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독도 갤러리
| 주의. 이 문서는 중증 파오후 일뽕이 작성하였으며 일뽕 그 자체를 다루무니다. 이 글에는 아마테라스 츠쿠요미의 은총과 씹덕의 향기가 가득하무니다. 이 글은 친일성향을 띠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이 존나 함유됐으무니다. 만약 당신이 제정신인 갓한민국의 애국자라면 이 글이 매우 역겨울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라무니다. ○○짱 카와이하다능... 쿰척쿰척 |
독도는 일본에 의해서 최초로 발견된 땅이고 한국이 불법점거한 땅임
조선시대에 독도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기껏해야 교과서에서 우산도 = 독도 라는 식의 대국민 사기극을 치고있을 뿐임
오히려 리앙쿠르트락에 대한 국제법적 해석과 영유권에 뿌리깊이 관여한 나라는 일본이고
애써서 관리해온 독도를 아싸리 울릉군에 편입한 (실제로는 1개 군 단위로 편입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님)게 한국정부
선동으로 잠깐동안 남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그것이 진실의 힘이다.
ㄴ 1471년(성종 2) 삼봉도(三峰島)[독도]를 조사하기 위해 박종원(朴宗元)이 파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시대 [朝鮮時代]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사는 좀 약한데 1471년 쯤이면 조선시대아닌가
리앙쿠르트 락은 프랑스 리앙쿠르트 호가 1849년 발견해서 독도에 붙인 이름이라고 나오는데 일본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우선 토론은 토론이니까 주장을 내세웠다면(독도는 일본땅,한국이 불법점거) 증거를 제시해주길 바람
ㄴ
이규원의 검찰일기 中
<5월 4일> 울릉도의 최고봉, 성인봉에 오르다.
4일에는 산신당에 기도를 올린 후 등나무, 칡덩쿨을 부여 잡고 동변 최고봉에 올랐는데 성인봉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쪽을 바라보니 바다와 산이 아득할 뿐이요 다른 한 점의 섬도 없고 다만 열넷의 봉우리들이 우뚝하게 줄지어 서서 나리동 한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것만이 보이니 과연 하늘이 감추어 둔 별천지였습니다
--> 독도 발견 못함
5월 9일
또 하나의 포구가 있었으니 이름은 선판구미(船板邱尾), 남쪽으로 바다 가운데 두개의 작은 섬이 있으니 모양이 누워 있는 소와 같으며 좌우로 돌면서 서로 안을 듯한 형태인데, 하나는 죽도[竹島, 대섬]라 하고 하나는 도항[島項, 관음도(깍새섬)]이라 하는데, 다만 대나무가 무더기로 있을 뿐이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육지에 내려 대나무가 있는 바위 아래에 막을 치고 유숙하였습니다.
--> 5월 9일에 발견한 두 섬은 죽도와 관음도
5월13일
청명한 날이면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 바라봄에 일천리를 바라볼 수 있지만, 울릉도 외에 다시 한 주먹의 돌이나 한 움큼의 흙(다른 섬)도 없습니다. 우산도를 울릉도라 칭하는 것은 마치 탐라를 제주도라고 칭하는 것과 같습니다.
--> 독도를 결국 발견 못하고 우산도를 울릉도로 확인하면서 돌아옴
ㄴ 1882년 이규원의 검찰일기 맞지요? 꽤 역사에 무지했던 제자신이 부끄럽네요.
일기 형식의 문서가 왜 존댓말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독도는 성인봉 동남쪽에 위치하여 5월 4일에 서쪽을 바라봐선 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날씨가 매우 맑은날만 독도가 보인다고 하네요.
어떤분이 성인봉 여행에서 독도방면으로 찍으신 사진 : http://cfile205.uf.daum.net/image/206D74224A95F93A315624
(제 눈이 이상한걸지도 모르지만 저 사진에서는 구름이 있어서인지 독도는 안보이네요.)
(원본 주소 : http://blog.daum.net/mountguide/36)
그리고 5월 13일은 죄송합니다만 제가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내용은 저 내용이 없네요..
보여주신 증거를 부정하는건 아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의심하게 되네요.. 죄송스럽지만 원본 주소 또는 사진을 부탁드립니다.
<5월 13일 찾아본 내용 1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Cl46&articleno=16571500&categoryId=0®dt=20130512020250> 석양에 울진군 지역으로 직항했으나 파도로 인해 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노를 저어 근근이 평해 구산포에 당도 상륙하니 술시(亥時, 저녁8시) 경이요.뒤에 떨어져 오던 배 3척도 구산포애 따라 들어왔다.
<5월 13일 찾아본 내용 2 : http://blog.naver.com/sinbiga/30018707469> 험한 파도를 헤치고 평해 구산포에 도착하다. 13일 해시(亥時)쯤에 바로 울진쪽을 향하였는데, 풍랑이 크게 일어 정박할 수 없어 노를 저어 제어하면서 평해 구산포에 돌아와 정박하고 육지에 내렸습니다. 층계가 진 바다와 험한 파도 속에서도 이와 같이 잘 건넌 것은 역대 임금님의 혼령이 도우셨기 때문이다.
< 초열흘날 부터 열이튿날의 내용 :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349777&qb=7Jq466aJ64+E6rKA7LCw7J286riw&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 > 초열흘날에 배를 타고 도방청 장작지 통구미에 사태구미 산막동등의 포구를 돌아보니 해일이 일어 서쪽편에 파도가 드높아 배에서 내려 상륙한 후 소홍토구미에서 유숙하였다. 열하룻날 산신께 기도하고 나니 동풍이 차츰 일어 배를 띄울 수 있어 진시辰時(오전 5시∼7시)쯤에 세 척의 배가 일시에 출범할 수 있었다. 열이튿날 해시亥時(오후 9시∼11시)쯤에 울진쪽으로 향했으나 파도가 크게 일어 부득이 정박하여 있다가 바람이 잠잠해지자 구산포에서 하선하였다.
우선 위의 글은 제시해주신 근거에 대한 저의 의견이구요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것은 저는 조선시대에 독도를 발견했다는 주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에 자료를 찾아서 드린거고
그 자료와 제가 알고있던 문서들이 거짓임이 밝혀진다면 제 주장을 기꺼이 굽힐 수 있을겁니다만,
이규원 무신 께서 울릉도에 대한 검찰일기를 근거로 내세우셔도 죄송합니다만 조선시대에 독도를 발견한 주장은 없다 라는 이야기에는 관련이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역사에 대한 토론은 처음인지라 제 의견, 전달방식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ㄴ 반론 .
독도갤 측에서 전해드리는 팩트입니다
ㄴ 반론이라 쓰셨는데 어떤 반론인지 모르겠네요.
송도의 명칭에 대해 쓰셨는데 이게 독도는 일본땅 이라는 주장의 증거가 되기도 미흡하고
그렇다고 제가 부탁드린 독도를 발견한 주장은 조선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에도 부합되지 않네요.
보여주신 팩트라고 하는 자료에는 사이트 하나 찾고 그중에서 한줄 골라서는 이게 센징국이 짖어대는 독도의 사실상 증거 전부다! 라고 한다음
그 송도의 어원을 찾으시고 공간이 좁은섬은 한국어니 왜국이 쓸리가 없다 단정한 후에 다른 뜻인 소나무 섬을 골라 독도에는 소나무가 없으니 송도가 아니다!
라고 적으신 후에 글을 올리시고 이게 팩트다 라고 해주셨는데.
저도 송도 즉 마쓰시마에 대해 좀 검색을 해봤습니다.

조선은 노란색 일본은 빨간색 이라고 적혀있네요.
한자는 약해서 제대로 표기된지는 몰라도 19세기 당시에 울릉도는 다케시마라고 표기됬고 독도는 마쓰시마라고 적혀있다는 설명(2차 출처에 적힌) 이 있네요.
허나 이런 증거는 믿지 않으실것 같아 하나더 찾아봤습니다.

아쉽게도 위 지도는 이름은 적혀있지않고 1876년도에 제작된 일본지도라고 하네요.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검색한 결과 Kashihara Yoshinaga 의 지도라고 합니다.
위의 지도에서는 송도라고 적어놓은게 저도 보이네요.
위의 쓴글을 정리하면 제 입장은 독도 갤러리 분들의 팩트라고 하신 글을 보여주신건 감사합니다만 여전히 제가 부탁드린 조선시대에 독도를 발견한 주장은 없었다 라는
주장의 대한 증거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일본의 땅이다? 라는 주장의 증거도 아니였습니다. (송도 명칭이 잘못된것이 일본땅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건 아니시겠죠?)
그리고 또 결국 제가 직접찾아본 결과 송도라고 적은 일본 지도를 발견한 상태에서 죄송합니다만 주장해주신 팩트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의심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면 죄송합니다만 제가 부탁드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되지도 않아
다시 재반박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삼국사기 ->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며 《삼국사기》에는 우산국의 자세한 영토 범위가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독도에 대한 기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기 독도가 신라에 귀속되었다는 주장은 날조
세종실록지리지 -> -->울진현을 중심으로 해서 울진현 주변을 설명후 울진현에서 보이는 서로 멀지 않은 우산 무릉을 설명
이 두섬을 울릉도라고 하였다. 그리고 지방은 100리이다.
김인우는 우산도에 사는 3명을 데려오면서 그 섬엔 86명이 살고 있다고 보고
3일후 김인우가 데려온 우산도에 사는 3人에게 태종이 옷을 내림
즉 이것만 봐도 세종실록지리지의 우산도는 독도가 아님이 명백
신증동국여지승람 -> 우산도가 울릉도의 서쪽에 붙어있다
동국문헌비고 -> 동국문헌비고 만기요람이 의미 하는 우산도 = 죽도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 석도는 독도가 아니다. 황성신문을 보자면 칙령 41호 후 울릉군의 관할구역에 독도는 포함되지 않는다. 관음도 혹은 울릉도 밑의 5개 바위의 군체로 추정된다
심흥택 보고서 -> 본국 ‘독도’라는 표기를 이용했고, 또 같은 시기의 횡성신문의 울릉도 질의에서는 '석도'라는 표기를 이용한다. 독도와 석도라는 명칭은 동시대에 각각 쓰였는 데, 만약
동일한 섬이라면 혼란을 피하기 위해 석도는 독도라는 기록이나 표현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 허나, 석도가 독도라는 근거는 전혀 없다. 별개의 섬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증보문헌비고 -> 한국에서 1899년 출간된 대한전도에서의 우산도는 위도나 경도를 보면, 이 우산도(于山島)는 죽도인 것을 알 수 있다
은주시청합기 -> 은주시청합기에선 독도를 조선 영토로 표기하지 않았다.
돗토리번 답변서 -> 해당 섬이 돗토리번의 소속이 아니라는 것은 돗토리번의 영지가 아니라는 의미이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지 않는다 더불어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한적도 없다
죽도 도해금지령 -> 국외로 나가는 경우에 발급된 것은 주인장이지, 도해면허가 아니다
애초에 울릉도 도해금지령을 내렸는데 독도랑 무슨상관이지
안용복의 조사 -> 우산도가 죽도인 것은 문언상 분명하기 때문에, 안용복이나 막부의 외교문서 따위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 1870년 조선국 교제 시말내탐서의 송도는 독도가 아니며 현 죽도 1877년 일도 또한 죽도에 가깝다.
조선동해안도 -> 독도를 한국영토로 나타내지 않았다 해도는 항해에 필요한 수로의 상황을 제시하는 것이지, 국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해도를 근거로 타케시마(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엉뚱한 소리
태정관지령문서 -> 1877년의 태정관지령에는 그 외 1섬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지. 해당 섬이 독도라는 근거는 전혀 없는다 그것이 조선땅이라는 근거도 되지 않는다
삼국통람도설 -> 위에서도 언급했듯 우산도는 현재의 죽도 타케시마(독도)와는 관련이 없으며, 울릉도 및 울릉도의 부속 섬 (관음도, 죽서도 또는 죽도)가 조선땅이라고 인정한 증거
삼국접양지도 -> 『삼국접양지도』에서의 섬 위치나 크기 등을 보아도 현재의 울릉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산도가 타케시마(독도)가 아니라는 점은 조선지도 외의 조선문헌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국뽕 한국인: 1905년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은 일방적인 조치이며 한국은 이 사실을 1906년에서야 알았습NIDA -> 결정적으로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905년 편입당시 일본은 한국에 공식
적으로 타케시마(독도)의 편입 사실을 알렸다. 이에 한국은 어떠한 불만도 비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1907년에 발간된「대한신지지」에서 독도(타케시마)를 그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반일국뽕 세뇌하며 우산도가 독도라고 주장하는것과는 달리 팩트는 '우산도'와 '죽도' '석도'는 한국이 '독도'라고 부르는 곳과 전혀 별개의 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