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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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통감에 따르면 환인의 손자인 [[단군왕검]]이 [[Bc 2333|B.C 2333년]]경에 세운 나라라고 하는데 이건 그냥 중국 요임금 재위기에서 25년후라고 설정한거니까 제껴라. 하지만 우리의 헬조선 교과서는 B.C2333년 썰을 아직도 밀고 있다. | 동국통감에 따르면 환인의 손자인 [[단군왕검]]이 [[Bc 2333|B.C 2333년]]경에 세운 나라라고 하는데 이건 그냥 중국 요임금 재위기에서 25년후라고 설정한거니까 제껴라. 하지만 우리의 헬조선 교과서는 B.C2333년 썰을 아직도 밀고 있다. | ||
ㄴ요즘은 안믿어서 기원전 10세기경 건국으로 몰고 있다. 애초에 BC 2333년이면 신석기였다. | |||
[[만주국]]시절 [[좆본]]과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아오한기 흥륭와, 하가점, 적봉 홍산등 [[내몽골]]의 시라무렌강유역을 대대적으로 발굴하면서 등장한 홍산문화가 고조선의 원류라던가, 고조선이 원래 요서에 있었다는 말이 뭐... 딱히 틀린말은 아니다. 확정시키기에 애로사항이 존나많아서 그렇지. | [[만주국]]시절 [[좆본]]과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아오한기 흥륭와, 하가점, 적봉 홍산등 [[내몽골]]의 시라무렌강유역을 대대적으로 발굴하면서 등장한 홍산문화가 고조선의 원류라던가, 고조선이 원래 요서에 있었다는 말이 뭐... 딱히 틀린말은 아니다. 확정시키기에 애로사항이 존나많아서 그렇지. | ||
2020년 5월 8일 (금) 22:5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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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원래는 그저그런 청동기시대 고대 부족연맹국가인데 환빠들이 몽골도 쳐먹었니 짱깨도 쳐먹었니 뭐네마네하면서 빨아제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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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수도가 평양이고 영역도 남한과는 거의 상관없다.
| 한국사의 시대구분 | ||||
|---|---|---|---|---|
| 청동기시대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 진 · 주호 · 우산 |
원삼국 시대 부여 · 옥저 · 동예 · 고구려 · 주호 · 우산· 낙랑군 마한 · 변한 · 진한 |
삼국시대 고구려 · 백제 · 신라 · 가야 · 탐라 · 우산 두막루 |
남북국시대 발해 · 신라 · 탐라 · 소고구려 · 소백제 · 보덕국
|
후삼국시대 신라 · 발해 태봉 · 후백제 (반란세력) |
| 통일왕조 시대 고려 · 조선 ·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 대한광복군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군정기 미군정 · 소련군정 |
분단시대 대한민국 · (자유조선) 북괴 (반란세력) | |
| 한국의 역사 | |||||
|---|---|---|---|---|---|
| 한국사 기록 시작 | ← | 고조선 (단군조선 ~ 위만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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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긴급소식 낙랑군 논란의 종지부가 될 중요 유적지가 2017년 9월 20일 평양에서 발견 되었다. 자세한건 더 조사 해봐야 알겠으나 기원전 3세기 고구려 벽화 고분이 평양에서 발굴 된것, 한사군이 313년까지 400년동안 한반도에 건재했다는 주장이 논파 된 것이다,
200년대에 북한에 고구려가 존재했다면 313년까지 낙랑이 존재 한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은 허구가 된다. 이는 지금까지의 가설들을 뒤집는 엄청난 발견인 것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21956664
- ㄴ 뭔 개소리야 고구려 초기 무덤 양식은 적석총인데 무슨 기원전 3세기 벽돌무덤 드립이냐. 그리고 기원후 3세기라고 나와있는데?
고조선(古朝鮮)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세운 한반도 최초의 고대 국가이다. 정식명칭은 조선이지만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부른다. 청동기를 기반으로 요동과 평안도, 황해도와 그 근방지역을 장악했다.
여기서 단군왕검에서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정치적 군장을 의미하며, 고조선이 제정일치사회임을 의미한다.
역사
기원
동국통감에 따르면 환인의 손자인 단군왕검이 B.C 2333년경에 세운 나라라고 하는데 이건 그냥 중국 요임금 재위기에서 25년후라고 설정한거니까 제껴라. 하지만 우리의 헬조선 교과서는 B.C2333년 썰을 아직도 밀고 있다.
ㄴ요즘은 안믿어서 기원전 10세기경 건국으로 몰고 있다. 애초에 BC 2333년이면 신석기였다.
만주국시절 좆본과 중공이 아오한기 흥륭와, 하가점, 적봉 홍산등 내몽골의 시라무렌강유역을 대대적으로 발굴하면서 등장한 홍산문화가 고조선의 원류라던가, 고조선이 원래 요서에 있었다는 말이 뭐... 딱히 틀린말은 아니다. 확정시키기에 애로사항이 존나많아서 그렇지.
환빠들이 고조선은 요서에 있었다면서 빨아주는 홍산문화는 시라무렌강이 사막화됬는지 가면 갈수록 김치맨같은 반농반목식 문화가 아닌 순수 유목식 문화로 변해갔고 기원전 2,000년경에 등판한 하가점 하층문화[1]때부턴 비파형동검말고도 공병식동검이라고 좆목민들이 많이쓰던 청동검이 나오고 짱깨식 삼족기, 짱깨식 제사그릇등이 발견되서 요동, 한반도의 김치맨들과는 거리가 먼 북방계문화로 변해버렸다.
이새끼들이 갖다버린 비파형동검은 기원전 9~8세기, 지금의 요령성 조양 십이대영자를 필두로 북표, 카르친좌익몽골족자치현, 금주, 부신등 대릉하 + 소릉하유역에살던 새끼들이 수입해서 현지화한다. 이새끼들의 문화를 십이대영자유형이라고 한다. 이새끼들은 비파형동검외에도 한국 청동기의 핵심중 하나인 잔무늬거울[2]을 가지고 있었다. 200년뒤 이새끼들은 요동을 냠냠쩝쩝한뒤 정가와자유형이란 지들 멀티를 요동에 뿌렸다.
우리가 잘 아는 고조선은 본진인 십이대영자문화가 짱깨랑 좆목민영향받으면서 빠르게 좆목민 + 짱깨의 혼종화되면서 탈조선당하고 남은 요동의 정가와자유형일대의 주민들이 원시부족국가를 형성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주류 학설이다.
초기 ~ 리즈시절
고조선이 처음 나오는 기록은 춘추시대 관이오가 제 환공에게 발조선(發朝鮮)에게 무늬있는 가죽을 바치라고 하면 사고 안치고 조용히 있을거예염 ㅇㅇ라고 말하면서 처음등장했다.
정가와자유형은 미송리식토기에서 손잡이만 빠진 토기도 만들고 잔무늬거울, 비파형동검 오지게 만들고 문화를 요동만주, 한반도전역에 츄라이 시켰고 지들 직할 세력권을 요동과 평안도, 황해도로 불려버린다.
누가 3세기에 왕위 부자상속이 이뤄졌다고 의외라고 서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분은 기원전 7~10세기에 요동에 완전히 알박고나서부터 300년이 지나서야 왕위부자상속을 할 수 있게되었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조선 망한지 수십년이 지난뒤에 만들어진 국가이며 이집트랑 메소포타미아는 고조선보다 훨씬더 오래전에 생겨서 짬빱의 클라스가 남달랐다는건 생각못했던것같다.
암튼 알도박고 땅도 불리고 경제력 군사력도 어느정도 길렀겠다.해서 고조선은 동시대 짱깨 강머국만 할 수 있던 칭왕을 했는데, 전국책에 "칭왕한 조선후의 자손이 점저 교만하고 포악해져..."등으로 보아 요당시에 부자상속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잘나가는 우리의 고조선은 한때 산융을 담당일진으로 둘 정도로 약체였던 연나라가 연소왕이래 강해지고 외연확장을 시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나라와 충돌하기 시작했다.
고조선과 연나라는 이래저래 서로 치고박고 싸웠지만 동호쳐먹어서 1천리나 되는 땅을 먹은 진개에게 복날 개패듯이 쳐맞으면서 요양을 비롯한 요동반도에서 알짜배기인 요하유역 평야[3]와 반도 항구들 다 털리고[4] 지금의 평안도, 황해도 요동 동남부 일부로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연나라는 만번한(滿番汗)을 고조선과의 국경으로 삼았다.
ㄴ원래 연나라 족속들의 기원은 지금의 북경이 아닌 황하 근처의 허난성 신향시 연진현(延津縣) 북동쪽에 있었다. 그래서 주문왕이 소공을 북경으로 보낼때 '北燕'에 봉했다고 나온다. 국부는 상기했듯 주문왕의 삼촌이던 소공 석이고 수도는 지금의 북경인 '계(薊)'에 두었고 계는 지금의 북경 시가지가 아니라 북경 서남쪽에 있던 방산 구였다. 처음 탄생 때부터 동이족을 침공하면서 세워진 나라다. 주나라 씹새끼들은 땅을 주면서 지들 땅이 아닌 이민족 땅을 주는 게 관례였다 ㅅㅂ ㅋㅋ.
중심지 이동설을 받아들여서 서술하면 고조선은 이때 수도를 요령에서 평양으로 옮겼다고 볼 수 있다. [5]
연나라가 망하고 진나라가 들어섰을때, 고조선은 어떻게든 진나라한테 안개길려고 굽신굽신하는 노선으로 간 것으로 보이며 내적으론 부왕이 아들 준왕에게 군주직을 세습하는 왕위부자상속이 확립되면서 중앙집권이 강화되었다.
진나라가 진승오광의 난으로 떡락가즈아 외치고 중궈가 리얼 헬중국이 되면서 중국, 특히 조나라와 연나라, 제나라의 유랑민들이 고조선과 요동에 정착했다. 이후 한나라에서 제후국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중 연나라에서 반란했다가 빤쓰런한 노관의 부하 위만이 유랑민들을 거느리고 고조선으로 왔다.
위만은 국경수비대를 자원하겠다면서 유랑민들을 수용하고 국경을 수비했지만 어떤새끼마냥 지 권력잡겠답시고 전방병력들고 평양으로 쳐들어가 준왕을 쫓아내고 지가 정권을 잡으니 이게바로 위만조선이다. [6]
멸망
| 주의! 이 글은 헬-조선의 현실을 다룹니다. 전세계의 그 어느 장소를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찾아봐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는 뜨겁게 불타오르는K-지옥불반도 헬조선만의 수우많은 자랑거리들!!!!!!! 이러한 헬조선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과 당신에게 탈조선을 권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야... |
위만이 집권한 후 철기를 도입하고, 한반도의 진(삼한)과 중국 사이에 중개 무역을 해서 이익을 쏠쏠하게 얻고 있었다....는 교과서에서 중계무역이라 가르치지, 조선열전을 보면 진번쪽 여러나라 국가들이 중화천조를 모실라고 했는데 이새끼들이 길을 막았다(真番旁眾國欲上書見天子,又擁閼不通)라고 나온다 [1]. 중개무역은 교과서에서 포장한거지 실상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길막하고 빼애액거리는 논두렁 틀딱이나 깡패들과 비슷했다고 보는게 맞다. 그냥 중개무역이었다면 당시 태사령[7]으로 있으면서 고조선 망할때까지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보고받고 <화식열전>에서 ㅅㅌㅊ의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던 사마천이 이런식으로 기록할 리가 없다. [2]
암튼 이런 고조선의 쓰레기짓으로 인해 한무제는 조선을 존나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도 말로하면 듣겠지 생각해서 섭하라는 사신을 보내 고조선을 꾸짖었으나 고조선이 좆까ㅋ 라고 돌려보내버렸다. 빈손으로 돌아가기 뭐한 섭하는 자기를 배웅해준 장수를 죽이고 튀어버리고, 빡돌은 고조선은 곧이어 섭하를 찾아내 죽여버렸다. 안 그래도 고조선을 칠 구실을 찾던 한은 이 섭하 사건을 계기로, 당시 한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무제가 육군 5만에 수군 7천을 동원해 왕검성을 쳤다. 하지만 고조선은 의외의 성과를 내며 막아냈다. 하지만 1년동안 방어하니 서로 지치기 마련. 결국 한 무제는 고조선의 관료들을 회유해 고조선의 내부체계를 무너뜨리게 만들고 그 신하들 중 한명은 당시 위만의 손자이자 왕인 우거를 죽이고 투항했다.
그러나 왕검성은 여전히 고조선의 장군 "성기"에 의해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장이라는 이름의 왕자한테 발터맞고 뒈짖하고 장과 항복파 관료들이 왕검성을 열어주면서 고조선은 멸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왕자는 당시 자사도 병신취급하고 백성들 피빨아먹어서 무쟈게 많은 돈을 불릴 수 있던 태수직을 얻게 되었다. 이걸보고 왕자가 매국노새끼네 맙네 하는데 당시 한 - 고조선 전쟁은 고조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전후 망국의 왕자로 참수 < 태수자리 얻어서 꿀빨기라는 계산아래 투항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거왕 할배인 위만은 어쨌거나 짱깨였고 짱깨 한나라한테 짱깨 위만조선이 망했다가 후세인인 우리가 민족감정 폭발시킬 이유도 딱히 없어보이는듯? 사실 저당시에도 흉노하고 싸우느라 정예병들은 흉노전선에 몰빵되있어서 죄수들 5만추려서 고조선을 공격한건데 한무제가 흉노 제끼고 정예병력 투입했으면 그냥 썰렸을 거다.
한나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킨뒤 요동과 평안도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백성도 강제 이주시키고 법도 8개에서 60개로 뻥튀기시켰다.
ㄴ솔직히 법조가 60개로 늘어났어요 끔-찍 이 지랄 떠는 거 현대 법치국가에 사는 사람이 보기엔 웃기고 자빠진 일임. 우가우가하던 구석기시대부터 사람 죽이고 약탈하는 게 인간의 습성인데 뭔 한나라 이전의 고조선은 요순시대라고 고작 8개 법조로도 나라가 태평하게 다스려지냐? 오히려 미-개했던 고조선의 법제가 한나라의 통치를 받고서 발전했다고 보는 게 낫지. 법치를 포기하지 못하면서도 법치보다 덕치를 선호하는 유교의 뒤틀린 관점 때문에 저런 헛소리가 나온 거 같음.
하여튼 씨발 죄수들한테 좆발려서 한나라한테 망하고 한사군 까지 설치가 된다.
나중에 한나라에게 뺏긴 이 영토는 부여, 백제, 고구려의 예맥족이 회복한다.
한 사군은 낙랑, 진번, 임둔, 현도에 설치되었는데 백제 고이왕이 낙랑군, 진번군을 공격하여 한강유역을 장악하고, 고구려는 태조왕 때부터 현도군을 공격하여, 미천왕 때 고조선 땅을 수복한다.
결국 우리나라 역사는 배신과 내분으로 시작되었다.
- ㄴ 단군 시절도 누구 통수쳐서 나라 세운 거냐? 호랑이?
- ㄴ 환웅도 즈그 애비(환인) 통수쳐서 내려왔나보네요. 헬조선 드립도 1절만 하자.
떡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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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선 떡밥
원래는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이라고 구분하지만 지금은 기자조선설은 학계에서 사장당했다. 즉 단군에서 시작돼 내려오다가 BCA 194년에 위만이 당시 중국의 진한 교체기 혼란을 틈타 이주한후 세력을 키워 왕위를 찬탈했다고 본다.
다만 기자조선에 관해서는 중국에서 전하는 대표적인 역사책은 복생(伏生)의 《상서대전(尙書大傳)》, 사마천의 《사기(史記)》라고 한다.
ㄴ 단군조선설과 기자조선설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단군조선설은 말그대로 단군이 BC.2333 에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설이고, 기자조선설은 중국 주나라 무왕 때 사람이였던 기자가 고조선을 건국한 것인데, 소중화사상을 통해 조선이 오랑캐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했던 조선 사림이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단군조선설이나 기자조선설이나 본질은 민족문화의 자부심을 확립하려고 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현대 우리나라 사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을 인정 안하고 위만이전에 이미 고조선에는 군장국가 형태의 국가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중국과 일본은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기자조선을 고조선의 처음이라고 본다. 물론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한민족 역사의 자주성을 인정하느냐 아니냐를 둔 국가적 자존심 때문. (중국이나 일본이 여전히 한반도를 자기네 옛 멀티로 보는 오만한 인종들인 건 알지?)
중심지 떡밥
크게 세가지 설로 나뉜다. 확실하진 않다지만 현재 요동 → 평양 중심지 이동설이 정설로 굳어졌으니 그러려니 해라.
평양중심설
고려시대부터 8.15 광복이후 50~60년대까지 한국에선 정설로 취급되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부터 시작하여 조선에서 동국통감,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안정복의 동사강목, 정약용의 아방강역고, 한치윤의 해동역사등 수많은 조선시대의 역사지리서들이 고조선의 수도를 평양으로 비정하는등 사실상 학계의 정설로 취급받았고 특히 조선후기때 기자조선을 세운 기자가 만든 주나라식 정전이 평양서남쪽[8]에서 발견되었다보니 요동중심설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은 아닥해버렸다.
일제강점기때 평양일대에서 낙랑군과 진개에게 쳐맞은뒤의 후기 고조선의 유물들이 때거지로 출토되었다는 것을 고고학적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말기 고조선의 흔적만 평양에서 찾아볼 수 있고 평양에만 있었겠냐는 썰도 있어서 대한민국쪽은 망테크탄듯?
북괴의 경우 1964년쯤 김일성이 밀어준 리지린새끼에게 털리고 숙청당한 빨갱이 고고학자 도유호가 일제때 평양일대에서 발굴된 유물에 추가해 자체적으로 평양일대 고인돌, 토광묘등을 이잡듯이 뒤져 새로운 유물들을 때거지로 내놓으면서 평양중심설을 밀어붙이고 도유호 숙청이후에도 우상화를 하던 김일성이 평양신성화 작업을 위해 이 설을 다시 채택하면서 북괴사학에선 신성불가침 정설이 되었다. 대동강문명을 세계 5대문명이라고 드립치기까지한다. 어이상실.
요동중심설
한서지리지에서 요동군 험독현[9]일대에 위만의 옛 수도가 있다고 언급한것을 시작으로 한 오래된 학설이다. 정도전부터 시작하여 세조때 권람의 응제시주, 홍여하의 동국통감제강, 이종휘의 동사등에서 청나라개새끼 우리의 옛 영토 되찾고 청나라에게 복수하자는 생각으로 일부 실학자들이 밀어붙인 설이다.
신채호, 정인보같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국뽕을 위해 채택하고 광복이후에는 윤내현같은 일부 국뽕사학자나 재야사학자(좆문가가 맞지않나?)들이 밀어붙이고 있다.
증거로 만주, 특히 요동과 한반도에서만 나오는 비파형동검, 미송리식토기, 탁자식 고인돌로 처음에는 비파형동검만 밀다가 비파형동검만으로 고조선의 문화지표를 알아 볼 수 있느냐는 비판때문인지 나중에 미송리식토기와 탁자식 고인돌이 추가된 형태.
홍산문화라고 요서에서 비파형동검이 떼거지로 나오니까 윤여동은 요서중심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연나라가 춘추시대부터 요동을 야금야금 먹기시작해서 진개가 완전히 접수한이래 연나라 유물만 나오고 요동털렸다고 고조선이 망하는건 아니잖아 그리고 고조선땅에 뒀다는 한사군 어떻게 할래할때 어버버해서 버로우타고 지금은 위에 나온대로 재야사학자나 극렬 환뽕사학자들만이 밀고있다.
요동 → 평양 중심지 이동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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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은 물론 짱깨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는 설로 처음에는 요동에 수도를 두었는데, 진개한테 털리고 평양으로 쫓겨났다는 설이다.
요동중심설은 후기 고조선의 유물이 요동에서 연나라의 침공으로 다 끊기지만 오래된 유물들은 거기에 몰빵되있다는 점, 평양중심설은 유물이 후기에 몰빵되어있지만 이후에도 평양일대가 한동안 '조선'이라 불리는등 고조선의 영향이 상당했다는 점을 적절히 절충해봤더니 문헌에서 언급하는 사실이랑 얼추 맞아떨어지고 고고학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보니 이 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같이 보기
- ↑ 내몽골 영성현 남산근에서 발견되었다고 남산근유적이라고 한다.
- ↑ 이 잔무늬거울은 정가와자유형에서도 나오긴 나오는데 한국의 잔무늬거울과 달리 번개무늬를 그린다음 그 여백에 잔무늬를 새긴 형식이다..
- ↑ 사실 기원전 4세기 전반에 심양에서 연나라 제기나 연나라 무덤이 즐비하는등 원래도 연나라가 요동평야를 야금야금 먹어들고 있었다.
- ↑ 지금의 대련지역은 윤가군지 무슨 유형인지 해서 국가소속은 연나라지만 연나라의 풍습을 거부하고 옛날식을 고수하던 원주민 유지들의 빠와도 강했다.
- ↑ 참고로 이때부터 고조선의 영역이 평안남도와 황해도일대로 고정되었는데, 요거때문에 고구려멸망직후까지 그지역을 조선지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 이때 쫓겨난 준왕은 삼한으로 내려가 그곳의 반인반신이 되었다.
- ↑ 황제가 태산에서 행하는 제사인 봉선을 담당하며 한나라의 천문, 달력, 국정문서 작성을 맡아하는 요직이었다.
- ↑ 現 북괴령 평양 평천구역일대?
- ↑ 現 요령성 안산시 태안현 신개하진 손성자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