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혁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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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마르크스주의의 혁명론에 대해 다룬다. 원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단순히 정권이 교체되는 정치 혁명과, 정치 혁명을 넘어서 사회문화에도 변화가 나타나는 사회 혁명을 서로 구분하는데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정치 혁명을 다룬다. 나는 빨갱이가 아닌데 왜 이걸 읽어야되냐 싶을 수 있겠지만 20세기에 나름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주목할만한 이유가 있다.

왜 이론이 여러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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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마르크스엥겔스는 평생을 혁명의 문제에 헌신했지만, 정작 그들 생애동안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최선진국에서 먼저 혁명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머지 지역들을 비교적 소홀히 다뤘는데, 그들 사후에 정작 후진국으로 여겨질만한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벌어지자 당연히 이를 두고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대적 한계 외에도 이하에서 보겠지만 쟁점이 한두가지도 아니고 일반인들이 쉽게 혼동할만한 개념이나 용어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엄밀히 구별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보니 상당히 난해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은 태생적으로 논란이 심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지금도 그러하며, 따라서 사실과 해석, 교리 따위를 서로 분리하는데 난점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양해바란다.

쟁점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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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론 및 혁명세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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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봉건제 → 자본주의 → 사회주의의 단계를 밟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전자본주의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회주의로 이행해야하는지 논란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행히 엥겔스가 자본주의 단계가 필연적인 것은 서유럽에 국한되고, 현대의 전자본주의 사회들은 선진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의 도움을 받는 경우에만 특별히 자본주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런 이행의 속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았다.

이 때 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단계론에서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 2단계혁명론: 우선 부르주아 혁명부터 달성한 뒤 일정 기간 후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행한다.
  • 연속혁명론: 시간적 단절 없이 부르주아 혁명을 내포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다.

이와 관련해서 혁명세력으로 누가 포함돼야하는지도 논란거리였다.

  • 노동자-자유주의자 동맹: 말그대로 노동자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가 연합해서 부르주아 혁명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동맹을 지지한 이들은 당연히 연속혁명론이 아니라 2단계혁명론을 지지했지만 모든 2단계혁명론자가 이런 동맹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 노동자-농민 동맹: 현대의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체제에 어느정도 포섭됐기 마련이므로 이들과 동맹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대신 농민들과 동맹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단계론에서 2단계혁명론과 연속혁명론으로 갈린다. 낫과 망치가 교차된 ☭️ 이 상징이 바로 노동자-농민 동맹을 의미한다.

1920년대 말의 코민테른은 정치경제적 수준에 따라 사회들을 3가지로 나누어서, 각자대로의 단계들을 거쳐야한다고 주장했다.

  • 자본주의 사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한다.
  • 전자본주의 혹은 반(半)자본주의 사회: 2단계혁명을 한다.
  • 식민지 혹은 반(半)식민지 사회: 최대한 많은 피식민지인을 결합해서 민족주의 혁명을 하고,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행한다.

이런 입장에 따라서 초기의 북한 및 중국의 공산정권은 사실 기존의 토착기업가들 등도 포섭하려고 했었다.

대기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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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당연히 어떤 상황에서나 성공하는게 아니므로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에 실행해야되는지 역시 논쟁거리다.

  • 온건적 입장: 혁명이 가장 가능성 있게 될 때까지 그런 사회적 조건을 점진적으로 형성하자는 입장이다. 그람시주의에서 특히 강조한다.
  • 급진적 입장: 혁명세력이 잘 갖춰져있기만 한다면 특별히 대기할 것 없이 즉시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게바라주의가 이런 성향이다.

전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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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은 자생적으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주류였지만, 레닌이 이에 반대하면서 전위대론을 설파하자 이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 전위대 긍정론: 단순히 노동자 등이 연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전위대라는 특별조직이 혁명을 이끌어야한다는 입장이다. 당연히 레닌이 원조다.
  • 전위대 부정론: 전위대가 혁명을 주도하는 것이야말로 위태로울 수 있으며, 설사 성공하더라도 전위대가 혁명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멘셰비키 외에 룩셈부르크, 초기의 트로츠키 등이 이런 입장이었다.

이 외에 어느 계급이 혁명의 주체인지도 보다 나중에 논쟁거리가 됐다.

  • 노동자 주체론: 농민은 자본주의 사회와는 사회적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노동자가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가 돼야한다는 입장이다.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이런 입장이었다.
  • 농민 주체론: 농민도 충분히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오주의자들이 이런 입장이다.

구체적 전술에서도 이렇게 갈라지는 경향이 있다.

  • 대중봉기론: 말그대로 대중봉기가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어야한다는 입장이다. 초기 공산주의자들이 이런 입장이었다.
  • 게릴라론: 소수의 게릴라도 충분히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오주의자들이 이런 입장이다.

혁명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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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국내적으로 성공하면 그 이후에 무엇을 해야할지를 놓고 대개 다음으로 갈린다.

  • 세계혁명론: 혁명이 고립되면 점차 압살당할 수 있으니 다른 혁명들을 적극 지원해야한다.
  • 일국사회주의: 다른 혁명들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위태로우니 대외적으로는 평화공존을 하고 내치에 집중해야한다.

세계혁명론은 트로츠키주의에서 지지하고 일국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에서 지지하는 편이다. 그리고 레닌이 이런 경향들 중 어느 쪽이었는지는 정파마다 주장이 다르다.

인물별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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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쟁점별로 다루기보다는 다른 인물들 내지 정파와 어떻게 대립했는지 위주로 간추린다.

초기에 레닌은 2단계혁명론에서는 멘셰비키와 같았으나 그들과 달리 노동자-농민 동맹을 주장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전위대론을 주창했는데 이 역시 다른 이들과 상당한 대립을 이르켰다. 그리고 볼셰비키를 이끌면서 대중신문을 발행하는 등 혁명 전부터 유리한 조건을 갖추려고 20년 넘게 노력했다.

3월 혁명이 발발한 뒤 발표한 4월 테제에서는 3월 혁명은 정치적 측면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이 완수됐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그렇지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를 바로잡기 위해 3월 혁명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트로츠키주의에서는 레닌이 연속혁명론으로 전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후 11월 혁명과 곧이은 러시아 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사실상 모든 주요 공산주의 운동의 귀감이 됐다.

초기에는 레닌의 전위대론에 반대하면서 멘셰비키를 지지했었다. 그러나 1905년 혁명이 발생하자 입장이 돌변해서 노동자-자유주의자 동맹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11월 혁명이 발발하자 지지했지만, 레닌식 전위대론에는 끝까지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스탈린은 레닌이 사망한 뒤 소련의 독재자가 돼서 코민테른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사상적으로는 2단계혁명론과 일국사회주의를 평생토록 견지했다. 중국혁명 그리고 보다 나중에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는데, 후자에서는 실패했지만 중국혁명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초기에는 레닌의 전위대론에 반대하면서 멘셰비키에 가담했지만, 이미 반자유주의 성향이었기에 얼마 안 가 그 역시 탈퇴했다. 1905년 혁명에 직접 가담하면서 연속혁명론을 본격적으로 주창하기 시작했다. 1917년에 볼셰비키에 재가입하고 러시아 내전에서 승리했다. 이후에는 세계혁명론을 견지하면서 스탈린에 대립했다. 역시 중국혁명 그리고 보다 나중에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지만, 후자는 당연히 실패했고 중국혁명이 성공하는 것은 보지 못한채 암살당했다.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까지의 이탈리아 혁명운동에 직접 가담했었다. 그러나 그 운동이 진압당하고 나중에는 개인적으로 투옥당하자 왜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구에서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는지에 천착했다. 그 결과 헤게모니론을 이론화하면서 서구에서의 혁명은 보다 더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트로츠키에 부정적이었지만 스탈린의 지령을 받던 코민테른에도 비판적이었다.

초기에는 코민테른의 지시를 따랐지만 1927년 대거 탄압을 당하자 점차 코민테른과는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탈린과 동맹관계를 평생 유지했지만 전략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불화가 컸다. 즉 스탈린과 달리 마오는 농민이 혁명을 주도할 수 있고, 게릴라 전술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중국혁명을 승리로 이끌었고, 베트남 전쟁, 쿠바혁명, 짐바브웨혁명 등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게바라는 기본적으로 혁명론에서는 마오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점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비록 트로츠키에 비판적이었지만, 스탈린 등과는 달리 그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2단계혁명론보다는 연속혁명론에, 일국사회주의보다는 세계혁명론에 더 가까웠고, 게릴라 전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혁명에 있어서의 사회적 조건의 필요성을 경시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여성은 게릴라전에 대해 남성에 비해 보조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끈 뒤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직접 앙골라, 볼리비아에 참전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결국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