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포이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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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 |
| 생년월일 | 1804년 7월 28일 |
|---|---|
| 사망일 | 1872년 9월 13일 |
| 국적 | 독일 |
| 종교 | 무신론 |
독일의 철학자.
원래는 헤겔 추종자였고, 헤겔을 우연히 만난 적도 있지만 당시에는 수줍어서 대화를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헤겔 사후 기독교는 인간 소망의 투영일 뿐이라고 주장해서 교직에서 해임당했다. 그 대신 헤겔 좌파의 대표격 인물이 됐고 독일 외에 러시아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정치 참여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자제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매우 가난해졌고 소음이 심한 곳으로 이주한 탓에 심한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종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소망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며, 소망은 곧 결핍에서 비롯하는 것이기 때문에 종교와 인간성은 서로 반대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종교를 거부하고 인간성과 사랑을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유물론자이기는 했지만 종교에 대한 물질적 조건의 우선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종교의 역할을 과대평가했다. 심지어는 종교의 발전단계에 따라 그 사회의 발전단계를 구분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공화제 지지자였다. 공산주의자를 자칭했지만 정작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당시에 공산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던 탓이 크다.
독일에서는 헤겔 좌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도 바로 포이어바흐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쓴 것이다.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영향을 끼쳤고 쇼펜하우어도 포이어바흐를 인용했다.
러시아에서는 19세기 혁명가들 대부분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쳤다. 톨스토이도 포이어바흐에 영향받았고 그를 존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