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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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의 유대계 혁명가. 당시 폴란드는 멸망한지 오래였고 룩셈부르크는 러시아령에서 태어났다. 이후 독일로 이민했다.

당의 전위 조직 문제로 레닌과 논쟁했었는데, 레닌은 보다 권위적이었던 반면 룩셈부르크는 보다 자율적인 편이었다. 이 때의 논쟁은 나중에 스탈린주의자들이 룩셈부르크주의를 이단시하는 빌미가 됐다.

이전 판본에서는 뜬끔없이 아나키스트 취급을 당했는데, 실제로는 아나키즘은 사명이 다했다며 적대시했다. 다른 한편으로 당연히 개량주의를 외치는 베른슈타인도 적대시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폴란드 독립운동에도 반대했다. 이 때문에 폴란드에서는 여전히 증오받는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소비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과소소비가 계속되면 자본주의는 망한다는 케인스주의에 선구적인 주장을 했다. 다만 케인스주의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제국주의적 확장이 있어야만 과소소비 상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에게서 자본축적의 구실을 경시한다고 비판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비판을 받은 저작의 이름이 『자본의 축적』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독일 사회주의자로서는 극히 드물게 반전운동을 벌였다. 종전 이후 신생 공화국에 맞서 혁명을 기도했다가 실패하고는 살해당했다.

이후 스탈린주의자들은 룩셈부르크의 이념에는 부정적이면서도 그녀의 혁명 시도는 인정하는 어쩡쩡한 태도를 보였다. 나중에 나치가 정권을 잡고는 룩셈부르크 무덤을 파괴해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복구돼서 현재까지 이어진다.

좌익공산주의에 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그 자신이 좌익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1960년대에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신좌파에 의해 재조명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