살았다. 심지어는 아내가 사생아를 얻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친아들처럼 키우기도 했다.
사상
전기 사상에서는 본인의 사상이 근간이 되는 내용들이 나온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혼동하는 사고방식을 비판하는데 존재자란 구체적인 존재의 대상이며 존재는 추상적인 존재의 방식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물은 존재자이고 유동성 등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존재와 존재자를 서로 혼동하면서 후자에 매몰되는 현상이 단순한 착오가 아니라 무려 수천년간 지속되어 온 존재망각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존재망각으로부터 야기되는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제시한다. 필연의 운명인 죽음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 개인은 불안함에 빠지게 되며, 이러한 상태에서 오히려 존재망각을 극복할 계기를 얻게 된다. 즉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온 방식으로는 불안함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다른, 본래적인 삶의 방식을 채택할 계기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관련한 예시로는 자신의 생애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함으로써 결국 회개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 영감이나 생로병사의 진실을 깨닫고 결국 구도자가 된 석가모니 설화 등등을 들 수 있겠다.
후기 사상에서는 보다 비개인적인 문제들을 다뤘는데 대표적으로 기술에 관해 논했다. 하이데거는 기술문명을 존재망각의 결과이자 원인으로 여겨 부정적으로 간주했으며, 기술을 야스퍼스가 주장한 것처럼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나치즘 논란
하이데거는 1933년 나치당에 가입하고 나치 정권에 복종할 것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는 등 나치에 어느정도 부역한 문제가 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역을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과연 어느 수준까지 했느냐 하는 것이다.
나치즘에 대한 비판이 자유로워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하이데거는 물론 보다 명시적으로 나치 정권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부역 사실에 대해서는 사과를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행태를 지속적으로 보여서 논란을 샀다. 이에 한스 요나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같은 한 때 자신의 제자였던 이들 일부마저 자신과 절연하기도 했다.
그래도 21세기 초까지는 하이데거를 변호하는 견해가 많았으나 2014년 하이데거가 반유대주의적 견해를 적은 글이 폭로되자 여론이 악화됐다. 이 때 독일 하이데거 학회장이 즉각 사임하기도 했다. 그래도 갑론을박이 완전히 종결된 상황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