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 미켈스타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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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은 개인주의야
카를로 미켈스타에더
Carlo Michelstaedter
생년월일 1887년 6월 3일
사망일 1910년 10월 17일
국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태생의 철학자. 그러나 가정은 이탈리아계에 유대인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배경이 정체성의 문제에 천착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졸업논문으로 설득과 수사를 썼다. 여기서 설득은 자기확신을 의미하고, 수사는 외부세계와 그 체계를 의미한다. 미켈슈타에더에게 수사로 대표되는 외부세계는 허영과 현실도피, 자기상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죽음에 직면시켜 무엇이 진정으로 스스로에게 가치있는지 깨닫게 하고, 그런 설득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부세계에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죽음이라고 여겼다.

이 외에 수많은 이야기, 연극, 대화록, 수천 페이지에 달한다는 유고를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유대인 태생이었음에도 예수에 관심을 보였다.

모친의 생일에 관련해 모친과 불화한 후 권총으로 자살했다. 자살의 동기에 대해서는 본인의 염세적 철학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고 개인적 정신증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23세로 요절했지만 율리우스 에볼라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최근에는 마르틴 하이데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자크 데리다같은 대철학자들의 선구자로 꼽힌다.

프란츠 카프카와 동시대인에 같은 국가 출신이고 유대계에 염세적 세계관 등 서로 겹치는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