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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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수백만 죽인 전범 새끼를 폭살하려 한 게 왜 사형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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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과거 한정
ㄴ 놀라지 말자 과거에는 친일 성향이었다. |
| 이봉창
Bongchang "The Hirohito Slayer" Lee 윤봉길 의사의 선배. | |
| 인물 정보 | |
| 생년 월일 | 1900년 8월 10일 |
| 출생지 | 대한제국 한성부 용산방[1] |
| 순국일 | 1932년 10월 10일 |
| 사망지 | 좆본 이치가야 형무소
서북골짜기 |
| 국적 | 갓한민국 |
| 직업 | 독립운동가, 철도원, 쉐프 |
| 가족 | 아버지 이진규 친형 이범태 |
| 활동분야 | 독립운동, 교육, 요리 |
| 업적 | 인간쓰레기 히로히토 개씨발새끼에게 폭탄던짐 |
봉창 두드리는 소리하지 마라 좀!
위 문구에서 보듯 매일 고인드립을 당하시고 있는 분이다.
로얄 프라이를 만들려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조명하, 윤봉길, 안중근에 비해서 조명을 덜 받았다
이 분이 성공했다면 히로히토 이 씨발개새끼를 통구이를 조리 시킬수 있었을텐데...안타깝다
ㄴ실패는 했지만 사실상 이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윤봉길 의사에게 동기부여가 됐고, 상해 사변의 원인도 제공했으니 장기적으로 일제의 패망의 도화선에 불붙인 거 아님?
ㄴ 실패는 했지만 일본에 큰 충격을 주긴 했다. 또한 윤봉길 쉐프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했고.
아주 실패라 보긴 힘들다.
재규어 장군이 대한민국의 반신을 죽였다면 이쪽은 좆본의 자칭 신을 조질 뻔했으나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을 텐데....ㅠ
근데 진짜로 이봉창 의사가 천황을 죽이는데 성공했으면 좆본이 조선인을 모조리 학살해서 아예 민족을 없애버릴수도 있었다. 당시 좆본에서 천황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이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데 열강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돌아가며 일본을 무진장 씹고 뜯고 맛보며 압박할 것이다. 이미지 세탁한 영국과 프랑스도 그딴 짓거리는 안 했다.
윤봉길 의사와 함께 봉 듀오로서 쪽본 새끼들에게 아주 혼쭐을 단단히 보여줬다.
이후 1946년에 윤봉길, 백정기와 같이 효창공원에 안장되는데, 묘하게도 이봉창이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그 효창공원 일대 즉, 고향 땅에 안장된 것이다. 실제 태어난 곳도 거기였으니 나름 대접을 받은 셈이다.
위 사진은 이봉창 열사가 폭탄 던지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죽으러 간다는 사실을 아는데도 나라를 구하기 위해 간다 생각하고 웃고 있는 사진이 눈시울이 찡해진다.
근데... 저 사진 합성이라고 한다. 목부분이 부자연스럽고 죽으러가는거 치고 너무 윾쾌하게 웃고있다.
소매 부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냥 다른 사진에 맨 위에 있는 사진의 얼굴만 오려붙인듯하다
ㄴ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이봉창 의사의 얼굴을 잘라 붙힌거다.
실제로 찍힌 사진은 이거라고 한다. 근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지라 합성해서 새로 그렸다고 한다
폭탄을 던진 후에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대한독립을 외치는 이봉창, 그게 이봉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일단 체포될때 태극기를 갖고있지도 않았고, 대한독립을 외친것도 아니다. 그냥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리고 폭탄던지기 하루전까지 빡촌에서산 창녀랑 섹스하고 카페에가서 여직원들이랑 노가리까고
뭔가 우리가 알던 상식이랑 다르다.
더 궁금한 사람은 식민지청년 이봉창의 고백 한번 읽어보셈 비전문가 수준에서 제일 유명한 책임
ㄴ 의외로 이 분은 독신이었던데.
개인적으로 유일하게 싫어하는 독립운동가다.
원래 친일파 개새끼인데 일본에서 소외당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거거든.
서사 봐라. 진짜 알리바이가 저렇다.
스스로 키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고 멋들어지게 창씨개명까지 했다.
독립운동 노선에 가기 전엔 일뽕이었다. 창씨개명 하고 그랬을 지경... 근데 황국신민으로써 일본 천황을 알현하러 갔다가 별 내용도 없는데 한글로 쓴 편지라는 이유로 퇴짜 맞고 파출소에서 8박 9일이나 갇혀 있다가 풀렸다. 그래서 독립운동 노선에 뛰어든 거다. 우리는 여기서 일제가 협력적인 조선인들에게도 차별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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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서는 원래 친일 성향이었다가 변절한 건만 계속 강조하고 있지만, 제9회 신문조서에서는 또 다시 변절한듯한 내용이 나온다. 위 링크는 대한민국 정부 사이트라는 점을 참고하는게 좋을 것이다.
- (괄호 내용)이나 밑줄은 편의상 추가
[문] 피고인은 올해 1월 8일의 흉행을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답] 나는 형무소에 수용된 후 불교 이야기를 듣거나 불교 책을 읽거나 하여 여러 가지 생각을 한 결과 나의 사상은 내가 사바 세계에 있을 때와 아주 다르게 변했습니다. 나는 金龜(김구)로부터 부추김을 받아 결국 그런 마음이 생겨 천황 폐하에 대해 난폭한 짓을 했습니다만 오늘에는 굳이 김구를 원망하지는 않으나 그 사람의 부추김에 놀아난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어리석음으로 엄청난 짓을 해 참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조선 독립 문제에 대해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답] 형무소에 들어가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조선의 독립이라는 것은 전혀 실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독립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 그렇다면 조선인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답] 조선인은 대체로 미신적이지만 진정한 신앙은 없고 또 이해력도 낮다고 생각합니다. 생활 상태, 문화의 정도도 아직 내지 사람에게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나는 종교로 조선인을 이끌고 정신 수양과 인격 양성 방면으로 힘써 간다면 조선인도 점점 발전해 내지인과 서로 이해하고 융화하여 피차 일본 국민으로서 유쾌하게 생활해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써 조선인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중략)
[문] 무엇이든 진술할 것은 없는가?
[답] 나는 上海(상해)에 간 뒤 얼마 안 되어 上海에서 자전거 1대를 들치기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일은 말씀드리지 않았으므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민단(상해대한인거류민단, 임정 산하)의 총무인가 하는 조선인이 자전거를 들치기 해 오면 팔아 주겠다고 해 마침 돈도 곤란하던 때라 자전거 1대를 들치기하여 민단 사무소로 갖고 갔더니 중국인 종업원에게 그것을 팔아 오게 해 나에게는 중국화폐로 12,3圓을 주었습니다. 후에 이 일을 생각해 보니 나를 일본의 스파이라고 의심하여 시험해 본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덧붙여 말하거니와 나는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여러분에게 폐를 끼쳐 어떻게 사죄하는 것이 좋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형을 받아 사죄하고 싶습니다.
[문] 자전거를 들치기 해 오라고 한 사람의 성명은?
[답] 민단 사람들은 그 사람을 白 선생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만 실제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각주
- ↑ 現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