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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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톨스토이의 사상을 뜻한다.
톨스토이는 모든 옳음은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종교적 견해들이 가장 기초가 된다. 톨스토이는 기본적으로 회복주의 기독교 성향이었고, 예수에 대한 세간의 견해가 매우 왜곡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당연히 무신론에도 반대했다.
톨스토이는 예수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지상에서 가르친 바이고, 그와 관련되는 초자연적 혹은 내세적 주장들은 전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예수는 인류에게 기본적으로 오계명을 가르쳤다.
- 분노하지 말 것
- 음란하지 말 것
- 선서하지 말 것
- 악에 저항하지 말 것
- 민족 구분 없이 네 적을 사랑할 것
톨스토이는 삼위일체도 확고하게 거부했다.
톨스토이는 세간의 견해와는 달리 예수는 결코 문자그대로의, 물리적인 부활을 약속한 적이 없으며, 예수 본인도 그러한 방식으로 부활한 적이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톨스토이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적, 물질적 부활은 실재하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 문자그대로의 지옥 혹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의 자아가 소멸된 채 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톨스토이는 바울로가 예수의 가르침을 그리스의 이질적인 신념들과 결합시켜 왜곡했고, 이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이 비도덕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왜곡되기 시작했다고 간주했다. 톨스토이는 칼케돈파로 대표되는 기성 기독교 교파들을 전부 부정했고, 원죄도 부정했다.
톨스토이는 세계의 수많은 주요 종교들, 특히 불교, 유교,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등도 본질적으로는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여겨 깊이 존중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 종교들에 완전히 무비판적이었던 것은 아니고, 가령 유대교의 주장된 폭력 용인 경향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교'라는 용어를 간혹가다 부정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에 매우 호의적이다보니 말년에 아예 무슬림이 됐다는 루머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신비주의, 오컬트, 현학적인 신학 등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었으며, '신비주의'라는 용어를 경멸적으로 쓰기도 하고 본인의 신념과 체험들은 신비주의와는 관련이 없다고 거듭해서 강조했다.
톨스토이는 원죄를 부정한만큼 인류는 민족에 상관없이 도덕적 능력이 있고, 서서히 하지만 확실히 더욱 선해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톨스토이는 도덕적 책임을 더욱 강조했고, 민족주의에 반대하고 에스페란토를 지지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악행과 죄는 서서히 줄여나가기보다 단번에 끊어내야한다고 강조했다. 도덕과 영성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쳐야한다고 주장했고, 때문에 주장된 의무를 지키는데 있어서 아무런 예외도 인정하질 않았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톨스토이 본인의 모순적인 생활과 대비돼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톨스토이는 폭력에 무조건 반대했고, 당연히 일체의 착취, 억압, 투쟁, 군대, 전쟁에도 반대했다. 톨스토이는 더 나아가서 악에 맞서는 경우에조차 비판을 할지언정 '저항'을 해서는 안 된다는 비저항주의를 설파했다. 저항은 오로지 악을 증진하기만 할 뿐 결코 본질적으로 끝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톨스토이의 주장들 중에서도 특히 논란거리가 됐다.
톨스토이는 단지 인간들에 대한 폭력에만 반대한 것이 아니라 동물들 일반에 대해서도 폭력에 반대했고, 동물학대와 육식에도 반대했다. 그리고 육식을 아예 식인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대신 채식주의를 지지했다.
정치적으로는 크리스천 아나키스트를 자처했다. 때문에 신분제도, 국가, 애국주의 등에 반대했다.
농본주의를 지지했고, 농경생활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산업화, 도시화에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지공주의를 지지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그 자신이 여전히 대지주 생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것과 대비돼서 비판받았다.
이성, 과학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에는 반대했지만, 이들의 중요성을 여전히 인정하면서 이들이 도덕, 영성과 결합된다면 인류에 가장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톨스토이는 행복과 쾌락을 엄격하게 분리해서, 쾌락은 결코 진정한 행복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쾌락 자체를 좇는 쾌락주의에도 당연히 반대했다.
여성이 능력에 있어서 남성보다 열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성은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임신, 출산, 육아 등에 특화하는 것이 맞다며 상호보완주의를 지지했다. 이러한 목적에 맞지 않는 일체의 성행위를 죄악시했고, 이 때문에 동성애에도 부정적이었다. 낙태에도 당연히 반대했다.
당시 예술의 엘리트주의, 탐미주의 경향에 강경하게 반대하면서, 예술이란 반드시 도덕적이어야하고, 평민들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상류층만의 소비를 위한 예술은 그 자체가 곧 매춘이라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톨스토이는 자신의 과거 소설들마저 비판했다.
톨스토이는 생활의 각종 분야들에 있어서 온갖 과격하면서도 단호한 입장들을 평생토록 견지하다보니 살아생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판, 비난을 당했다. 하지만 그렇게 도덕적 이상이 너무나 높았기에 오히려 톨스토이를 고평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이러한 여론의 양극화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