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민
K-위키
놀랍게도 이글스파크에선 그/그녀를 보기 위한 인파로 교통이 마비되곤 합니다. 본 인물을 욕보일 시 많은 칰키워들의 저주로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
오로지 안승민, 구대성, 한희민, 이상군, 한용덕, 송진우, 정민철, 장종훈, 이정훈, 신경현, 류현진, 김태균, 제이 데이비스, 이영우, 강석천, 홍창화와 같이 독수리 군단에 모든 것을 바치신 분들에게만 이 틀을 달 수 있습니다. 비록 구단이 낡아빠진 퇴물 그자체가 되었다해도 한화 이글스와 KBO 리그의 새 역사를 새긴 성인들까지 모독하는 일은 금하도록 합시다. |
|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야구를 존나 잘하거나 야잘알이며 야구 그 자체입니다. 믈브나 느프브에 있기 마땅한 존재입니다. 크보나 크프브르 같은 건 그에게 너무 좁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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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군과 함께 좆같았던 초창기 똥칰을 이끌던 투수이며
KBO 언더핸드 계보의 시초로 여겨지는 선수다.
1986년 4월 5일 첫 선발 등판에서 완봉승을 거뒀는데
이게 이글스 창단 첫 승이었다.
코칭스태프와의 불화로 1992년에는 15경기 8선발 등판에 그쳤는데
이에 한희민은 1992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는 소동을 벌였고,
결국 1993년 1월 25일 빙그레 이글스가 현금 3,000만 원과 박철희를 받는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현금 트레이드 되었다.
1994년에는 대만프로야구에 진출했다.
대한민국 선수 중 최초의 대만 프로야구 진출.
EDA 라이노스에 입단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으나,
2년 동안 겨우 6승 16패를 기록했다.
현재는 산속에서 도를 닦다가 리틀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