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김구

K-위키
이 문서는 비로그인 편집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로그인 위키러는 문서의 편집이 가능하며, 편집 제한 조치에 대한 의견은 K-위키:논의 항목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에 삽입된 이 틀을 삭제하거나 작성금지, 작성제한 등 문서 작성에 제재를 가하는 틀을 사용하는 이용자는 K-위키 이용이 무기한 중지됩니다.

디시위키는 사회정서상 용납할 수 없는 고인드립을 지양합니다. 또한, 고인드립으로 인한 법적 책임은 작성자 본인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 문서는 고인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9년 6월 26일(1949-06-26)부로 고인이 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역사 속의 인물을 다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역사 속의 네임드 급 인물들입니다. 이 틀은 고인이 된 대상에게 사용하십시오.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키가 매우 큽니다.
이 문서의 대상은 키가 너무 커서 이 대상을 쳐다봤다간 모가지가 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주의! 이 문서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문서입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 공존합니다.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는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국위선양을 한 애국지사를 다룹니다.
지사니뮤ㅠㅠㅠ
💣경고. 이 문서는 폭발물에 대해 다루거나 니 얼굴 그 자체를 다룹니다!💣
이 문서는 폭발 위험이 있는 물체나 폭발무기를 다룹니다. 불법으로 폭발물을 사용 및 제조 행위는 형법 제6조에 의거해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갓-삐!
이 문서는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이 문서는 지구, 혹은 특정 집단을 위기 속에서 구출한 영웅에 대해 다룹니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주의! 이 인물은(는) 존나 똑똑하면서 존나 셉니다.
이 문서는 천재적인 두뇌와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동시에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을 상대로는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는) 존나 셉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처맞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이 인물에개 개겨서 개같이 처맞아도 디시위키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주의. 수정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문서입니다.
이 문서는 수정전쟁이 자주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벌집핏자가 된 대상 또는 벌집핏자와 관련된 대상에 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대국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인한 총알세례를 듬뿍 받은 대상 또는 정의구현을 실현한 대상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으따 바람이 구멍을 통해 솔솔 들어오구마잉~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개요

키: 178~182 cm , AB형

자는 연상(蓮上), 호는 백범(白凡) 「백범일지」라는 자서전을 집필했다.

여기서 실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

1876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고 1919년에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이 되었다. 해방 이후 임시정부 법통 운동, 반탁 운동 등을 하다가 1949년에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 당했다.

송진우장덕수의 암살범으로 지목됐다. 브루스 커밍스송진우의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고, 리처드 로빈슨도 송진우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다. 1946년 1월 초, 반탁 운동 관련 미군정에 소환됐다가 송진우 암살 사건으로 다시 미군정에 소환된다.

한민당과 한독당의 합당, 우익 단체 총결집을 놓고 반대하던 장덕수가 갑자기 암살됐는데 장택상은 김구를 암살 배후로 지목하여 체포하려고 했고[1], 허정은 완곡하게 말했지만 김구를 의심해서, 김구 대신 조소앙을 찾아가 항의하였다.[2]

참고로 뉴라이트 진영 언론인 뉴데일리에서도 백범 김구 선생으로 높여 부른다고 한다.

업적

임정이 수립되자 닥터 리가 "머통령 아니면 나 임정에 참가 안 해 ㅇㅇ"라고 말했는데(사실 이미 한성임시정부에서 집정관 총재 역임) 이 양반은 임정 문지기(쉽게 말해 수위)라도 시켜달라고 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는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에 참여하여 경무국장을 맡았다. 경무국장 재임 시기에 임정의 독립운동을 방해하려는 일본 간첩을 척결했다.

참고로 경무국장은 오늘날 검찰총장+법원장임에 해당한다. 임시정부 특성상 훈방 아님 사형이었다고.

임정은 탄생과 함께 이승만 탄핵을 시작으로 결국 완전히 분열되어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그 개점 휴업 상태의 임정을 끌어안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홀로 하드캐리했다. 이후 임정의 국무령, 주석을 지낸다. 참고로 임정은 창설부터 해체까지 내각제였기 때문에 김구는 명목상 국가원수에 해당하지만 임정 특성상 총선을 치러서 의회를 구성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내각 수반까지 겸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국공합작 영향(+중국 총통제 영향)으로 시작된 민족 유일당 운동 덕분에 임정 후반기엔 김구가 당, 의회, 내각 전체의 수장을 혼자 다 차지하게 되었다.

ㄴ 솔직히 자금원을 이승만이 혼자 쥐고있었고 백범일지에도 나오지만 임정 사무실 임대료 낼돈도 없을정도로 입금도 안해줬다. 이봉창, 윤봉길 의거시에도 의거자금은 이승만에게서 나온게 아니다. 애초에 외교독립론 주장하던 이승만이 이걸 밀어줄리도 없는데다 애초에 임정 분열의 가장 큰 원인은 이승만이 구미위원회 자금 독점, 안창호의 국민회까지 테러하여 자금탈취하는 집단이였다. 하지만 웃기게도 이승만과 호형호제하던 김구는 의거자금도 안창호에게 받았다. 여담으로 안창호에게 의거자금을 건네준 옥관김은 김구에게 암살당했다. 요약하자면 활동자금까지 다른 독립운동가한테 받아쓰는 임시정부가 이승만의 친위세력이나 마찬가지 세력인 상황이라 나머지 세력이 다 나갔다는 것이다.

한인애국단을 창설해서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의 위인 여러 명을 모집했다. 그러나 이봉창은 별로 신뢰하지 않았는지 이봉창이 체포되어 심문한 진술서에는 이봉창은 그의 이름도 모르고, 나중에 체포된 뒤에야 자신을 보낸 사람이 김구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했다.

참고로 효창공원 삼열사 묘의 구파 백정기는 아나키즘 단체 쪽으로, 김구의 사람이 아니다.

덕분에 중국 장개석이 한국 독립을 지원해주게 되고 이로 인해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 독립이 보장되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으로 문화가 융성한 문화 국가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견해일 뿐, 그는 김립의 암살을 사주하고서는 누명을 씌웠고 이걸 「백범일지」에 당당하게 적어놨다.

안중근의 아들 안춘생을 암살해 달라는 사주를 하고 이것도 「백범일지」에 적어놓았다. 김립 암살과 안춘생 암살은 빼도박도 못하는 실책이다.

자신의 측근인 안공근중일전쟁 때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만 먼저 모시고 나오고 그다음 자기 가족을 데리고 왔는데, 형수인 안중근 부인을 데리러 가기 전에 상하이가 일본군에 함락됐다. 자기 가족보다도 김구의 어머니를 먼저 피신시켰는데도 형수를 못 데려왔다고 심하게 질책하고 내보냈다.

「백범일지」에도 안공근에 대한 질책만 써놓았지, 당시 안공근 본인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내용은 싹 빼버렸다.

안공근은 김구 조직에서 이탈해서 별도로 장개석과 교섭을 시도. 의사 류진동의 집을 출입하다가 갑자기 실종됐는데, 상하이에서는 마적 암살설, 스파이 암살설 외에도 김구의 측근인 모 독립운동가 짓이라는 설도 있다. 이것은 후에 누군가 오영섭이라는 역사학자에게도 진술.

김구의 오점

※주의 이 문서는 왼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자극적인 내용과 특정 성향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은 디시위키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민간인 살해

대마도 출신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 살해. 다른 건 어떻게든 변론할 수 있어도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민간인 살해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멀쩡한 상인을 단순히 옆구리에 칼 찼다는 이유로 돌로 머리를 내려치고 칼을 뺏어서 베어 살해했다.

어떤 놈들은 일본인 상인이 수탈하려고 조선에 들어왔으니 때려죽여도 괜찮다고 하는데 실제로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장사하러 온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때려 죽인 건 엿같은 짓이다. 게다가 김구는 장사하러 온 상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죽였다.

쉴드 치는 건 아닌데 애초에 그땐 우리나라에서 반일감정이 조오온나 심했다. 민비 살해 사건으로 일본인이 그냥 돌아다녀도 맞아죽을 판인데 칼도 차고 수상한 짓을 했다? 의혹을 사기 충분했음. 물론 죽인 건 좀 그렇긴 하지만 그 시대 때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보복이 여럿 있었고, 이에 대한 처벌이 약했던 걸 보면 당시엔 그게 애국이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봐야 할 듯. 맹꽁이 서당에서도 미화됐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암살 사주

사실 김구의 암살대상은 자기와 척을 진건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사회주의고 아나키스트고 우익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승만만 해도 척진뒤로 암살위협에 시달렸다고 하니까

우익과 좌익 간 사이가 벌어진 배경

일단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우익진영(민족주의)과 좌익진영(공산, 사회, 무정부)간 사이가 존나게 나빴단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고려 공산당은 막 창당되었을 때부터 노령(현재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상해, 두 파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사실상 내전을 벌였다. 뭐, 여기까지도 좋았다. 아래에서 보이듯 독립운동진영끼리도 서로 통수 치고 잡아족치는 것은 사람 사는 데에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까. 문제는 이들이 외세인 소련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이것이 민족주의자들의 비위를 제대로 거스른 거였고,

저 미친놈들이 지들 밥그릇 싸움을 하는데 또 다른 외세인 소련을 끌어들인다고 인식하면서 좆같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구한말 민씨 세도외척 밥그릇을 지키고자 임오군란 때 청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포를 탄압하고 자주권을 들어다가 바친 민비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는 새끼들이란 인식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북부의 모 사이비교주 수령은 한국전을 싸지르고 수습이 불가능해지자 소련의 한 주(크라이)나 자치 공화국으로 들어가다 바치는 것을 고려했다고 하니 아주 잘못된 생각도 아니었다. 물론 사이비 교주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지는 차차하더라도.

애초에 민족의 독립을 해야 하는데 저 새끼들은 너무 코민테른(크렘린)에 순종적이라고 까는 것도, 또한 같은 우파이면서도 독립 청원서로 외교론자들 극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사건의 배경

하여간 쏘련 성립 후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출하고자 제국주의 국가=자본주의 국가이므로 이들을 타도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연장선으로서 각 약소 민족들의 독립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코민테른에서 천명한다.(5월 테제)

이에 따라 각국의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에 심취하고 각지에서 공산당이 설립되었다. 그러다 터진 게 위의 자유시 참변이다.

하여간 소련 측은 조선의 독립운동 진영에도 지원금을 주었다. 이 지원금을 상해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김립으로, 그는 이동휘 휘하 고려공산당원이었다. 이때 받은 돈이 60만 루블인데, 거금이라서 한 번에 옮기긴 거시기 해져서 일단 40만, 20만으로 나눠서 상해로 가져가기로 했고 김립은 이후 좌익계 운동가들과 분배해서 사용하기로 합의한다. 즉 이 돈은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이 좌익계 독립운동가들(고려공산당원)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일환으로 독립운동을 하라고 지원금으로 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쓰는 것은 합법이었고 이 점을 들어서 안창호마저 아래의 사건을 깔 정도였다.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김구는 저 새끼들이 '정당한' 상해 임정으로 가야 했을 임정의 공금을 횡령해 사적으로 호의호식 하는데 썼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결국 같은 독립운동가인 김립을 공금 횡령범으로 몰아 암살을 지시하였고 그렇게 김립은 왜경이 아니라 같은 독립운동가 자기 동포손에 상해 한복판에서 죽었다. 물론 임정 내 우익 측은 아몰랑 빼애액!으로 일관된 것일 뿐. 까놓고 말해서 이때 돈 나눠줄 때 받아간 사람들 모아다가 계산만 했어도 될 일이다.

다시 말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을 죽이고, 이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즉 좆같았는데 잘됐다며 처치하고 핑계를 댄 것이다.

근데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 게, 김구는 분명 상하이파 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간의 싸움으로 벌어진 스보보드니 참변(자유시 참변) 같은 것을 목격했을 거고, 이승만과 이동휘의 대립으로 인해서 임시정부가 산산조각 나는 것도 봐왔기에 공산주의자는 죽어 마땅한 매국노 집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 죽인 게 잘할 건 아니지만.

당시 김구는 임정 내 법무장관 겸 치안총감인가, 그런 직위에 있었다고 하는데 저 당시 임정은 영토가 한 뼘도 없어서 감옥도 없었다. 즉 임정에게 죄를 짓게 되면 무죄=석방, 유죄=사형 둘 중 하나였다고 한다. ㄷㄷㄷ 그리고 임정의 범죄자들을 처분하는 임무와 권한은 저 당시 김구가 맡고 있었다는 거...

해방 후 백색테러 의혹 및 극우적 행보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세 명 전부 김구와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북괴의 먹사 + 관료인 강량욱[3]의 집에 폭탄을 던져 주변 사람들까지 깡그리 죽였다. 강량욱은 몰라도 옆의 민간인들을 죽인 건 테러다.

위정척사파 유생 출신이어서 조선시대 양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좌파의 평등 사상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외국이 하는 말이라면 덮어놓고 무시했다.

남로당원의 박갑동은 비서가 김구의 옷을 다 입혀주는 것을 보고 마치 조선의 왕과도 같다고 말했다.

신탁통치 논란 초기엔 반탁파였지만 이후 호형호제 하던 사이인 이승만과의 관계 고려와 협력을 위해 이승만의 신탁 노선에 동의하는 대신, 자기를 중심으로 우익 세력의 결집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협력했다가 1947년 12월 장덕수 암살 사건이 터져서 이승만과 관계가 나빠지자 다시 반탁파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천조국에서도 김구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미 군정은 김구를 무자비하고 파렴지한 기회주의자라고 평가했다.

ㄴ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게, 일단 천조국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구성한 인원 중 하나인 김구를 비난해야 자기 나라를 더 잘 믿기 때문에 한 말일 수도 있다. 애초에 천조국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남한에 군정청을 만든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ㄴㄴ 괜히 이승만, 김구가 극단적이라고 김규식, 여운형 회유해서 좌우합작위원회를 만든게 아니다. 김구도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친일파나 정치깡패들을 자기세력으로 많이 흡수했는데 얘네들이 충성심 보여준다고 좀더 막나간점도 미군정입장에선 거슬렸던것도 있고

근데 이건 의혹은 제기되고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없다. 당장 송진우는 임정 봉대를 가장 크게 옹호했고, 임정에 900만 원 상당의 정치자금까지 대준 사람이다. 김구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죽일 수 있냐?"라고 물은 바 있어서 송진우 김구 암살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편인데 영향력도 약한 송진우를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ㄴ 김구는 이봉창, 윤봉길의거의 자금을 안창호한테 받았고 안창호는 옥관빈에게 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옥관빈은 김구한테 죽었다. 한번한거 두번못할게 뭐냐?, 더군다나 적어도 저중에서 여운형운 백범일지에서도 비판하고 있다.

여운형 암살도 사실 미군정에선 박헌영 계열의 극좌 세력에서 암살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애초에 백의사 자체도 김구보다 신익희 편에 더 가까웠다. 임정 시절 신익희가 만든 정치 공작대와 백의사가 늘 함께 했다는 말도 있으니까. 김구와 이승만은 1947년 초 이후로 사실상 헤어졌기 때문에 백의사를 김구가 이끌고 백색테러를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초에 백의사 배후에 경찰도 있었고.

송진우 암살

1945년 12월 27일 카이로에서 한반도 분할 신탁통치 의견이 나왔다.

다들 반탁을 하다가 소련에서 찬탁으로 돌아서자 박헌영 등은 찬탁을 주장했다. 근데 그전에 동아일보가 박헌영이 찬탁이라고 오보를 했다.

신탁통치에 김구는 결사 반대했고 송진우는 미국과 소련이 힘으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 수용하고 3~5년 정도 기다리자고 말했다. 신탁통치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안재홍이나 김규식도 역적으로 지목됐다.

45년 12월 29일의 경교장 회의에서 송진우는 신탁통치가 우리 뜻으로 거부할 수 없는 힘이라고 말했다가 30일 오전 6시반 원서동 집에 들이닥친 한현우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한현우는 끝내 자신을 사주한 사람 입을 열지 않고 투옥됐다.

브루스 커밍스는 문적 몇 개를 조사한 뒤 한현우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4]

장택상송진우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고[5] 조병옥도 김구가 송진우 암살범이라고 지목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는 중도주의자인 송진우를 김구가 암살한 사실과 이유를 안다면서 반탁 문제를 언급했다.[6]

결국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 때문에 46년 1월 1일 소환되어 중단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같은 날 또 불려가서 송진우 암살 문제로 경고를 받았다.

여담으로 한현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줬기 때문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7]

장덕수 암살

송진우는 신탁통치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말했다가 찬탁으로 몰려 갑자기 암살 당한 뒤 한민당을 떠맡게 됐다. 그는 미소공위 적극 참가와 김구 중심의 보수 정당 단일화를 반대, 소극적인 김성수에 대해 합당은 한민당을 통째로 임정에 갖다 바치는 거라고 반대한다. 이 일로 김구와 만난 뒤 고성이 여러 번 오고 갔다.

1947년 12월 8일 집에 있던 중 박광옥, 초등교사 배희범 등 한국독립당원 5명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장덕수가 암살됐다. 김구는 이승만에게 가서 자신이 암살한 게 아니니까 미군정에 소환되는 일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이승만은 거절했다.

송진우 암살 직후, 반탁건으로 미군정사령부에 끌려가서 경고를 먹었는데 송진우 건으로 또 경고를 받고[8] 그 다음에는 여운형 암살의 유력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여운형은 당내 라이벌인 박헌영도 유력용의자로 의심되기도 한다.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이 터지고 현장에서 잡힌 한독당 당원 외에 한독당 간부인 조상항, 김석황 등이 줄줄이 끌려가면서 빼도박도 못하고 김구도 미군정 재판정에 출석. 다만 최대한 예우해서 증인 이라는 명분으로 심문을 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이승만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장덕수 암살의 이유 중에는 장덕수가 일제말 기고문을 날린 것, 그 전에는 공산당 좌파쪽 이론가였다는 게 그 이유다.

조소앙도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다.[9] 김구가 상하이에 있을 때 한인애국단 이봉창 윤봉길 등에게 줄 폭탄을 구해준 인물이 김홍일과 함께 조소앙이긴 했다.

허정은 김구에게는 차마 못가고 조소앙한테 가서 장덕수 암살 사건을 따지고 책임 추궁을 했다.[10]

친일 인사 등용

이승만과 마찬가지 케이스다. 본인은 독립운동가였고 친일 행위를 한 바가 없지만, 해방 후 친일세력과 가깝게 지내며 이들의 도움을 여러모로 받았다.

대표적으로 백범일지를 윤문한 소설가 이광수가 있다. 그리고 김구의 거처 경교장을 제공한 최창학, 한국독립당과 김구의 자금원이였던 방응모 등이 있다. 이광수는 다들 잘 알다시피 친일파로 변절한 소설가고,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와 결탁하여 광산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친일 자본가였고, 방응모는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일보의 당시 사장이다.

근데 애초에 김구는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다. 잘잘못은 잘잘못 그대로 보면 되는 거지 굳이 이미지 자체를 깔아뭉갤 필요는 없다.

무차별적으로 빨리던 이유

이렇게 논란이 많은 인물임에도 최근까지도 김구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빨갱이 프레임에 버금가는 친일파 프레임에 싸잡혀서 온갖 비난을 들었다. 요즘도 사실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 이유는 김구를 실증적으로 재평가해서 이익을 볼 정치 진영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김원봉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반공 프레임 때문에 묻혀있다가 진보 세력에 의해 공산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재조명되었고, 광해군 역시 미국에 극히 의존했던 과거 한국 외교를 비판하는 좌파들이 중립외교를 많이 띄워준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어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신사임당은 여성주의 학자에 의해 전형적 현모양처였다는 오해에서 벗어났으며, 현대사의 수많은 인물 역시 정치적 이해관계로 수많은 재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데 김구는 그럴 기회가 여태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역사적으로 전체주의와 민족사회주의 파시즘을 기반 중 하나로 삼아서 발전해왔다. 이들이 보기에 아는 게 민족주의밖에 없었던 김구는 괜찮은 사람이었고, 해방 후 좌파(소련을 따라 민족의 철폐를 주장한 경우가 많은)를 암살하고 다닌 것은 무시하고 '진정한 우파'라고 빨아주면서 역사적 판단으로 견제하고 재평가할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파에서도 김구가 런승만과 대립각을 세웠더라도, 런승만이 너무나 병신짓을 했기 때문에 일부 머가리 없는 사람들 외에는 김구를 여러 각도로 평가하지 못했다. 더구나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무고한 일본 상인을 별 증거도 없이 죽여도 이 일의 언급을 금기시하고 심지어 그 상인을 진짜 민비 암살범으로 주작하는 일도 있어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한편 일부 몇몇 분들은 누가 경제성장을 했든 아니든, 어느 개인이 피해를 보았고 살해까지 당했다면 그 과는 공에 의해서 씻을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김구의 과에 대해 한 마디만 꺼내면 친일파에 반민족주의자로 만드는 분들도 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일부다.

언젠가 권위주의, 민족을 내세운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서 다원사회, 탈민족 사회에 접어들어 강경 민족주의자 김구에 대해서도 여러 시각을 내세워볼 수 있게 변하고 있기를 바란다. 이 문서도 그나마 국까 성향도 있는 디시위키이기에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문서가 된 것이다.

반론

※주의 이 문서는 오른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자극적인 내용과 특정 성향의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은 디시위키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김구 선생께서 대통이 되셨으면 친일파 청산하고 임정 세력 + 한민당이 합체해서 집권하고 외교부 장관에 이승만을 임명했을 거다. 부패한 자유당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 침공의 빌미도 없어서 전쟁도 안 일나고 경제개발에 바로 착수했을 거다. 적어도 확실한 건 이승만보단 잘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ㄴ 사실 이게 가장 안일한 생각 중 하나다. 이승만이 존나 못했으니까 김구가 낫다는 거... 역사에 If는 없으니 뭐

ㄴㄴ 지 뇌내망상을 반론이라고 써놨네. 김구가 무슨 정책을 폈을지 같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반론이라고?

ㄴ 김구 같은 우익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주의를 존나 싫어했는데 사회주의가 제국주의에 대한 반발로 파생된 점도 있어서 김구와 친일파가 죽이 잘 맞았을 거다 ㅋㅋㅋ 인텔리들이 다 친일파인데 숙청하면 그것도 문제지, 당장 백선엽도 친일파임.

ㄴ 수틀리면 죽이던 김구가 통합하고 가까울 수가 있냐?

ㄴ 병신이냐ㅋㅋ 반론이라고 쓴 게 이 꼬라지ㅋㅋ 지능 견적이 대충 나오네

반론에 대한 재반론

주의! 이 문서에선 지금 병림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는 병신들이 승리한 병신이 되기 위해 병신 같은 병림픽을 벌이고 있습니다.
팝콘을 먹으며 이 병신들의 지랄을 감상하다 승리한 병신이 나왔을 때 이렇게 말해 주세요.
"축하한다, 병신아."

지랄하네. 김일성이 왜 갑자기 북한에서 신급으로 추앙 받게 된 줄 아냐? 바로 김구와 단독으로 대면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북한 대표, 김구는 남한 대표로 나와서 1대1 대면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과 김구를 동급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 김구다. 그리고 김구는 애초에 남한 단독 정부에 대통령으로 나올 생각도 없었고 한민당이야말로 친일파 지주들 출신인데? ㅋㅋㅋㅋ 김구가 살던 경교장 그거, 김구한테 준 놈이 1급 친일 재벌인 건 안 비밀.

김구가 대통령 됐으면 뭐 전쟁 날 일은 없었겠지. 왜냐하면 김구는 이념 따위에 관심이 없었기에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일단 한민족이면 장땡이라고 생각했으니까 ㅋㅋㅋㅋ 공산 통일이 되어도 한민족이면 그저 좋다고 했을 놈이 김구다 븅신아. 그리고 정작 진짜 일제부역자 새끼들은 반탁 운동 때 애국 열사로 신분세탁 하면서 세력을 키웠는데 김구는 그때 으이! 공산주의는 역시 악마 새끼들이여! 이승만 선생! 합체합시다! 하면서 반탁 운동부터 먼저 하느라고 일제 부역자 새끼들이 살 구멍을 다 마련해줬다. 그래놓고 나중에 진짜 나라 갈리게 생겼으니 갑자기 좌우가 상관 없다고 말하면서 태세를 전환한다. 반공한다고 일제부역자 새끼들을 날려버릴 정당성을 가진 주도자가 스스로 기회를 걷어찬 마당에 김구가 지도자가 됐으면 일제부역자 머리통을 밀어버렸을 거라고 말하는 건 김일성이 적화통일 포기했을 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싱먼 리 급 반공 인사였는데 뭐? 북한이 침공을 안 해? ㅋㅋㅋㅋㅋㅋ

ㄴ 김구가 반공이었다는 근거 좆도 없다. 어디서 역센징 새끼가 역사 왜곡질이냐? 이 새끼 역사 어디서 배움? 「백범일지」는 읽어봤냐?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4/05/001065000200405101843248.html 응 아니야. 한괴뢰에서 썼는데 한괴뢰도 역센징이니? 나의 소원 자체가 「백범일지」 맨 마지막에 붙인 건데 너야 말로 읽어봤니?

ㄴ 와 이 새끼, 한괴뢰에서 나온 기사 하나 들고 와서 김구가 반공주의자였다고 하네 ㅋㅋ 그리고 니가 언제 나의 소원 얘기를 꺼냈냐? 응 아니야? 급식충 인증하냐?

ㄴ 저 글 쓴 놈은 역센징일 수도 있는데 김구가 반공주의자인 건 맞음... 김구 자서전 보면 공산주의자 까는 내용도 있고 김립 암살에 기여하기도 했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암살도 하고 해방 후에 백색테러 단체 백의사에 가담도 했는데 이 정도면 반공주의자 맞지. 아니냐?

ㄴ 김구 반공주의자 맞다. 공산당 활동하는 사람은 친일파와 같이 기회주의자, 잠재적 매국노로 보았던 사람이다.

ㄴ 그나마 온건 좌파였던 여운형도 「백범일지」에서 까던 김구가 반공이 아니면 뭐냐

ㄴ 김구 보고 반공주의자라고 하고, 한괴뢰 링크 달았다고 역센징 딱지 붙여지니까 기분이 기괴하다.

ㄴ ㅋㅋㅋㅋㅋㅋ우파 3영수 김구가 그럼 용공주의자겠냐? 니들 급식이지?

ㄴ 저런 부류의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기회주의자 or 심각한 수준으로 선동 당한 빡대가리

쿠데타 기도

장덕수 암살 사건으로 재판정에 섰을 때 쉴드 쳐주지 않았다고 해서 이승만의 단정 수립에 반대했다. 처음엔 죽기 살기로 이승만 박사께 충성합시다, 형님과 나는 노선이 같다 등의 말을 했다.

미군정의 기록에는 김구가 경무대를 대상으로 쿠데타를 시도하려 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리처드 로빈슨은 김구의 쿠데타 기도를 인용했는데, 김구 암살 직후 한국 정부의 모 고위 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놓았다. 미군정 당시부터 한국에 취재 기자로 온 리처드 로빈슨이 이 내용을 입수했다.

그밖에도 실제 쿠데타를 기도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여순 사건 때에도 이승만 정부를 뒤엎으려고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여순 사건을 계기로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고 이범석윤치영에게 공격당하기도 했다. 이범석과 윤치영은 수시로 나와서 이번 군인 반란에 극우 인사가 개입됐다고 계속 언급했고 빡친 김구가 직접 이범석 윤치영의 주장을 반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쿠데타는 김구가 아닌 아들 김신이 실현하게 된다. 김구의 차남 김신은 5.16 쿠데타에 참여해서 박정희 원조 가카를 권좌에 앉히는 일등공신 중 한 명이 된다! 그 대가로 70년대에는 유신정우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

김구는 민족주의와 유교주의가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우익으로 분류되었다. 실제로 분단이 기정사실화 되어서 북으로 회담 하러 간 일도 있었지만 광복 직후에는 통일을 원하지만 빨갱이들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전형적인 우익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실제로 독립운동 할 때도 공산주의자를 존나 싫어했다. 공산주의자 김립 암살도 했고...)

오히려 이승만 계열이 온건 우익이었고 김구가 강경 우익이었다.

다만 이승만 같은 우익들과의 차이점은, 이승만은 친미 성향이 강했다면 김구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좌익들에게 극우라고 까이기도 하였다. (여운형 암살에 기여했다는 루머도 있었을 정도로) 근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오히려 민족주의로 똘똘 무장한 한국식 좌익들에게 쪽쪽 빨리고, 친일파 후예들이 점령한 한국식 우익들에게는 까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하였다.

평생을 강경한 반공우익 스탠스로 살아오며 극렬한 무장 투쟁을 최선으로 삼아서 오히려 해방정국 때는 좌파 세력에게 각종 극우 백색테러의 배후로 강하게 의심받았던 김구가, 말년에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일성이 만나러 평양 한번 갔다가 후대에 와서는 물러터진 중도 세력 이미지가 쓰인 것은 존나게 웃기는 일이다. 당장 이 문서 내에서도 일부 엑윽보수 새끼들은 김구를 좌파로 착각하고 있다. 근데 임시정부 주석으로 재임하던 시기에는 좌우 합작도 많이 했다. 오죽하면 연안 일대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에서 반파쇼 대회를 열었을 때 손문, 장개석, 모택동과 함께 김구의 초상화를 내걸었을까. 여튼 그 정도로 그때 독립운동 진영에선 명망이 있는 통합 지도자였다. 해방 정국에서 정적 암살이나 대립은 민족주의 성향과 지독할 정도의 애국심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부 탈민족주의 성향의 좌익은, 김구를 박정희가 띄어준 파시스트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근데 김구 장례식 당시에 200만 명이 넘게 추모를 했다는 사실을 보면 이건 그냥 개소리다. 하여튼 좌우 구분도 참 헬조선스럽다. 민족주의는 원래 선진국에선 우파 이념이다.

참고로 경교장에 가면 안두희에게 총 맞은 직후 옷이랑 라이프지에서 김구 사망 당시 내용이 전시 되어있는데 올드 어쌔신이라는 표현을 했다.

그런데 운동권 출신의 민족주의 좌파들이 이승만 깎아내리기를 하는 도중에 이승만과 갈등이 있었던 김구를 빠는 웃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좌파들이 김구 정신 운운한다느니 '김구 선생님이 현대에 온다면 너네 엑윽보수들을 규탄했을 텐데...' 식의 감성팔이에 어느 순간부터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정작 김구가 현대에 왔다면 이런 감성팔이 좌파들부터 규탄했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여담

백범일지에 실린 내용으로는 이완용을 죽이려던 이재명 의사에게 권총과 칼을 빼앗아서 이완용을 살리는데 기여를 했다.

본인은 사람을 그렇게 죽이고 다녔으면서 남이 죽인다는건 맘에 안들었나보다.

ㄴ 이건 몰라서 뺏은거고 나중에 알고나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한다.

총살 당했을때 입은 옷의 피로 혈액형이 알려졌다.

AB형으로 김일성과 같은 혈액형이다.

소원 실현

김구와 여운형 선생님마저 해내지 못한 대통합을 최순실이 해냈다!

그의 후손들

김구의 아들 김신이 공군참모총장이었고 그 이후 김구의 후손들은 자손 대대로 오직 공군 장교로만 군복무를 한다.

김구 추가 1승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baseball_new7&no=9034059

마지막에 짱깨BJ 짤이 김구다 시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보기

각주

  1. 장택상 자서전, 대한민국 건국과 나
  2. 허정, 허정회고록:내일을 위한 증언 (샘터사, 1979)
  3. 혹부리우스 애미인 강반석의 먼 친척이다.
  4. 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87페이지
  5. [1]
  6. 리처드 로빈슨, 미국의 배반:미군정과 남조선 (정미옥 역, 과학과 사상, 1988) 77페이지
  7.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22200209222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2-22&officeId=00020&pageNo=22&printNo=22093&publishType=00020
  8. (김구, 도진순 엮고 보탬, 돌베개, 2007.11) 67페이지
  9. 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2) 592페이지
  10. 허정 회고록

둘러보기

틀:작성가능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