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게르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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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게르만족이 연합해야한다는 사상이다.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던 19세기 초에 본격화됐다. 초기에는 의외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했으나 19세기 중엽부터는 보수주의자들의 의제가 됐다. 당시 범게르만주의는 오스트리아와의 합방을 배제하는 소게르만주의와 그런 합방을 지지하는 대게르만주의로 양분됐는데, 비스마르크가 전자를 지지하며 실현했다. 관세동맹,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등으로 단계적으로 독일 통일이 실현됐다.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동맹을 맺으면서 당시로서는 정점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말에 범게르만주의자들 중 일부가 사회진화론에 영향받으면서 서서히 배타성이 커졌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 모두 사실상 망하게 됐다. 이런 혼란 속에서 대게르만주의자들, 특히 나치가 서서히 득세했고, 결국 안슐루스를 실현한다. 이후 나치는 독일 민족의 통일을 명분으로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에 영토를 요구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재합방하는게 금지됐고, 독일은 동서로 분단됐다. 그러나 독일이 결국 재통일한 것은 범게르만주의가 여전히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로는 더는 이렇다할 의제가 없어지면서 사실상 쇠멸에 이른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