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 주의! 이 문서의 인물은 존나 똑똑하고 셉니다. |
| 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
| 이 문서는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국위선양을 한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지사니뮤ㅠㅠㅠ |
| 이 문서의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
| 이 글은 전잘알과 관련된 글입니다. 이 글은 전쟁과 군사를 존나 잘알거나 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 다룹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 |
|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키가 매우 큽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키가 너무 커서 이 대상을 쳐다봤다간 모가지가 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
洪範圖, 1868년 10월 12일(음력 8월 27일) ~ 1943년 10월 25일
거품논란이 많던 청산리 전투와는 달리 홍범도슨상님의 봉오동 전투는 명백한 갓한민국의 참교육이 맞다.
평안북도 자성군(평양이라는 말도 있다.)출신이다.
어린시절의 고아가 되어 19세기 후반에는 호랑이 사냥꾼, 1890년대에는 종이공장 노동자, 1900년대에는 광산노동자를 하기도 하는 등.... 시대가 변할때마다 별의별 직업을 거쳐왔다.
경술국치 이전인 1895년부터 무산군, 갑산군등 이북 국경지대에서 의병활동을 했다가(을사의병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정미의병 때 재참가.) 경술국치이후인 1910년대에는 광산노동자를 그만두고 만주, 연해주로 무대를 옮겨 그곳에서 독립군활동을 했다. 이상설이 창설한 권업회에도 참여했다.
1920년에 만주에서 대한독립군을 이끌면서 좆본군을 참교육시켰다. 이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
그런데 1927년 헬쏘오련 공산당에 입당했다가 러시아인의 인종차별을 겪고 고통을 받았고 이어서 좆탈린씹새끼의 강제이주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고 결국 거기서 죽었다.
그로부터 쭉 카자흐스탄에 유해가 있었으나 2020년 드디어 봉환이 결정됐다. 북괴는 홍범도 장군이 평양출신이라는 이유로 반발했으나(그럴만도 한게 이 사람은 이북~만주에서만 활동하던 사람이다.) 이 새끼들이 가져갔으면 김돼지 우상화에나 써먹었을 것이다.
2021년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유해가 고국으로 귀환했으며 2일의 국민추모기간 후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5년 묘소 조사 이후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유해 송환을 추진했지만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에 현지인 분들의 반대가 있었고, 북괴 새끼들의 견제로 인해 송환되지 못했다가 후손인 김알라 씨의 의사로 한국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다만 이북출신이고 더군다나 소련 공산당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라 그런지 남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은 좀 좋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는 이북사람은 먼지만큼도 관심없다는 반응이다. 사실 소련 공산당에 입당해서 그렇지 만약 소련 공산당에 입당안했으면 아마 국부 취급받았을지도 모른다. 당장 런승만도 원래 이북~만주에서만 활동하던 사람이니... 몇몇 극우파들은 홍범도? 그 빨갱이! 하고 색깔론으로 까기도 한다.
소련 공산당에서 활동을 했어도 스탈린 씨발새끼의 큰 피해자이다. 스탈린이 김일성 좆병신새끼한테 북한을 주고 홍범도 세력을 숙청하고 강제 이주 시킨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이빨 나간 틀니새끼가 무슨 전쟁을 하냐고 쏘오련 군인이 놀리자 1루블을 하늘위로 던지고 권총으로 명중시켜 아가리 싸물게 했다는 노익장 레전드가 전해진다.
일베 틀니들은 홍범도가 김좌진을 암살했다는 쓸때없는 음모론을 싸지르고 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딴 거 없고 그냥 빨갱이새끼들한테 무장해제 당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