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츠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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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에 기반한 공산주의 분파. 원래는 트로츠키 본인이 정한 명칭에 따라서 볼셰비키레닌주의라고 불렸지만, 스탈린주의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대신 트로츠키주의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명칭이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유명한 트로츠키의 유언장에서 잘 나타나듯 트로츠키는 한평생을 확고한 낙관론자로 살았다. 이는 트로츠키의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트로츠키가 온갖 오류와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가령 트로츠키는 죽기 직전까지도 스탈린 정권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반드시 몰락할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었다. 이러한 낙관적 편향은 개별적 예측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론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연속혁명은 영어로는 원래 Permanant Revolution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를 영구혁명으로 직역하기도 한다. 하지만 트로츠키가 정말로 주장하고자 한 것은 혁명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혁명을 '완결'짓는 것이기 때문에 연속혁명이 더 적절하다.
트로츠키는 러시아와 같은 자본주의가 낙후된 사회들에서는 자본가 혁명 정도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곧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한 사회 안에서 완결되더라도, 그 상태에서 정체하면 고립되어 쇠퇴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회들에도 혁명을 수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트로츠키의 주장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편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가장 많이 받는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관련해 단지 러시아 제국만 혁명운동이 있었던게 아니라, 독일, 아일랜드, 이집트, 이탈리아, 오스만, 핀란드, 헝가리에서 혁명운동이 벌어졌고, 중국과 한반도에서도 민족주의가 분출됐던 것을 감안하면 마냥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소련에서 축출당한 뒤 트로츠키는 소련 사회의 성격을 재정의하게 됐는데, 그의 주장은 소련은 자본가 국가도 아니지만 완전한 노동자 국가도 아닌, 그 과도기에 있는 퇴보한 노동자 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퇴보가 발생한 것은 스탈린을 비롯한 관료계층이 노동자들이 소련사회를 통제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정치적 혁명 없이도 관료계층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는 우월한 것이며, 따라서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에 의해 공격받을 경우 소련을 반드시 수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트로츠키는 파시즘은 단지 반동적인 운동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그의 견해에 파시즘은 위로부터의 반동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반동, 즉 중간계급이 기반이 되어서 대중운동을 동원하는 것이다. 파시즘의 기원에 대해서 트로츠키가 구체적으로 주장한 바는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중간계급은 지배계급을 원망하면서도 피지배계급이 자신들을 끌어내리는 것도 원하질 않고, 그 결과 기존의 지배계급과는 차별화되면서도 피지배계급을 주적으로 삼아서 일체의 민주주의를 폭력적으로 분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모두를 파시스트라고 부르곤 했던 스탈린주의자들과 차별되는 다른 지점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면 사민주의자들마저도 적으로 돌리다가(초좌익주의), 열위에 있다고 생각되면 자유주의자들과도 타협(민중전선)하려고하는 등 계속 혼란스러운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로츠키주의는 특히 파시즘과 같은 심각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파는 배제하면서도 사민주의와 같은 비공산주의 좌파들과도 협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 우파가 배제되는 것은 우파와 타협했다가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의 좌익주의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게 돼서 결국 기존의 전투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고, 비공산주의 좌파들과 협력하는 것은 그래야 자본주의에 더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이상적인 정치적 연대를 공동전선이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트로츠키는 심지어는 스탈린주의 노동자들과도 협력하려고 해야한다고 호소했었다.
원래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 당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구에서 상당한 지지자들이 있었다. 특히 미국, 벨기에, 스페인, 프랑스에 지지자들이 있었고, 1920년대 중반부터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유럽과 중국 모두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탄압과 훼방, 전쟁, 파시즘의 부상 따위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탄압을 당하면서 세력이 쇠퇴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1939년에 소련과 독일이 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이 소련 지지의 당위성에 대한 논란을 이르켰다. 이러한 악재들이 계속 쌓이다보니 트로츠키 살아생전부터 자발적으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후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가 더욱 강화되자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토니 클리프는 소련은 애초에 퇴보한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아예 자본주의 국가라면서 본인만의 정파를 만들어 이탈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20세기 중반에서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트로츠키주의가 부상했다. 그러나 나중에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심각한 논란이 다시 생겨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종자들이 어느정도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