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게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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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게농 | |
| 생년월일 | 1886년 1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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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일 | 1951년 1월 7일 |
| 국적 | 프랑스, 이집트(1949~) |
| 직업 | 작가 |
| 종교 | 가톨릭→이슬람(수피즘) |
프랑스의 종교인 겸 작가.
원래는 가톨릭 소속이었으나 가톨릭이 종교적으로 퇴화했다고 생각해서 1912년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다른 한편으로 프리메이슨에 입단했고 평생토록 거기서 활동했다.
1920년대부터는 율리우스 에볼라와 연락하기 시작했으나, 평생토록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에볼라는 게농을 자발적으로 스승으로 떠받들었지만, 정작 에볼라와 게농은 불일치하는 부분이 상당했고, 결국 게농이 공개적으로 에볼라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신교환은 게농이 죽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르치아 엘리아데와도 인연이 있었다.
1930년에 이집트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이집트 여자랑 결혼해서 자녀를 4명을 가졌다. 1949년에는 이집트 시민권도 얻었다. 유언은 알라라고 한다.
우주 태초에 완벽한 원초적 전통이 있었지만,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파편화돼서 세계의 각종 종교들로 나타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뒤집어보면 세계의 각종 종교들은 본질에 있어서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게농은 이슬람 이외의 기성종교들, 특히 힌두교를 긍정적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런 옹호는 무비판적으로 이뤄져서 카스트 제도도 긍정했다.
그러나 사회정치적으로는 극도로 반동적이었고, 현대세계가 힌두교 세계관에서 최악의 시대인 칼리유가와 일치한다고 여겼다. 이는 종교적 견해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신지학협회나 황금여명회 등의 신흥종교단체들은 전부 사이비라고 여겼다. 종교혼합주의도 부정했다. 이렇듯 전통성을 아주 중시하다보니 비록 그 자신은 전통주의라는 표현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주의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에볼라와는 달리 행동보다는 명상을 더욱 중시했고, 따라서 세속세계를 극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