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 G. 크리슈나무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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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팔루리 고팔라 크리슈나무르티
Uppaluri Gopala Krishnamurti
생년월일 1918년 7월 9일
사망일 2007년 3월 22일
국적 인도
종교 무종교


주소

생전의 인터뷰 영상들 중 하나. 욕설을 써가며 사랑을 부정하고, 심지어는 모성애도 부정하고 있다.

인도의 '안티그루'이며, 일체의 사상과 지식의 체계를 부정했다.

원래는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전생에 깨달음에 거의 근접했다고 여겨져서 어릴 적부터 각종 힌두교 경전들을 교육받고 암송해야 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종교에 대해 회의감이 있었던 것처럼 회고했다.

성년이 된 이후에는 잠시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와 인연을 갖고 유럽 여행도 다녔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일종의 신비체험을 일주일에 걸쳐 했는데, 이를 반복적으로 '재앙', '고문'이라고 부르면서 남들에게 이런 체험을 추구하지 말라고 계속해서 당부했다.

하여튼 이 때 이후부터 사상이 극도로 허무주의적으로 변해서 평생토록 일체의 지적, 영적 추구를 쓸모없는 것이라며 부정했다.

영어, 텔루구어, 산스크리트어, 힌디어, 프랑스어 등을 할 줄 알았다고 한다.

죽고 나서는 화장한 뒤 재를 바로 버렸다고 한다.

난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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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가장 유명한 것은 본인의 체험보다는 극도로 난해한 주장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놓고 서로 모순적인 주장을 하는가 하면, 자신이 말하는 것은 '개소리'이니 무시하라고도 했다. 자기를 추종하려는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기도 했고, 평생토록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다. 즉 그의 책으로 알려진 것은 실제로는 그와 인터뷰를 요청한 측에서 인터뷰 내용을 적고는, 글쓴이를 그로 지정한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자기의 주장과 사상을 아무렇게나 왜곡하거나 아예 날조해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심지어는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도 그가 실제로는 미쳐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은근히 추종자들이 있다.

최준식 교수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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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교수로서는 U. G. 크리슈나무르티를 가장 홍보하고 다닌다고 볼만한 최준식 교수는 그의 삶과 행태에 대해 이런 식의 해석을 남겼다. 다만 보조적으로 영어 위키백과 등에서 참고한 내용이 있으니 주의할 것.

그가 체험한 것은 다름아닌 요가철학에서 최고의 경지로 치곤 하는 쿤달리니 체험으로, 이를 통해 평범한 사람의 의식수준에서는 영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이 마침내 가능하게 됐고 또 현실의 실상을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깨닫게 된 현실의 실상이 무엇인가 하니... '객관적 현실'도, '개별적 자아'도 실제로는 허구이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즉슨 인간들이 감각하고 사고하는 것들은 실제의 반영이 아니라 통 속의 뇌의 경우에서처럼 가공된 것이고, 상상된 개별적 자아는 애초에 그 가공의 결과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초월하는 것, '구원'받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라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생각'은 더 나아가 '적'으로 간주되는데, 왜냐하면 객관적 현실이란 없기 때문에 생각 역시 현실의 '객관적' 반영 따위가 아니라 오히려 감각세계를 왜곡하기만 해서 원래대로라면 있지도 않았을 기억폭력, 불안감 등의 각종 정념들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그 인간을 괴롭히는 것이다. 더욱이 생각이라는 것은 흔히 간주되는 것처럼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인 것으로, 밈 이론에서 묘사된 것마냥 스스로를 영속화하고자 하며 또 증식시키려 하는 것이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개별 인간들은 착취당하고 생각들은 숙주처럼 지배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더욱 나빠지는 것은 그의 견해에 자신이 겪은 특수한 체험은 애초에 인간의 노력과는 전혀 무관한 것, 완전히 우연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를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실적으로 최선인가? 그가 간주하기로는 금붕어들이 인위적 생각들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전혀 없는 것처럼, 인간들도 이러한 하등동물들을 모방해서 적어도 인위적 생각들의 지배로부터만큼은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그대가 갖고있으니 더 추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아무것도 인위적으로 추구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인위적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니, 오히려 '무실천'이야말로 최고의 실천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보니 그는 자기자신의 주장을 포함한 모든 생각의 필요성을 거듭해서 부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실로 소름끼치지 않을 수 없다.

자연은 절대적으로 고유한 개인들을 만드는데 부지런한데, 문화는 모두가 반드시 따라야하는 하나의 틀을 만들었다. 그로테스크하다.

나를 따르지 마라, 나는 길을 잃었다.

사실은 당신이 문제가 없다면, 그것을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가 없다면 살고 있다는 느낌이 안드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는 개미들이나 우리를 맴도는 파리들이나 우리의 피를 빠는 모기들보다 더 거대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당신은 죽지 않는다. 당신은 결코 태어난 적이 없다.