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근대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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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들이 '근대화'를 겪었다는 담론을 의미한다. 여기서 자꾸 혼란과 감정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첫째로는 '근대'가 무엇인지가 생각보다 그리 엄밀하게 정의되질 않았고, 자꾸 담론에다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가치부여를 하려는 작자들이 상상이상으로 많아서 그렇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수혜론과는 별개로 구분되어야 하는데, 전자는 근대화 여부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그것이 식민지인들의 이익으로 이어졌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특별한 개념이다. 이와 관련해 역시 자꾸 혼동되는 사항이 있는데, 근대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판단이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최고의 가치로 꼽던 한국사 특성상 근대에 대한 긍정적 편향이 있는 것일뿐, 유럽에서는 근대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수십년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영국 등과 같은 과거 식민제국에서도 간혹가다 논쟁대상이 되긴 하지만, 한국에서만큼 논란이 심각하지는 않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부차적인 쟁점들을 자꾸 핵심적인 쟁점인 것마냥 취급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그릇되게 부정하려는 시도들이 여전히 많지만, 당연히 이런 시도들은 부정돼야 한다. 먼저 식민지 근대화를 인정하는 것이 식민지 이전 상태에서는 아무런 근대화가 없었다는 것을 함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수혜론자들과 그에 광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은 근대화론을 자꾸 그런 관념이랑 연결지으려고 하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어디까지나 '식민지 시대'에 근대화가 있었다는 것이지, 그 이외의 시대의 근대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함의하지 않고 그 상태로 두는 것이 맞다.
다른 과거 식민지들에도 적용가능한 문제겠지만, 특히 한국에서 식민지 시절의 근대화가 탈식민지 사회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를 자꾸 쟁점으로 들곤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쟁점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핵심으로 여겨져선 안 된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이후로 황폐화되어서 과거의 산업사회가 단절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전의 80년 가량의 세월동안 근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부정되지는 않듯이, 한반도 역시 한국전쟁 등으로 황폐화됨으로 인해 과거와의 단절이 있었다고 해서 단지 그 이유로 식민지 시절에 근대화가 있었다는 것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식민지 수탈론에 대해서는, 물론 한국 역사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이 수탈론에 대한 반발에서 나타나긴 했지만, 수탈론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정반대'인 것은 아니다. 수탈론의 정반대는 수혜론이고, 근대화론의 반대는 말하자면 '비근대화론'이라고 해야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도시화, 산업화와 같은 근대적 현상이 나타났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경제적 근대화와 병참기지 담론은 서로 불가분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식민지 상태에서 경제적 근대화가 없었으면 여전히 농업사회로 유지됐을 것이고, 근대적 군수물자를 생산하는데 역부족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적으로도 근대화가 나타났는데, 특히 서양문화와 이념 등이 더욱 유입됐다. 물론 이들 모두가 그 자체로 근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요소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더욱 촉진되고 근대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독교, 사회주의(공산주의, 아나키즘 등), 민족주의(물론 이건 논란의 여지가 더 많겠지만), 서양의복, 서양미술, 서양철학 등을 들 수 있겠다. 특히 주목할만한 현상으로는 소위 모던걸, 모던보이가 있는데, 이들은 근대적 생활양식을 적극적으로 채택하던 식민지인들로, 멀리 갈 것도 없이 '모던'부터가 바로 근대를 의미한다. 근대화가 없었다면 이런 현상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부터 설명해야할 것이다.
다만 3년 남짓의 태평양전쟁 기간만큼은 문화적 근대화가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 시기에는 영어와 라틴어를 '적의 언어'라며 금지하고 일본적 '전통'으로의 회귀를 더욱 강요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