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그람시
|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 존나 똑똑합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호구가 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
| ☭ 공산주의는 이 문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네가 이 문서에 푹 심취해서 낫과 망치로 때려부수고 대량학살하는 공산전체주의 독재자들을 빠는 종북 빨갱이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만국의 위키니트들이여 단결하라! |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이 문서는 온갖 음해 그 자체 또는 온갖 음해에 시달린 대상에 대해 다룹니다.
여러분 이거 DAAAA 거짓말인 거 아시죠?? 허풍입니다 허풍! |
| |
|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 | |
| 생년월일 | 1891년 1월 22일 |
|---|---|
| 국적 | 이탈리아 왕국 |
| 정당 | 이탈리아 공산당 |
| 표방이념 | 좌익 공산주의, 시민사회론 |
이탈리아의 혁명가. 낙후된 지역인 사르데냐 출신으로 초기에는 사르데냐 민족주의 성향이었다가 마르크스주의로 전향했다.
파시스트 정권 때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갇혔으나 거기서 온갖 중병에 시달리면서도 최고수준으로 저술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병이 너무 심해지자 결국 저술도 그만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석방'돼서 대신 병원에 갇혔다가 거기서 죽었다.
1920년대부터 그람시는 본국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유럽의 혁명운동이 왜 실패했는지의 문제에 천착했다. 이는 원래 마르크스가 선진국이 가장 혁명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그람시가 내린 결론은 러시아 등지는 자본주의가 늦게 출현해서 그에 대한 방어체계도 미숙했지만, 서유럽 등지는 그와는 정반대여서 방어체계가 훨씬 정교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어체계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문화적 헤게모니로서, 자본가들이 각종 문화 및 여론 산업들을 동원해서 계속 자기들에 유리한 서사와 가치를 주입하려고 드는 것이다. 이에 관해 그람시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국가들을 똑같게 취급한 것을 비판하고, 서유럽과 같은 자본주의가 오래된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작정 무장혁명을 이르킬게 아니라 우선 문화적 헤게모니에부터 도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진지전'이라고 불렀다. 물론 적당한 기회가 오면 결국 무장혁명도 이르켜야한다고 여겼다.
사회주의는 무얼 하건 필연이라는 식의 숙명론에도 반대하면서, 인간은 자신이 실천하는 정도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민주의와 같은 비공산주의 좌파들과도 협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얘기여야겠지만 11계명이라고 떠돌아다니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의 말년의 저술들은 전부 파시스트의 통제 및 감시 하에 쓰인지라 은어적 용어들이 많았고, 소련과의 교류가 제한됐기 때문에 소련의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역으로 소련에 대한 제대로된 인식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애매하거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후에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민주사회주의 등 온갖 정파에 의해 이용당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